"역사책에서 배우는 역사로는 외국의 침략에 대항하는 자기 의지가 담긴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역사의 흐름을 잘 모르고 자기의 계획이나 구상은 없이 강대국에 의존하여 지내다가 버림받고 나서는 '뺨 맞고 눈 흘기며' 저항도 제대로 못하는 '왜 때려' 민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 본문 281쪽<주자학, 조선, 한국>의 저자, 김우현이 책을 통하여 꼭 남기고 싶었던 뜻, 역사적 소신이 바로 이것, 역사책으로만 배우는 역사로는 "버림받고 나서는 '뺨 맞고 눈 흘기며' 저항도 제대로 못하는 '왜 때려' 민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역사적 우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김우현 지음, <도서출판 한울> 펴냄의 <주자학, 조선, 한국>은 조선시대의 정치이념이자 통치수단이었던 주자학의 실체와 현대사에까지 미치고 있는 주자학의 병폐를 낱낱이 해부하고 있습니다.
한때 사이비 학문으로 여겨지던 주자학주자학은 남송의 주희가, 공자(기원전 552~497)가 처음으로 주창한 이래 윤리·도덕에만 중심을 두었던 유학을 우주론적인 질서로 확대하여 정리한 학문으로 한 때 사이비 학문으로 여겨져 소위 위학금지(1195)를 당하기도 했던 학문입니다.
주희가 살아있을 때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었지만 주희가 죽은 후 원나라에서 다시 시작한 과거시험에서 주자학이 정식 시험과목이 되고, 명나라 영락제(1420~1424)가 주자학을 권장하면서 그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충렬왕과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를 다녀온 안향(1243~1306)과 백이정(1260~1340)에 의해 도입되어 전파되었습니다.
"조선을 덮고 있던 숲은 바로 주자학이었다. 조선 500년 동안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은 주자학이라는 숲에서 자란 나무, 혹은 가지에 불과하다. 조선에서는 주자학이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군사 등 모든 문제를 지배했다.
조선은 '경국대전'을 통해 이 원칙을 절대로 고치거나 바꾸지 못하도록 정해놓았으며, 후세 사람들은 이에 순종하여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주자학 원리가 너무 강했는지, 백성들은 이를 몰랐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 본문 12쪽저자는 주자학을 조선을 덮고 있는 숲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군사와 백성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조선시대 모든 것들이 주자학에 의하여 조정되거나 영향을 받으며 결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을 덮고 있는 숲, 조선시대를 멍들게 한 정치이념이며 문화를 왜곡시키는 구부러진 골격이 주자학이었으며, 조선인들의 실생활과 사상에까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신랄한 표현입니다.
비판 없이 수용하고, 주체성 없이 따라 한 주자학은 조선의 권세가들이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이 되었고, 백성들을 좀 먹는 피폐가 되었습니다. 숲이 되어 조선을 덮고 있던 주자학은 현재까지도 민족의 부채가 되어 가치를 아우르는 척도가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전통'이나 '문화'라고 표현되며 교묘하게 전승되거나 대물림되고 있는 주자학의 피폐를 철저하게 직시하고, 냉정하게 결단하는 자기성찰 없는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음이 주자학의 그늘에서 보입니다.
쪽팔리는 역사의 잔재, '동방예의지국' "류큐는 1372년부터 중국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했는데,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라는 뜻으로 '수례지방'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중국 왕조들은 전통적으로 중화사상에 순응하는 국가들에 '예'가 포함된 칭호를 내렸던 것이다. 이처럼 복종을 잘한다는 뜻으로 '하사'한 이름인 '동방예의지국'을 조선은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국에서는 이 말이 나온 지 20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자랑스러운 뜻으로 여겨 자주 언급하고 있다." - 본문 67쪽"민족주의에는 국가와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고 발전시켜 외국과의 경쟁에 대비하여 미래지향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의 민족주의는 아무런 대비 없이 지내다가 굴욕과 침략을 받고서야 가해자와 침략자를 원망하는 저항 민주주의보다 더 수동적인 '왜 때려' 민족주의다." - 본문 99쪽참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동방예의지국', 비록 경제적으로는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경제선진국과의 비교에서 사회적 가치의 우월감으로 떳떳하게 말하곤 하던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이 이토록 수치스런 역사의 잔재물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얼굴이 후끈거립니다.
부하 국가가 되어 아무런 자존 없이 아부를 떨듯이 받치는 조공의 대가로 받은 '동방예의지국'은 결국 양반들이 백성을 등쳐먹던 수탈의 역사, 10승지라는 미명으로 피난갈 곳을 미리 정해 놓을 정도로 무능한 나라, 양반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병역이 면제 되던 몰염치한 나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이런 '동방예의지국'이 작금의 정치에서는 그 대상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고, 외교를 가장한 또 다른 형태의 조공으로 우방국이니 동맹이니 하는 표현으로 현대판 '동방예의지국'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가 걱정됩니다.
군사작전 통제권 이래서 되찾아야 한다저자는 조선시대를 덮고 있던 주자학, 주자학이라는 숲으로 만들어진 그늘이 오늘날의 정치에도 곰팡이처럼 깊게 드리워져 있음을 낱낱이 적시하며 탈피를 주장합니다.
"평화시기의 작전권은 한국이 가지고 있지만 평화시기에는 이것이 사실상 필요 없다. 전시작전통제권은 군사적인 유사시에만 필요하다. 한미연합사령부가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한미군이 가지고 있다. 군사작전은 정치적인 정책에 종속된다. 약소국의 운명은 전쟁 중에 군사력이 아닌 강대국들의 정치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한반도의 군사적인 유사시에 주한미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면, 이것은 일본의 한반도정책에 따른 일본을 위한 군사작전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중국의 군사개입을 불러들인다. 한반도는 고래들의 싸움터가 되어서 등 터지는 새우가 될 수도 있다. 고래들에게 싸움터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 -본문 304쪽군사력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정치논리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 될 수도 있는 약소국의 처지를 날카롭게 직시할 것을 강조하며,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무작정 선진국 따라 하기를 하다가는 실리가 없음은 물론 선진국의 뒤만 쫓아가는 약소국은 세계화 속에서 소멸한다는 호소하듯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웅변을 하듯이 "문화경쟁 시대에는 한반도의 중심을 먼저 만들고 나서 주변으로 넓혀가야 한다. 완성이 안 된 '나'는 세계화의 '우리'속에서 없어진다"는 말로 주체적인 나를 강조하는 것으로 그 대안을 제시합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문화권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문화권이 강력한 주동세력으로 대립하고 있는 21세기 한반도에서 어떠한 무력 충돌이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또다시 고래 싸움에 새우는 등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45번의 야유를 받더라도 당당한 '동방무례지국'이 더 미래지향멀리 떨어져 숲을 바라보고, 숲으로 들어가 나뭇가지를 살펴보듯이 역사책에서는 보지 못했고, 역사책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주자학의 실체를 일깨워줌으로써 벌목해야할 수종(樹種)과 뒤엎어버려야 할 숲을 자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바탕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45번의 박수를 받으며 현대판 '동방예의지국'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설사 45번의 야유를 받더라도 당당하게 '동방무례지국'으로 행동하는 것이 훨씬 더 미래지향적이고 자존적인 국가의 형태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동방예의지국'이 양반들이 백성을 등쳐먹던 수탈의 역사였고, 대국에 빌붙어 사는 부하의 나라였다면 '동방무례지국'이야 말로 자존적 국가관, 자주적 국력을 향한 당당한 국가형태가 될 것입니다.
왜 전시작전권을 가져와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논증이 담겨 있는 <주자학, 조선, 한국>에는 자기 의지가 담긴 민족주의를 설계하고, 자존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역사적 성찰과 희망의 씨앗 또한 담겨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주자학, 조선, 한국> | 지은이 김우현 | 펴낸곳 도서출판 한울 | 2011.10.17 | 2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