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곳을 많이 다녀온 여행자는 아니지만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 밖을 한참동안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아침을 시작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침의 빛깔 좋은 햇살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밤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된 이랄랄의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쏟아지는 햇살 한 바가지와 온몸을 흔드는 차가운 공기에 몸을 일으켰더니 내가 잤던 침대 머리맡에는 지난밤에는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작은 창이 하나가 있었다.
습관처럼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았다. 구름에 걸린 마을이 보였다. 집 사이로 자그맣게 나있는 길 사이로 몇 몇 아이들은 벌써 파란 교복을 입고서 학교로 가고 있었다. 옆집 아이들은 내 기침소리를 들었는지 쪼르르 뛰어나와서는 창문에 걸린 나의 눈과 마주치고는 '나마스테'하고 웃음지어 보였다. 구름 저편에서는 아마도 몇몇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창문으로 정겨운 네팔의 모습과 향기가 가득 느껴졌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들과 빛깔 좋은 햇살이 가득한 창문이었다.
나는 작은 창문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그마한 길을 따라서 부미마타 학교로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그날의 해가 지기 전까지 나무도 심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반에 일일 교사로 들어가서 수업도 하고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 가는 곳에 아름다운 하늘색을 칠해주기도 하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밟았던 길을 돌아가는 줄만 알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다가 아이들의 모습을 찍어주려고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문득 아침에 창문으로 인사했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내가 불쌍했다.
나는 네팔 아이들보다도 많은 것을 쥐고 있다. 두 시간쯤은 걸어야 갈 수 있는 학교는 단 십 분 만에 차를 타고 도착할 수 있고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마음껏 손에 넣을 수 있다. 한국에 있는 나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한 세계 저편에 있는 아이들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뼈저리게 고맙기까지 한다. 이렇게 나는 '가진 것이 많아서' 네팔까지 찾아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찾아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아침에 창문으로 인사했던 아이들이 생각이 떠오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는 내가 불쌍해졌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나눠 준다', '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받고 온다'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여기 한국에서는 만나기 힘든 것들을."
아마도, 그 순간 내가 아이들에게 한국에서는 잊어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네팔로부터 한없이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다. 두 시간 동안 힘들게 걷지 않아도 학교를 갈 수 있지만 그만큼 나는 내 친구들과의 추억, 가족들과의 추억을 잊었다.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마음껏 손에 넣었지만 마음속의 여유 또한 잊었다. 한참 올라가야 집이 겨우 보이는 네팔의 산길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나를 힘들게 했지만 아이들과 마음껏 웃고 떠들고 가끔은 말없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네팔과 나의 추억을 얻었다. 매운 연기가 가득한 흙집 속에 앉아있는 나의 손에는 따뜻한 차 한 잔 밖에 없었고 흔하디흔한 불빛조차 어두운 주황 불빛만 깜빡거렸지만 생각하고 멀리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세상을 보는 시선에도 속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행자의 속도가 달라지면 볼 수 있는 풍경도 달라진다."
얼마 전에 읽었던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김향미·양학용 지음)에 나오는 마음을 행복하게 적셔주었던 문장이다. 나는 인생도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인생을 여행하다보면 세상을 빠르게도 바라보고 느리게도 바라보게 되는데 내가 나이가 먹고 성장할수록 배우는 것이 많아질수록 점점 세상을 느리게 보는 법을 잊어버리곤 하는 것 같다. 세상을 빠르게 바라보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가끔은 느리게 걸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여행자의 속도가 달라지면 볼 수 있는 풍경도 달라진다.'는 구절처럼 혹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이라는 제목처럼.
창문으로 바라본 네팔이, 네팔에서 만난 아이들이 나에게 준 선물. 어쩌면 내가 잊어버렸던 내가 가장 소중히 간직해야했던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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