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평소의 나였다면 왈칵 눈물을 쏟았을 거다. 하지만 감격의 기쁨보다는 '정말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이 훨씬 더 컸다. 그래서 눈물보다 휴~ 하는 큰 숨이 먼저 나왔다. 질 수가 없는 선거였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총탄을 온몸으로 막으며 전쟁을 치렀던 '희망캠프' 사람들에게 이번 선거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우리 중 선거운동을 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험이라 해봤자 10년 전에 낙선운동해본 것이 전부인데, 그건 아무 도움도 안 되었다. 만약 우리가 졌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힘든 앞날이 우리를 기다렸을 것이다. 사실 그런 최악의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며 뛰어든 선거였다. 너무 다급했기에 나는 목 디스크 치료도 마치지 못한 채 덤벼들었고, 다른 동료와 자원봉사자들도 아무 준비없이 절박한 심정만 갖고 모였다.
가장 준비가 덜된 사람은 후보 자신이었다. 백두대간 산행에서 하산하자마자 동료들을 만나 의논하느라 바빴다. 덥수룩한 수염을 깍을 겨를도 없이 안철수 원장을 만났고, 구두밑창이 떨어져 나간 것도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박원순과 민주당의 재발견... "믿어도 됩니다"
그렇게 시작한 선거운동이었고 우리에겐 마지막까지 여유가 없었다. 야권단일후보 경선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희망캠프 내부에선 모든 사람들이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선거의 기조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유인물에 들어갈 문구 하나까지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캠프 바깥에서도 걱정어린 조언자들이 갖가지 다른 보따리를 들고 줄을 섰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설득할 시간도 없었고, 선거는 민주적 의사형성 절차를 통해 치룰 수없는 전쟁이었다.
결국 후보의 결단을 통해 야권단일후보 경선룰을 결정하면서 모든 혼란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캠프 안팍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밀고 나가야만 했다. 캠프를 떠나는 사람들을 감수해야만 했다.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겨루는 본선에서의 어려움은 더욱 컸다. '무지개 연합'의 장점이자 단점인 다양한 의견 때문에 신속한 의사결정과 행동이 어려웠다. 상대 후보의 네커티브 공격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캠프 안팍에서 쏟아지는 문제제기도 극한에 이르렀다. 캠프로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헌신적인 민주당 사람들의 지혜와 힘이 없었다면 넘어설 수 없는 고비였다. 민주당의 정확한 분석과 대응방법을 흔쾌히 받아들인 후보는 네거티브에 대한 단호하고 공세적 대응을 결정했다. 그 탓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간 박원순 후보는 색다른 선거를 위해 유세차량에서 마이크 잡고 연설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선거운동 방식을 추구하였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경청투어'가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후보의 말을 듣고 싶어하는 시민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유세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후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불만과 유권자를 무시하는 모습이라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세차량에 올라야 한다는 요청을 수없이 했지만 후보의 의지를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박원순 후보는 시장과 거리에서 시민들과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면서 스스로 유세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현장에서 문제점과 대안을 찾는 현장주의자 박원순의 모습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실정을 규탄하는 후보의 모습이 보이면서 주위의 걱정은 서서히 사라졌다. 지근거리에서 후보와 함께 호흡하고 선거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박원순의 리더쉽과 민주당의 재발견이었다.
어려운 고비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결정적인 해법을 찾았고 또 고비를 넘었다. 민주당의 도움으로 박원순은 새로운 리더로 거듭났다. 선거가 끝나자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에 대한 걱정이 일고 있다. 하지만 믿어도 된다. 지난 10년 동안 곁에서 본 박원순, 50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발견한 박원순의 리더쉽이라면 서울의 미래는 밝다. 나서서 걱정하기보다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며 조용히 응원하는 것이 박 시장을 가장 크게 돕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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