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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단풍 북한산 파스텔로 채색한 단풍
북한산 단풍북한산 파스텔로 채색한 단풍 ⓒ 정민숙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면서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에 북한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울에 둥지를 틀고 살아갈 이유가 된다.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다는 북한산 단풍. 10월 중순 경 북한산성과 병풍바위, 대동문에서 북한산성 방향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우린 탄성을 터트렸다. 그 날 일행은 세 명. 어머니와 큰언니와 나, 평일 오전 산행이 가능한 가족들이 모여 움직였다.

 

선봉사의 가지 말리기 정갈하게 널어 놓은 가지. 겨울 반찬으로 맛나겠다.
선봉사의 가지 말리기정갈하게 널어 놓은 가지. 겨울 반찬으로 맛나겠다. ⓒ 정민숙

 

단풍 든 산 모습을 언제 그렇게 편안하게 본 적이 있던가? 치열한 10대 20대를 보내고, 두 아이의 엄마로, 맞벌이 부부로 30대를 보낸 후, 잊어버린 나를 발견한 허탈한 사십대. 산을 봐도 물을 봐도 걱정거리와 해야 할 일들로 버무려져 보이던 시절들.

 

아이들은 벌써 커서 자신들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엄마의 보살핌을 많이 바라지 않는다. 남편은 전쟁 같은 직장 일을 시트콤 찍듯이 매일매일 치러내야 하기에 아내를 챙기기 힘들다. 가족들 사이에서 갑자기 많아진 시간이 부담스러워진 시기에 나를 부른 북한산은 휴식과 위로를 준다. 산에서 만나는 어머니와 언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만나던 혈육의 관계보다 더 넓고 깊은 상태로 내 지원군이 되어준다. 거기엔 아무 이유도 없고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이다.

 

노적봉 파란 하늘 밑 노적봉 모습
노적봉파란 하늘 밑 노적봉 모습 ⓒ 정민숙

 

산에서 내려 온 후 맛난 점심을 먹고 가면 혼자서만 맛있는 음식 먹은 것이 걸려서(어쩔 수 없는 가족 먼저의 엄마 자세) 그 음식을 포장해서 간다. 아이들의 환호성은 즉시 "엄마 또 언제 산에가?"로 바뀐다. 산에서 내려 가다가 맛난 막걸리 한 병 사서 집에 가면 그 날 밤엔 남편과 함께 한 잔 마시면서 하루 일을 식탁에서 풀어내는데 도움을 준다.

 

병풍바위 북한산 병풍바위
병풍바위북한산 병풍바위 ⓒ 정민숙

 

마음이 편안하니 눈에 보이는 것도 다른지라 단풍 든 산의 모습이 온전하게 보인다. 눈에도 보이고 마음에도 보이고. 그 아름다운 색의 향연을 나는 도저히 말로나 글로는 풀어내지 못한다. 단풍이 가득한 계곡을 내려 갈 때, 중간 중간 멈춰 서서 세 모녀는 말 없는 웃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몇 달 사이 남편은 지인들의 모친상만 세 번을 다녀왔다. 모두 70대 중반의 어머님들. 돌아가시는 순간 모든 것이 너무 허망하다. 살아 계시는 동안 순간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죽음을 막을 수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으시다며 정말 열심히 운동하신 어머니. 산에서 70 중반의 할머니는 뵙기 힘들다. 헉헉거리며 다리 아파서 쉬고 있던 아저씨 아줌마들이 머리가 허연 어머니를 뵙고는 "저 어르신도 저렇게 가고 계시는데, 젊은 우리가 이러면 되나.."라며 어머니께 "어르신 대단하십니다." 한마디 해 주고 간다.

 

어머닌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그 다음에는 머리카락이 어느 날 다 빠져버렸다. 마치 삭발한 것처럼. 첨단기계를 동원하여 병원에서 검사를 하였으나, 장기에는 어떤 이상도 없다며 결국 내린 진단은 스트레스였다. 가발을 사 드리려고 하였으나 어머닌 거부하셨고, 모자를 사 서 쓰고 다니시며, 자식들 집을 왕래하셨다. 바람이 불어 모자가 날아가면 사람들이 어머니의 머리를 보고 수군거리긴 하였으나 어머닌 개의치 않으셨다.

 

동생은 어머니 머리를 마사지 해 주며 정성으로 돌봐드리고, 언니는 어머닐 산으로 불러 자식들이 세상의 모든 관심사가 되지 않게 만들었고, 식당가서는 남들 눈을 의식하지 않고 땀 난 머리를 식힐 수 있도록 당당하게 모자를 벗고 식사하실 수 있도록 해 주고, 산에 가서도 어머니의 뒷머리를 남들이 보건 말건 언제든지 모자를 벗고 자연바람과 햇살을 쐴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어머니 말씀을 들어드려 다른 자식에게는 못하는 이야기들을 하실 수 있도록 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자신감과 당당함이 보이고 사랑하는 자식들과 함께 산에 가는 어머닌 앞모습도, 뒷모습도, 외모도 마음속도 아름답다. "내가 빨리 죽어야지." 병과 함께 찾아 온 여러 가지 일들이 어머닐 괴롭히던 그 때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지금은 산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산에서 보는 어머니는 참 많이 웃으신다. 주름이 많이 펴지신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일들을 내려놓으시고, 당신 눈에도 이제 온전한 산이 보이나 보다.

 

북한산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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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숙

산이 주는 위안과 자식들의 따뜻한 사랑이 마음에 전달되어서 일까? 아니면 어머닌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으셨을까? 머리카락은 먼저 빠진 자리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지금은 뒷머리 부분을 제외하면 흰머리가 나오면서 검은 머리로 바뀌면서 촘촘하게 나오고 있다. 이젠 모자가 쉽게 벗겨지지 않고, 잠시 모자를 벗어도 예전보다 훨씬 낫다.

 

머리카락이 빠졌다가 3년에 걸쳐 다시 나오는 신기함. 단풍 든 북한산에서 나는 줄곧 어머니 뒷모습을 보며 걸어갔지만, 그 풍경이 마치 꿈 속 같기만 하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내 눈 앞에 그대로 펼쳐지는 그 광경. 바위에도 절 하시고, 나무에도 절 하시고 산신령에도 절 하시며 다치지 않게 잘 다녀간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는 어머니 모습. 단풍과 어머니 뒷모습이 함께 내 마음속 사진기에 찍혔다. 오래도록 기억날 것이다.

 

나는 좀 전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 북한산에서 뵐까요?" 내 일정에 산행을 맞추는 죄송스러움은 있지만, 이 딸과 동생에게 무조건 적인 사랑으로 시간을 내주는 두 분에게 내일은 제일 맛있는 점심대접으로 작은 보답을 할 것이다. 10월의 북한산은 내게 꿈속을 선물했는데, 11월의 북한산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와 설렘을 가진다.   


#북한산 단풍#뇌경색#어머니#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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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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