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경(孝經) 제13장에는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자식으로서 그 슬픔을 다하고, 영혼을 모시는 제사를 지낼 때에는 자식으로서 그 근엄함을 다하라고 나온다. 즉 우리가 말하는 효는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인간이라는 생물의 유기체가 생명을 다해 그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제사라는 행위를 가지고 그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나라는 존재의 내면적 가치를 높이는 일로서 족보라는 문서로 표면화되기도 한다.
혹자는 어머니 연세 90이 넘어 돌아가셨으니 자신들의 효가 아니면 어찌 90을 넘기셨겠느냐며 가소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부모님께 대한 물질적 봉양을 말하는 것 일게다. 해서 당신의 부모님께서 편찮으실 적에, 당신이 기르는 애완견이 아플 때 사골국물에 온갖 정성을 들이고 끌어안고 잠까지 자가며 병간호하는 것처럼 그런 정성은 있어보았느냐? 당신의 부모님이 아무리 90을 넘겨 돌아가시어 호상이라고는 하나 당신 애완견이 죽었을 때처럼 곡기까지 끊어가며 슬퍼해본 적은 있느냐? 되물었더니 입을 다물고 마는데...
키우던 강아지도 죽으면 석 달 열흘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 법이다. 정이라는 게 그렇게 무섭다. 하물며 나를 낳아주시고 젖을 먹여 키워주신 부모님이야 오죽하겠는가. 80이 넘고, 90이 넘어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라며 부모님 한줌 재가 된 지 열흘도 안 되어 바다로 산으로 관광차에 몸을 싣는 분들이 딱해서 하는 말이다. 내 어찌 그런 사람들과 길게 연을 이어가리. 또한 호상, 호상 하는데 100살을 넘겨 돌아가신들 내 부모님 돌아가신 것이 어찌해서 호상이란 말인가? 내 부모고 남의 부모고 간에 슬픔은 있을지언정 호상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같은 동네서 얼굴을 맞대고 사는 두 분께서 얼마 전 상을 당하셨습니다. 가을이라 동네 분들하고 단풍놀이를 가는데 상을 당하신 지 일주일도 안 되었건만 참석을 하시어 참으로 게걸스럽게 노시는 것을 보고는 사람들 모두 입이 딱 벌어지더군요.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는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더니 부모님이 돌아가시었는데 어찌 그리 신나게 노느냐며 다들 한마디씩 하는데 90이 넘어 돌아가셨으니 괜찮답니다.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상장(喪杖)이 어찌 이리 짧으냐? 부모를 여읜 죄인이니 허리 펴서 하늘을 보지 말라는 뜻이지요.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 슬픔을 다하라는 뜻인데 이렇게 상장(喪杖) 하나에도 깊은 의미가 있건만 돌아가신지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안 되어 희희낙락 관광차에 몸을 싣고 떠나는 분들을 보며 눈살이 찌푸려지기에 답답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상장(喪杖)이 왜 짧은가 다시 한 번 새겨볼 일이다." (상장 : 상제가 짚는 지팡이)
인생이 한 번 죽어지면 열두 매끼 꽁꽁 묶어 북망산천 떠나가네. 이제 떠나가면 영영 다시 못 올 길을 자네 두고 나는 간다. 부디부디 잘 있으소.친구 벗님 많다거늘 어느 친구가 대신 가랴.일가친척 많다 한들 어느 누가 동행할까.산천초목은 젊어 가고 우리네 인생은 늙어만 가네.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 보고서 웃덜마라.나도 어제 청춘인데 오늘날에 이리됐네.일가친척 많다 한들 어느 누가 동행할까.부귀영화 일장춘몽 흐르는 물에 부평초라.달이 되고 별이 되고 해가 되고 꽃이 돼서바람 되고 구름 되고 눈 비 되어서 나는 간다.일락서산에 해는 지고 월출 동녂에 달이 된다.이웃들아 친구들아 잘 있으소 잘 있으소.섭섭해서 못가겠소 다시보자 벗님들아.이제이제 떠나면은 정녕 다시 못 올 길을자네 두고 나는 간다. 부디부디 잘있으소.꼬꼬닭아 나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