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심했나 봅니다. 천식, 결핵, 당뇨를 앓았던 걸로 파악됩니다. 현장에 갔더니 시신은 심하게 부패되지 않았더군요. 냄새도 많이 나지 않았습니다. 미라 상태였죠. 주변 정황을 종합해볼 때, 설 명절 지나고 2월쯤에 사망한 걸로 추정됩니다."여수경찰서 사건담당 형사가 수사 기록을 보며 전한 말입니다.
지난 10월 13일, 홀로 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정아무개씨(48)가 전남 여수 자신의 아파트에서 죽은 채 발견됐습니다. 사망 시점이 언제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경찰은 정씨가 사망한 지 8개월 이상 됐으리라 추정합니다.
경찰은 정씨의 사망 시점을 추정한 근거로 지난 설 연휴 형과 마지막으로 만난 후 연락이 끊겼고 아파트 관리비가 2월부터 체납된 점을 들었습니다. 또 외부침입이나 자살 흔적은 없었답니다.
그러면서 병사(病死)를 직접적 사망원인으로 추정합니다. 그동안 앓았던 지병이 악화돼 사망했다는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하 '수급자'라 칭합니다) 정씨는 차가운 아파트에서 쓸쓸히 죽었습니다.
1년 단위로 실시하는 조사, 제때 했더라면... 지난 8개월 동안 정씨를 직접 만난 공무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 동 주민센터를 찾아 정씨를 상담한 일자를 물었습니다. 2009년 9월 정씨가 다른 곳에서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옮겨왔을 때 방문상담을 실시했더군요.
그 후 담당 공무원은 1년이 안 된 시점인 2010년 7월 8일 수급자 자격이 유지될 수 있는지 알아보러 정씨를 또 한 번 직접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부와 자치단체가 정씨에게 보여준 마지막 관심이었습니다.
마지막 만남이 있은 후, 정씨는 서류와 컴퓨터 프로그램상에서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숨을 거두던 순간까지, 그리고 8개월이 지나는 동안 아무도 그의 아파트 문을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수급자 자격 유지 여부를 파악하기 1년 단위로 조사를 실시합니다. 때문에 단순히 계산하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정씨를 올해 7월쯤 만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조사가 늦어졌고 1년이 훌쩍 지나도록 담당공무원은 정씨를 찾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담당 공무원에게 물었습니다. "처리해야 할 행정업무가 산더미 같아 사실 1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현재 여수시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7459세대 1만2438명 있습니다.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은 82명으로 1인당 담당해야 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가 144명입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여수시만 특별히 업무가 많은지 알아봤더니 타 시군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인구와 수급자수가 비슷한 강원도 원주시의 경우 수급자가 5703세대 1만307명으로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1인이 수급자 169명을 맡고 있더군요.
또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은 수급자 업무 외에도 다양한 복지 요구에 대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답니다. 그 말은 핑계가 아니라 사실일 겁니다. 더구나 여수는 세계박람회 준비로 할 일이 많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이렇게 안타까운 것은 최소한 수급자 자격 유지 조사만 제때 했더라도 정씨의 상태를 좀 더 빨리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때늦은 생각 때문입니다.
관리비 8개월째 연체... 이상하지 않았을까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니, 그의 아파트를 찾아온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아파트 관리비가 밀려 이를 독촉하러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또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종량제 쓰레기봉투도 전달하러 그 누군가 찾아왔을 텐데…. 그의 죽음을 8개월여 동안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웃 주민에게 정씨에 대해 물으니, 거문도로 일하러 간 줄 알았답니다. 결국 그의 아파트를 찾은 사람들은 문 한 번 두드려 본 후 기척이 없자 독촉장만 열심히 붙이고 간 겁니다.
그동안 정씨에게 지급되는 최저생계비도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됐습니다. 동 주민센터에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있습니다. 곳곳에 종합사회복지관도 있습니다. 봉사단체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밑반찬도 가져다 줍니다.
명절이면 무료로 쌀이며 온갖 온정이 담긴 물품을 수급자에게 전달합니다. 촘촘한 사회복지 서비스망이 있는데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요?
아파트 내 종합사회복지관도 '무용지물'복지 사각지대가 없도록 안전망을 연결해놓았다는 정부와 자치단체 행정 어디에 구멍이 났을까요? 정씨가 살던 아파트단지 내엔 종합사회복지관도 있습니다. 정씨 같은 사회적 약자를 찾고 도우라고 말이죠.
돈 들여 복지관을 세워 놓았지만 정작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정씨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습니다. 종합사회복지관이라지만 아동과 노인복지를 주로 챙기기 때문이랍니다.
보건소도 정씨를 외면했습니다. 보건소는 저소득 건강 취약 계층을 직접 찾아 그들을 돌보는 '맞춤형 방문보건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홍보합니다. 경찰이 밝혔듯 정씨는 지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몸 상태가 심각했던 거죠.
이는 그가 다녔던 병원 기록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정씨는 오래 전부터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2007년 광주 아무개병원에 열흘간 입원해 천식과 결핵을 치료받은 일도 있습니다. 최근엔 심한 당뇨를 앓고 있었죠. 노동을 할 수 없는 몸 상태였나 봅니다. 그래서 수급자가 됐겠지요.
정씨가 앓았던 결핵이라는 병은 국가에서 특별 관리하도록 정해놓았습니다. 보건소에서 맡아 관리합니다. 정씨가 몸에 지니고 있던 병들은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보건소는 그를 적극적으로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정씨에겐 이름뿐인 '맞춤형 방문보건 서비스'였습니다.
박람회 준비 바쁘더라도 약자에 대한 관심 줄면 안 돼곱씹어보니 이 모든 일이 관심 부족으로 생긴 일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느 곳에 관심을 두면 그곳의 필요가 보인답니다. 여수는 세계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계박람회를 치르는 일은 국가대사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또 시민들은 여수가 세계적인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믿습니다. 많은 관심과 예산을 세계박람회 준비에 쏟아 붓습니다. 가히 세계박람회 열풍이라 할 만합니다. 이를 토 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열풍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지면 안 되겠죠.
박람회보다 더 신경 써달라 말하기 힘든 사정입니다. 그래도 박람회에 신경 쓰는 절반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복지 분야 아닐까요? 특히 이번 일을 돌이켜볼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더욱 절실한 듯합니다. 자칫 시민들로부터 박람회 준비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가 생겼다는 오해를 받을까 걱정도 되고요.
정씨가 죽은 채 발견된 지 한 달이 지나갑니다.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됐습니다. 거리에선 세계박람회 성공을 위한 캠페인이 한창입니다. 어깨띠 두른 무수한 사람들을 보며 이번 사건이 자꾸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업무 전념하도록 배려해야바라건대 어깨띠 두른 많은 사람들 중에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은 없었으면 합니다.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이 각종 행사에 참여할 시간에 담당하고 있는 어려운 이웃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일선 현장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은 업무가 많다며 아우성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그들만이라도 복지업무에 전념하도록 배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일이 '정씨 사망'과 같은 불행한 일을 막는 최소한의 조치라 생각합니다. 8일 오전, 정씨가 살았던 곳 주민센터를 다시 찾았습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업무를 맡고 있는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은 자리를 비우고 없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불법 광고물 철거하러 자리를 비웠다"고 말합니다. 돌아서는 발걸음, 고개 들어 하늘을 봅니다. '세계박람회 개최'라 적힌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