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사회,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가는 첫 단계다. 그러나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세울 수 있다." 자신이 펴낸 책 제목처럼 <정의란 무엇인가>란 화두로 우리 사회에 신선한 메시지를 던져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 그가 이번엔 <왜 도덕인가?>(안진환·이수경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란 책을 통해 '도덕', '윤리', '정의' 논쟁에 다시 불을 던지고 있다.
'지금 왜 우리에게 도덕적 가치가 필요한가?'란 물음과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준 이 책에서 그는 "도덕이 전제되지 않은 정의란 있을 수 없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특히 책에서 "윤리적 기반을 잃은 정치야말로 국가와 국민의 공공선에 해악을 끼치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강조한다.
마이클 샌델 "정치인 거짓말,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가?"
마이클 샌델은 <왜 도덕인가?>란 그의 책 곳곳에서 도덕적 가치의 기반이 급격히 허약해진 우리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공직자와 정치인의 도덕성은 일반인보다 높아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어떤 경우에도 정치는 도덕적 가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내내 주장한다. 어쩌면 그리도 우리나라 정치권의 속사정을 이토록 잘 헤집어 놓았을까.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다.
무엇보다 이 책 제3장 '시장논리가 공교육을 후퇴시키고 있다', '돈이 없으면 배울 권리도 없는가?'와 제5장 '정치는 도덕적 가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정치인의 거짓말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가?' 등은 마치 우리의 현실을 꿰뚫어 보는 듯하다. 제목에서부터 메시지가 뜨겁고 무겁게 다가온다.
마이클 샌델이 던진 '왜 도덕인가?'란 질문에 가장 낯 뜨거워 할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선 과연 누구일까. 이 책대로라면 도덕적 해이와 거짓말을 양산해 내는 정치권이 가장 낯 뜨거워 해야 마땅하다. 또한 살아 있는 권력의 편에서 국민의 공분을 양산해 내는 권력형 비리 주범들, 그리고 도덕적 가치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권 실세들은 이 질문 앞에서 누구보다 낯 뜨거워 해야 옳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도덕적 해이와 윤리적 가치가 허약한 이들이 도덕을 더욱 강조한다.
측근-친인척 비리로 청와대를 향한 여론의 냉랭한 시선이 쏟아지던 시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 30일 확대비서관회의서 청와대 참모들에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인 만큼 조그마한 흑점도 남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최고 권력자의 이같은 발언에 여론은 더욱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더니 검찰이 이를 무마하려는 듯 총대를 짊어지고 나섰다. 우리사회에서 도덕적·윤리적 가치에 가장 갈증을 느껴야 할 검찰이 수세에 몰린 상황을 곤혹스러워 하기보다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국민을 옥죄어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행태가 가관이다. 사례별로 짚어본다.
[#장면 1] '물 먹은 검찰'보다 '정치검찰'이 더 좋다?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우진 부장판사)는 "금품수수를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직접증거는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진술뿐인데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 일관성과 합리성이 없는 부분이 있고 진술 자체에 추가 기소를 피하려는 이해관계가 있는 것으로도 보여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한 전 총리는 지난해 4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무죄 선고를 받은 지 1년 6개월 만에 또 다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날 재판부는 "한만호 전 대표의 비장부와 채권회수 목록은 비자금을 마련했다는 증거는 되더라도 그것을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다는 금품수수의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1년 6개월 전에도 검찰은 곽 전 사장의 진술 외에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 셈이다. 하지만 한 전 총리의 수사에 심혈을 기울여 온 검찰은 법원 판결에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1일 이례적으로 '한명숙 정치자금법위반 1심 판결에 대한 검찰 입장'이라는 반박자료까지 냈다. 법원의 판결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더욱이 서울중앙지검 윤갑근 3차장검사까지 나서 "법원의 판결은 한마디로 코끼리 다리 만지기"라면서 '표적 판결'이라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해 따가운 눈총을 샀다.
한 전 총리를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하면서 "이번에는 확실하다"고 호언장담했던 검찰이 또 망신살만 뻗쳤다. 사실상 검찰이 무리한 짜맞추기식 수사를 해왔음이 드러난 단편적 사례다. 'MB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번 한 전 총리 무죄 판결 이후 국민들 사이에선 "검찰이 지독하게 편향된 수사를 하고 있다"며 공분이 높아만 가고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물 먹어도 좋으니 정치검찰이란 소리가 더 듣기 좋다'는 식이다. 전혀 반성과 성찰의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코미디 같은 일들이 연거푸 발생한 까닭이다.
[#장면 2] "한미FTA 유언비어 구속수사?"... "시대착오적 발상"
대검찰청 공안부(부장 임정혁)가 이번엔 직접 총대를 멨다. 7일 한미 자유무역협정(한미FTA)과 관련된 유언비어·괴담 등 허위사실 유포 행위자와 과격시위 주동자 등에 대해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는 등 강력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8월 12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한상대 검찰총장의 취임식 이후 3개월 만에 공안부가 다시 칼자루를 쥐었다.
"이 땅에 북한 추종 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통일 기반을 마련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공안 역량을 정비하고, 일사불란한 수사 체제를 구축하여 적극적인 수사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는 결코 외면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공안통으로 잘 알려진 한 총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척결', '응징', '일사분란' 등의 섬뜩한 표현을 공안검사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 듯하다. 본색을 드디어 드러내기로 작정한 것일까. 검찰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토론방 등을 통해 한미FTA와 관련된 괴담 수준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단순 허위사실을 퍼뜨려 형사처벌할 수 없는 경우라도, 관련기관이나 단체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에는 민사소송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검찰은 "한미FTA 반대 집회·시위에 대해서도 적극 대처할 것"이라고 밝힌데 이어 "최근 국회의사당 침입 시도를 비롯해 불법·폭력 집회가 늘고 있다"며 "집단행동의 주동자 및 과격·폭력 행위자는 원칙적으로 구속수사하겠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많은 국민들의 반대와 거센 저항을 사고 있는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 정치권이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검찰이 나서 비판세력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그만큼 MB정부가 국민을 설득해낼 자신감이 없다는 방증이다. 더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같은 자유로운 언로를 막으려는 시도는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모든 가치는 손상시키려는 힘과 부딪히기 마련이다"고 강조한 마이클 샌델의 충고를 대한민국 검찰은 겸허히 받아 들여야 할 때다.
[#장면 3] 정치 모르는 '정치검찰', '미네르바·PD수첩 판결' 잊었나?
검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인터넷을 통한 한미FTA 허위사실 유포 등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한다고 하자 그동안 같은 편에 서왔던 한나라당조차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반박한 것은 아니러니하다. 한나라당은 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검찰의 구속수사 언급에 대해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저해할 수 있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이런 뜻을 검찰에 전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나라당은 "검찰이 '정치검찰'이 아니라는 것을 정치적이지 못한 행동을 보여주면서까지 입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한발 더 나아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기반으로 한 부정확한 정보의 조직적 유포를 통해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저해하는 행동은 자제돼야 한다"며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가깝게는 10·26 재보궐선거 등 최근 각종 선거에서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사이트의 강력한 위력에 할 말을 잃은 한나라당으로선 검찰의 행태에 열이 받을 만도 하다. 오죽했으면 한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나는 여야 시민사회 모두 합리적 논거로 논쟁하기를 학수고대하는 사람이지만 공안부의 똥볼에 더 열받는다"고 검찰을 비난했다. 또 다른 동료의원도 "형사소송법에는 불구속수사가 원칙"이라며 "오버해서 여권에 부담만 주는 '정치를 전혀 모르는 정치검찰'을 어찌해야 하나"라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반문했다.
대검찰청 공안부가 서울시장 재선에서 참패한 여당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것일까. 정연주 전 KBS 사장, 미네르바 사건, MBC PD수첩 등이 줄줄이 무죄선고를 받은 것을 벌써 잊은 것일까.
[#장면 4] "FTA 비준 미의회 통과 20만 달러..." 사실이라면, 검찰은?
<한겨레>가 '정부 FTA 비준 로비 드러나'와 '한국정부, FTA 미의회 통과 20만 달러 자문계약'이란 제목의 8일자 기사들에서 문제 제기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국민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려 하지 말고 MB정부부터 구속 수사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한국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달 미국 국빈 방문 때 행한 의회·상공회의소 등 연설문의 초안 작성을 미국 로비업체에 의뢰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미FTA의 미 의회 통과를 위한 자문계약을 미국의 대형 로펌회사와 20만 달러에 맺은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한겨레>가 보도한 내용의 진위부터 가리는 게 급선무 과제다. 그럼에도 굳이 국민의 입부터 막아 보려는 행태는 참으로 안타깝다. 여론의 비난 화살은 이미 검찰을 향해 당겨졌다. 게다가 "한미FTA는 고장난 미국식 경제제도를 이식하는 경제통합협정이자 공공정책에 관한 국회 입법 권한을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초헌법적 협정"이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 래칫 조항(한 번 개방되면 어떠한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다는 역진 방지장치) ▲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 비위반 제소(기대하는 이익에 미치지 못한 경우에도 제소) 등을 독소조항으로 꼬집고 "우리에게 불리한 각종 독소조항을 그대로 둔 채 비준안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미FTA 관련 유언비어 괴담을 수사하고, 사태가 종결돼도 철저한 채증을 통해 불법행위 가담자들을 전원 색출하고, 주동자 및 배후조종자는 끝까지 추적해 엄단함으로써 불법의 악순환을 근절하겠다"는 입장만 고수할텐가. 국민들의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도, '정치검찰'이란 지적을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왜 도덕인가?'란 질문을 검찰은 스스로에게, 냉철하게 던져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