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왜 배리어프리 영화를 주목해야 하는지, '장벽'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가상 대담을 통해 짚어 봤습니다. [편집자말] |
잎싹(이하 잎)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잎싹입니다. 제가 출연한 <마당을 나온 암탉>이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배리어프리 영화가 뭐냐고요? 배리어프리 영화란 영화 속 화면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면 해설을 제공하거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자막을 제공하는 등 특별히 만들어지는 영화를 말해요. 그래서 오늘은 배리어프리 영화가 가장 필요했던 두 분을 모시고 대담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먼저 각자 자기소개를 해주시죠."
심봉사(이하 심) : "안녕하십니까? 심청 애비 심봉사올시다. 우리 같은 시각장애인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 영화가 만들어 지는 세상이 돼서 정말 '오래 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먼요."
사오정(이하 사) : "안녕하세요? 사오정입니다. 이제는 외국영화만이 아니고 우리 영화도 볼 수 있게 돼 참 다행입니다."
잎 : "그럼 두 분을 모시고 오늘의 이야기 할까 하는데요. 먼저 사오정님께서 인사를 하시면서, '그동안 외국영화만 보셨다'고 말씀을 했는데 왜 그랬죠?"
사 : "외국영화는 대사가 자막으로 나오잖아요. 그래서 우리 같은 청각장애인도 영화의 내용을 알 수 있었죠. 다만 대사 외의 내용, 그러니까 웅장한 음악이라던가 효과음 같은 것은 전혀 알 수가 없어 답답했죠."
심 : "그건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라오. 우리는 한국영화 밖에는 못 봤어. 나같이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늙은이들은 말이야. 그리고 영화에서 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그게 빗소리인지 마당을 쓰는 소린지도 몰라요. 또 예를 들자면, 주인공이 막 쫓기는 장면 같은 곳은 대개 긴박한 음악만 나오거든. 그럼 우린 그냥 음악이나 감상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런 게 다 해결되는 영화가 나오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지금까지도 간간이 화면 해설을 하는 영화, 그러니까 화면 해설 영화가 있었는데 배리어프리라는 영화는 그것과는 뭐가 다른거유?"
영화 내용 전달이 확실한 '배리어프리 영화'
잎: "큰 의미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하더군요. 넓은 의미에서는 화면 해설 영화나 자막영화가 모두 배리어프리 영화에 포함되는 것이죠. 그런데 최근에 시작한 배리어프리 영화는 기존의 화면 해설 영화나 자막 추가 영화와는 조금 다른 게 있어요. 자막이나 화면 해설을 영화감독 등 제작자가 직접 참여해 만들었다는데 매우 의미가 크다고 하겠지요.
기존의 화면 해설 영화는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시각적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을 첨부하거나 자막을 넣었다면 배리어프리영화는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 직접 작업을 하기도 하는 것이거든요. 일본 동경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배리어프리 연구부문의 특임연구원 오오코치 나오유키씨는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배리어프리 영화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고 해요. 한 번 들어볼까요?"
'일본에도 기존 영화에 해설을 붙이는 화면 해설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화면 해설 영화는 저작권 등의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또 작품을 직접 제작한 감독의 원래 제작 의도와 조금 다르게 해설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래서 감독 등 영화를 직접 만든 이들이 영화를 설명하는 영화, 그러면서 시각장애나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도 감상할 수 있는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학교(동경대) 배리어프리 연구부문과 배리어프리 영화 연구회 그리고 몇몇 영화인들이 중심이 돼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작업이 시작돼 2008년에 히가시 요스케 감독의 <그림 속의 우리 마을>이 처음 제작이 됐습니다. 이 영화는 감독이 자막부터 화면 해설의 내용까지 직접 참여한 본격적인 배리어프리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오코치 나오유키씨)사 : "그렇구나. 그런데 기존 영화에 해설이나 자막을 넣는 거랑 감독이 배리어프리 영화를 직접 만드는 거랑 똑같지 않나?"
잎 : "네. 그럴 수 있지요. 오오코치씨는 그런 면을 이렇게 설명하더라고요. '화면 해설은 원래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와 다르게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요. 그런데 감독이 직접 화면 해설이나 자막 제작에 참여하면 이런 문제가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요? 또한 '화면 해설 영화 같은 영화들은 저작권 문제에 휩싸일 수 있는데, 제작하는 쪽에서 직접 이런 문제에 개입하면 더욱 편하게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다'고 말이죠."
심 : "히가시 감독이 만들었다는 <그림 속 우리 마을>을 나도 본 적이 있어. 일본에 가서 말이야. 뭐 영화관은 아니었고 시사회 같은 곳이었지. 그 영화 속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 주인공이 초등학교 3, 4학년쯤 된 남자아이였는데, 아무래도 여자의 육체에 대한 궁금증이 컸나 봐. 그래서 누나의 가슴도 만져보고 싶고 그랬지. 엄마가 목욕을 시키면서 아이에게 여자의 가슴에 대한 설명을 해주거든. 근데 말이야,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장면에서 여배우의 가슴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고 하더라고…. 근데 감독이 만든 화면 해설 내레이션에는 그런 내용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나중에 시사회 뒷풀이 때 감독한테 '왜 그런 설명을 넣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일부러' 그랬다는 거야! 그래야만 더욱 영화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다나? 암튼 그때 조금 아쉬웠어."
잎 : "후훗. 심봉사 아저씨. 정말 아쉬웠나 보네요. 사오정님은 어떤가요?"
사 : "청각도 그런 문제 있지. 예를들면 자막을 넣을 때 대사와 설명 자막이 같은 곳에 있어서 헷갈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자막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미처 읽지도 못할 때도 있거든요."
심 : "그동안 화면 해설 방송이나 화면 해설 영화가 그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 처음에는 그냥 화면 해설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이 화면 해설 내레이션을 쓰는 작가들이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잘 몰라서 진짜 엉성한 화면 해설이 되곤 했어.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시각장애인이 모니터링을 하기 시작했지. 덕분에 지금은 엄청 좋아졌어. 배리어프리 영화는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말아야 할 텐데…."
잎 : "일본의 경우도 심봉사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그런 고민이 있었나 보더라고요. 그러나 지금은 매년 일본의 사가현에서 '배리어프리 영화제'가 치러질 만큼 발전했다더군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배리어프리 영화로 만들어진 안상훈 감독의 <블라인드>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각장애인 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가 전문성을 가지고 처음부터 감독과 같이 작업을 진행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심봉사 아저씨의 걱정은 다소 해결이 될 수는 있었지만, 앞으로도 그런 움직임이 계속돼야 하겠지요."
배리어프리 영화도 제작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
심 :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도 배리어프리 영화의 가이드 라인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나? 처음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잎 : "네. 저도 동감이에요. 자막은 1초간 12문자를 넘기면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런 내용을 포함해 자막이나 화면 해설을 만들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 같은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요. 그렇다고 너무 강요하면 또 다른 틀 속에 갇힐 수 있는 위험도 있고요. 앞으로 만들어질 배리어프리 영화는 이런 고민도 함께해야 하겠지요."
사 : "그럼 우리나라에서도 배리어프리 영화가 계속 만들어 지는겁니까? 그냥 한두 편이 아니고?"
심 : "얼마전에 배리어프리 영화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 영화 설립 추진 위원회'가 만들어졌다는 소식 들었는데…."
잎 : "네. 맞아요. 지난 10월 31일에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든 일본과 한국의 영화 관계자들이 배리어프리 영화와 관련한 심포지엄도 했고, 일본영화 <술이 깨면 집에 가자>와 한국영화 <블라인드>가 배리어프리 영화로 상영회를 가지기도 했어요. 앞으로 더욱 많은 영화들이 배리어프리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사 : "그런데 말야. 배리어프리 영화가 모든 영화에 적용되는 건 아니잖아. 또 만들어진 영화도 일반 버전과 배리어프리 버전이 별도로 있고…. 이렇게 되면 배리어프리 영화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의 선택의 폭이 좁아질 텐데…."
심 : "맞아. 동경대 배리어프리 연구부문의 전영미 박사는 '배리어프리 영화는 일부 장애인을 위한 영화가 아니고 새로운 장르의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시각이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화를 위해서는 감독의 의도가 해설 내용에 반영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함이 중요하다'고 말하더군요. 또 '무엇보다 한두 편의 영화가 아니고 현재 제작되는 모든 영화에 접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나 영화 제작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
잎 :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미디어접근센터 황덕경 부장이 그러더라고요. '시각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화면 해설을 만든다면 시각장애인이 그 내용을 60%밖에 이해하지 못한다'고요. 그러면서 '현재 화면해설영화나 배리어프리영화를 제작할 때 내레이션 작가들이 제일 고민하는 것이 감독의 제작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감독과 당사자 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이죠."
영화 너머 함께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 문화로
사: "심봉사 아저씨. 그런데 얼마전에 어느 공연에서 뮤지컬을 FM 수신기 같은 도구를 이요해 해설해 주던데요. 그런 도구를 이용할 때랑 영화자체의 음향으로 들을 때랑 느낌이 어떻게 달라요?"
심 : "그게 말이지…. 사실 사람에 따라 달라. 난 개인적으로 FM 수신기나 동시통역에서 사용하는 그런 장비로 화면 해설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 솔직히 배리어프리 영화가 일반인에게는 오히려 귀찮을 수도 있지 않겠어? 그렇지만 시각장애인 중에는 FM 수신기의 음향, 영화에서 빵빵터지는 음향효과들의 밸런스 문제나, 그냥 수신기를 사용하는 게 귀찮아서 배리어프리 영화가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 그것보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우리도 영화를 선택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영화 자체말고 영화와 관련된 인프라, 즉 매표소부터 영화관 내부시설 등을 시·청각장애인들도 편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야."
사 : "네. 영화 <블라인드>를 저도 봤는데요. 대사와 설명 자막을 가로줄과 세로줄에 따로 배치해서 좋았어요. 그런데 만약 영화관 스크린 옆에 별도의 자막 영상을 설치한다면, 더 많은 시·청각 장애인들이 더 많은 영화를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심 : "내가 미국에 어느 대형 아쿠아룸에 갔을 때였어. 거기서 FM수신기 같은 것을 하나 받았는데, 그걸 이용하면 수족관을 돌아다닐 때, 수족관 전체에 달려 있는 센서에서 이를 감지해 내가 있는 위치에서 필요한 정보를 다 설명해주더라고. 그런 장비를 영화관 등 관람시설에도 설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사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콕 찝어서 영화관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멀티플랙스를 찾아 영화를 고를 때도 있잖아.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이 선택해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어. 미국에서 체험했던 그런 장비로 현재 상영중인 영화에 대한 정보나, 영화관 시설 내부정보 등을 알려주면 좋을텐데 말이야…."
잎 : "네. 맞아요. 배리어프리라는 말이 말 그대로 '장벽이 없는 것'을 의미하듯이 배리어프리 영화가 단지 영화 한 편의 문제는 아닙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관람 문화 자체를 함께 즐길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겠어요. 오늘 두 분 정말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마당을 나온 암탉>의 배리어프리 영화 버전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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