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 출근길이 덜 피곤하다. 온몸을 부대껴야 하는 아침 출근길 지하철과 버스 안 사정 때문에 보통 직장인에게 아침 출근길은 즐겁지 않다. 요즘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압도적 다수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울에서 다수의 직장인에게 출근길은 번잡하고 인파와 자동차에 시달리는 길이다. 또 너무 바빠 몇분 몇초라도 빨리 사무실에 도착하고자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발걸음이 빠르기만 하다.
나는 요즘 출근길에 작은 즐거움이 생겼다. 처음에는 나도 큰길로만 다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쩐지 이 길이 더 서늘하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러다가 몇 차례 미로같은 골목길 출근을 시도해 봤다. 종로구 어딜 가든 좁은 골목길이 수 갈래로 이어진다. 점심시간 등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나 사무용품을 사러 다닐 때 골목길을 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 골목길에 도가 트게 된다.
나 역시 바쁜 아침시간 말고 점심 먹으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인근 골목여행에 나섰다. 처음부터 골목길을 순례한다는 마음과 계획 따윈 없었다. 그저 몇 번 발걸음이 반복되다 보니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은 것이다. 머릿속에 대강의 방향과 지도감각이 생기자, 아침 골목길 출근이 즐거워졌다. 큰길에 비해서 멀지도 더 가깝지도 않은 골목 출근길은 심리적으로는 지루하거나 피곤한 느낌 없어 좋다.
오히려 아침마다 작은 골목여행을 하면서 출근하는 기분도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피해 다니는 곡예를 하지 않아도 좋고, 큰길에서 부딪치고 마주치는 사람들보다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더 반가움이 느껴진다.
나는 창덕궁 근처에서 일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창덕궁 정문 맞은편 골목 어디쯤에 사무실이 있는데,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내리면 낙원상가를 지나 큰 길로 출근할 수도 있지만, 요즘 내가 선택한 길은 수표로와 돈화문로 골목길이다. 이 골목으로 접어들면 아침부터 국물 끓이고 솥과 그릇을 씻거나 마당을 청소하는 손길로 바쁜 식당들이 즐비하다. 지난 밤 술손님들의 왁자함과 숙취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아침 국물 끓이는 뜨거운 냄새와 물을 뿌려가며 쓱쓱싹싹 청소하는 손길들도 바쁘다. 열심히 물을 뿌리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잠시 물길을 반대편으로 조심스레 거두어 준다.
또 이 골목에는 오래된 집들이 참 많다. 70~8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집들에는 이 지역 토박이들이 아직도 살고 있고, 골목마다 오래된 철물점, 세탁소, 점집, 간판도 파는 물건 가짓수도 적은 구멍가게(시골에서 만난 '점빵'과 비슷한 느낌이다), 한복집 등 다양한 가게들이 틈새에 자리하고 있다. 국수집, 해장국집 등도 물론 많이 있다.
어떤 때는 아침부터 골목에 할머니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낡은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어느 집 대문앞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어떤 찻집은 일본 영화 촬영을 하여 유명해졌다. 그래서 가게 앞에 일본어가 뒤섞인 홍보물들이 붙어 있다. 골목을 빠져나와 사무실로 접어드는 큰 길이 가까워지면 최근 공사중인 현장이 두 군데나 있어 먼지가 날리고 시끄러워 웬만하면 피하고 싶긴 하지만, 인부들이 찾는 덕분에 식당이 먹고 살기도 한다. 밥값도 대부분 저렴하다.
이 골목들에는 외국인 게스트하우스나 모텔, 여관 등도 많다. 일부러 찾아오는 외국 손님도 많은 이 길을 나는 매일 출근하기 위해 걷는다. 그리고 출근길이 어딘가로 가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루의 짧은 산책길이요, 사색길이요, 여행길이 되니 나는 요즘 이 즐거움 덕분에 출근길이 한결 즐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