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한국등산학교 제74회 정규반(2011년 4월 9일부터 5월 15일까지)의 교육생으로 입학해 6박 12일의 교육을 마칠 때만 해도 나는 '매주 한 번쯤은 산의 품으로 들겠다'는 결심을 한 적 있다.
그러나 직장과 가정, 빈틈없는 일상들은 그 결심을 흔들고 말았다. 지난 10월, 문득 교육생으로 매주 배낭을 메고 도봉산을 오르던 6주 동안의 형편을 생각해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형편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단지 그때는 결심에 빈틈이 없었고, 정규반 졸업 후에 결심에 빈틈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휴일에 홀로 몇 번 도봉산과 북한산을 트래킹하고, 동문들의 산행에 동행하기로 했다. 지난 11월 6일, 북한산 인수봉 여정 길 등반에 합류했다.
젖은 바위에서의 톱로핑
새벽 빗소리에도 짐을 꾸렸다. 몇 번 밖을 봐도 빗줄기가 멎기는커녕 더욱 굵어졌다. '암벽이 안 되면 산행이라도 한다'는 대장의 말이 있었기에 배낭 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비가 멎을 것으로 생각해야 할지, 비가 계속 내릴 것으로 생각하고 장비를 챙겨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또한 릿지화를 택해야 할지, 방수 등산화를 신어야 할지도 고민됐다. 헬멧과 스틱을 빼고 인수봉 야영장으로 향했다.
제4구역에서 한국등산학교의 동기들이 11월 5일 저녁부터 야영하고 있었다. 오전 내내 비가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텐트 속에서 그동안 못다 한 맛난 이야기들을 나누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정오가 지나서 비가 멎자 안개가 인수봉을 휘감았다. 김종술 강사가 일어났다.
"바위가 젖어있어 정상까지는 힘들고 톱로핑(top roping:등반이 끝나는 지점에 고정 확보물을 설치하고 그 고정 확보물에 로프를 통과시킨 후 그 로프에 몸을 묶고 등반하는 방법)으로 합시다."
우리는 인수봉으로 향했다. 인수봉을 오르는 루트는 공식 루트만 해도 80개가 넘는다. 인수봉의 공식 초등은 1929년 5월 영국의 외교관인 클리프 아처로 기록된다. 한국인 최초의 공식 초등은 1935년 3월 김정태가 한국인 2명과 일본인 한 명과 함께 인수봉 전면벽을 오른 것이란다. 현재의 '인수B'루트다.
물론 이것은 기록에 의한 공식 등정을 말한다. 아처가 1936년 영국산악회에 제출한 등반기록에 따르면, 등반하면서 다른 사람의 등반도 봤으며 정상에 돌탑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분명 인수봉은 이 공식 등정 전에 사람들이 올랐음이 분명하다.
인수봉을 올랐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에 있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기원전 18년에 신하 10명을 이끌고 부아악에 올라 살 곳을 살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그 부아악을 인수봉으로 보는 견해다.
나는 이곳에 길을 낸 수많은 사람들의 은혜에 힘입어 인수봉 바위 앞에 설 수 있었다.
실내암장으로 갈걸
지난주에 쪽빛 하늘에 오만가지의 붉은빛으로 반짝이던 나뭇잎들은 태반이 바위 틈사이에 낙엽으로 내려앉았다. 큰 산의 늦은 가을은 일주일 동안 산 풍경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성긴 단풍이 오히려 애절하게 아름답다.
구름으로 감추어진 인수봉이 경이롭다. 구름이 휘감을 때마다 보이는 거대한 바위의 자태는 모두 다르다. 우리는 여정 길 아래 새로 구입한 장비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그 앞에 막걸리 한잔을 부어 놓았다. 산의 정령들께 '우리의 발길을 허락해주시고 안전을 지켜 주십사'하고 몸과 마음을 낮췄다.
김종술 강사가 선등에 나섰다. 오전 내내 내린 비 때문에 바위가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한 발 한 발 내딛기 쉽지 않은가 보다.
"실내암장으로 갈걸!"
후등자에게 조심하라는 경고의 목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모두는 우리 때문에 강사가 무리한 판단을 하실까 염려 반, 긴장 반으로 선등에 주목했다. 빌레이어(belayer)로 나선 조용준 대장은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안전 확보에 여념이 없다. 거대한 암벽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내가 어떻게 저 암벽을 품을 수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암벽을 디딜 때마다, 발과 손으로 전해오는 바위의 오랜 소리를 듣는다.
친구들아 오랫동안 이 맘으로 같이 가자
차례로 한 사람씩 올랐다. 바위에 붙어 위를 보니 구름도 바위를 타고 있다. 구름은 걸음이 날래다. 5분, 혹은 10분 간격으로 안개구름이 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인수봉을 오르던 그 많던 록클라이머들은 아무도 없다. 오전의 비는 그들의 발길을 막았고 덕분에 우리와 구름만이 인수봉 바위를 올랐다.
인수봉 여정 길 톱로핑 18m. 우리는 딱 그곳까지만 올랐다. 날랜 구름을 뒤따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인수봉의 정상은 구름에 가려졌고, 산 아래는 안개가 깔렸다. 우리는 온전히 단절된 세계에 있었다. 한 사람씩 목적지에 다다를 때마다 모두 박수로 칭찬을 해줬다. 하산길에 동행한 경순씨가 말했다.
"안전 확보하시느라 고생한 우리 대장님, 나이 예순이 되면 보약을 달여 드리겠습니다."
'왜 예순이냐'고 물었다. 남편에게도 못해준 보약, 나이 60세는 돼야 연금을 탈 수 있을 거란다. 경순씨의 예쁜 마음만으로도 대장은 이미 보약 한 첩을 모두 마신 표정이다.
경순씨는 또 다시 힘겨워하는 동기의 배낭을 신랑의 어깨로 옮겼다. 우리 산행 식구들이 아니면 이 모습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더니, 이렇듯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어질고 의리 있는 모습도 산을 닮아가나 보다.
클리프 아처, 김정태…. 그리고 오늘 선등을 한 김종술 강사. 그들이 있어 오늘 우리는 여정 길 18m의 바위를 안을 수 있었다. 바로 우리 앞에서 길을 내는 그분들을 우리는 '스승'이라 부른다. 나도 어떤 분야에서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있다면, 삶의 고비마다 이름조차 모르는 스승으로부터 입은 빚, 조금은 줄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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