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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인연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진정 인연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 사회에 깃발도 꽂고, 성공도 한다. 강호 무림의 맹주들은 대부분 스승과의 인연과 예법을 잘 지켜 무도의 대를 이뤄 대대손손 번영해 나간다. 나의 삶은 내가 살아가지만 그 삶의 진정한 평가는 후대가 한다. 육안으로는 다 보이지 않는 어느 사람의 삶의 내력도 생존기가 지나면 자취가 더듬어져 어느새 지나간 그의 삶이 투명한 유리를 들여다보듯 보인다.

'온고이지신'. 옛것은 결코 옛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 것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듯이, 사람의 삶도 성실과 신의, 그리고 노력 속에서 성장을 거듭하다 보면 그의 삶은 후대가 평가해주기 마련이다. 일상 백성들의 삶에도 적용되는 진리일진대, 하물며 정치 무도인들에게랴. 정치 무림들은 항상 낮은 자세로 도법을 쌓고 용맹정진, 무도 본연의 자세로 정치 공력의 기초를 완성한 후, 강호에 나서야 조금이나마 인정을 받는다. 도법의 기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후들거리는 다리와 흐느적거리는 팔 동작, 그리고 무도의 본질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언변으로 정치 무림계의 기린아가 되겠다는 생각은 미상불 어불성설이다.

빈 것은 채워지게 마련이며 산 것은 언젠가는 모두 사멸하게 돼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에게 사멸은 필연이며, 비워져 있는 공간에 채움의 미학은 자연스러운 예술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예외 없는 자연의 이치도 때로는 심오한 무극의 경지를 낳을 수도 있으니, 일반의 생존 세계가 여기에 이르는데, 상식의 차원을 뛰어넘는 정치 무림의 예술적인 자태야 어이 하겠는가? 세상은 손오공이 아무리 근두운을 타고 천하를 날아봐야 관음보살의 손바닥 안이었듯이 인생 출가의 비단 공력은 모두 이유가 있고, 살아 있는 모든 날 것들의 이면에는 하늘이 점지해 준 사명이 있는 것이다.

무술 분파주의와 무림사회 양극화 해소만이 살 길

고려조 불도 검관 기적총괄 나옹대빵선사가 중궈라천상자 자공법도경에게 불법과 도법의 비기를 배우고자 달려가 자리를 텄다.

"너 어디메서 왔네?"
"산고수려한 나라, 살기 좋은 고려에서 왔습지요."
"배 타고 왔네? 걸어서 왔네? 아니면 신통력을 부려 날아 왔네?"
"날아온 건 아니지만, 제게 약간의 신통력이 있어 어찌어찌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지요."
"오이! 그랴? 난 너 오라고 그런 적 없었는데, 누가 널 나에게 보냈누?"
"저, 스스로 왔습니다. 그 정도의 깨우침은 있습니다."
"그래, 그 눔 신통방통허네. 근데 왜 왔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후대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왔습니다."
"그랴? 잘 왔어. 여기 앉으라우. 오느라 피곤했을 터, 오늘은 푹 쉬고 낼부터 하자우."

나옹선사 엎드려 절하고 제자 받기 엄격하던 자공법도경도 흐뭇하게 웃어대니, 이로써 고려의 불법도경은 활짝 열리고 짱짱 갠 하늘에서 맑은 햇살이 마구잡이로 쳐들어왔다. 하여 불도일심은 수 천 년 여전히 이 땅에서 카랑카랑한 법명(法命)으로 성성하다. 불도들은 다 아는 법언을 감히 훔쳐낸 것은 진흙탕, 5급수의 연못에서도 화사화사 제 잎의 바르고 탐스러움을 뽐내는 연꽃의 성스러움처럼, 나옹을 닮은 정도 무림인들이 작금 우리의 정치 무림의 어지러운 세태를 바로잡아주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백성의 소회 같은 것일 터다. 고려조 선사의 목소리는 지금 시민 백성들의 소셜미디어에 실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환생하니, 온고이지신은 선조들이 혜안이 빚어낸 빛나는 말씀이시다.

통일천하 대중검자의 일관된 지상 절대 과제는 백신창솔선사인 법륜반통일거사의 말씀으로 순차적이고 질서 있는 윤회의 깃발을 강호와 불도의 제단 앞에 올려놓는다. 법륜공은 인연이 완전백신공과 자신의 도법 앞에서 질서 정연한 공력을 드러내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한다는 예법을 보여줬음을 상기시켰다. 자공법도경과 나옹대빵의 인연이 현실로 건너 와 자신과 백신의 인연으로 정리됐다면, 그 연은 시대를 이끌고, 과거를 지우며, 새로운 미래의 순결무구한 융합의 백신으로 거듭날 것임을 통일거사는 주창하고 있었다.

"정통 무술의 비기를 터득하고 흡(吸)의 선경을 깨달아 조선 비권의 기치를 높이 올린 태권의 후예인 보수무림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무장된 신비술권의 절대 신봉자들인 무림 중도 철학주의자 즉 중도 진보 무림의 가치를 수용해야 하며, 예와 악을 숭상하고 인의예지신의 기치를 높이 쳐든 이상 무림의 영원 추구자들은, 정통 무술의 깊이에 경도돼 있지만 마치 서양 록 음악에 우리 가락을 접목시킨 융합처럼 중도 보수 무림의 깊이 있는 내공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나간 시대와 동시대의 절체절명의 과제인 남과 북 무림의 일대 통합, 즉 남북통일과 현실과 이상 무림의 혼재, 즉 남남분열이라는 과제를 극복하고 다원화된 무림 세계의 혼합을 위해서는 서로 '내 무술이 정통이고 네 무술은 이단'이라는 분파주의에서 벗어나 무림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길만이, 우리 대한민주무림대국이 비로소 세계의 문명 무림의 일인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학규공자 "진보라고 무대포로 걸어가면 워쩌자는 겨"

이 무렵, 부산항구국에 위치한 철판공사 한진중공방의 노동 백성들과 운영 사림들 간의 지루한 줄댕기기가 끝나고 일 년 가까이를 철탑삼지창 고공크레인 소공화국에서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더위님과 추위분과 싸우며 상산 조자룡에게서 배운 '진실수도권'과 운장 관우에게서 배운 '정의가 부르는 눈'으로 대한 천하의 철판공자들을 호령하던 진숙기파랑이 그 오랜 심혈하탈(心血下脫)의 고통에도 청청하게 걸어 크레인을 내려오자, 부산항구국은 물론, 대한 무림국의 하늘에서 사물놀이의 유쾌하고 경쾌한 리듬보다 더 발랄한 동요가 천상의 아이들의 화음처럼 거리를 덮었다.

대내의 난제가 소요를 덮고, 원조모모 경원미모령과 원조보보 세훈공자가 본인들이 수련을 닦고 나면 맛사지와 기공의 출력을 위무해준 '억타운 피부조명'으로 돌아간 다음, 무림공국에는 모처럼 평화가 찾아드는 듯도 했다. 그러나 평화라는 단어를 강호에서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스샷처럼 느닷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정치 무림의 강호세계에서 틈을 보이다가는, 자칫하면 베어 간 내 코를 '니뽄훈또시빤쓰국' 교토의 '이비총(귀와 코의무덤)'에서 찾아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거나, 영영 찾지 못하는 통에 무림 대권은커녕 강호에 그림자 하나 얼씬대지 못하는 수도 있다.

칩거도통사 학규공자는 억울했다. 서울특별공방의 비상 맹주 선출에 민주도방의 맹주로서 체면을 구긴 것도 '아도메치유지징(서러운)'한 일인데, 코쟁이공국과의 '멋대로사고팔기(한미FTA)'를 제어하는 본인의 진심을 몰라주는 도방의 원내도방들의 무질서가 아쉽다.

"봉산개교 우수가교(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놔야하는 것)여. 무엇이 정녕 무림 백성과 참된 민주주의의 본질을 위한 것인지 여러 도반들은 깨달아야 혀. 투자자소송제도(돈내는놈이딴지걸기 : ISD)없이는 승인 못한다는 게 우리 도방의 살림 밑천인디, 코쟁이공국 아이들이 그것을 약속헌다해서 낼름 도장 쿡, 이거 못 혀.

아니 도방의 방장인 맹주는 왜 뽑았대? 도방 최고결정기구인 방주무결총회에서 결정한 무도면 받아들여야지, 원내 도반들이라고 맘대로 혀도 되는 거여. 안 되지. 각 도반들의 소신과 해법, 그리고 도력은 달라도 우리는 민주도방이라는 한 배를 탄 겨. 같이 가자고.

글구, 무림의회인 국회는 사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무림의 헌법도통사(헌법기관)들이야. 사전 조율도 없이 무례하게 방문하려는 꼼수태왕 명박경술사의 언행은 예의에 어긋난 것이여. 아, 그것도 몰러, 한심 혀. 아니면 무시하는 겨. 그리고 진보통림권자들 잘 들어. 내가 다 뭉쳐 가자고 몽땅 내 놨잖여. 그러니, 섰다 가야지. 진보라고 그냥 무대포로 걸어가면 워쩌자는 겨. 같이 가자고. 아,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면서. 그게 시대의 요청인 게."

대국의 겨울은 따뜻한 웃음소리와 더불어 찾아왔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사바세계에는 온갖 욕망과 무질서가 뒤엉켜 배설물과 찌꺼기를 배출한다. 오욕(성욕, 식용, 수면욕, 명예욕, 재물욕)과 칠정(희노애락애오욕)으로 인해 우리는 고통의 무게추를 항상 허리춤에 달고 산다. 우리 백성들은 눈물이 많은 애수의 민족이다. 노래에도 흥겨운 리듬보다는 우수가 깃 들인 가락이 더 많은 것도 같은 이치다.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의 마지막 구절이다.

"… 자기가 여태껏 맛보지 못한 즐거운 쾌감을 자기의 가슴에 느끼는 것을 알았다. 색시를 안았을 때 그는 이제 처음으로 살아난 듯하였다. 그는 자기의 목숨이 다 한 줄 알고 색시를 내려놓을 때 그는 이미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집은 모조리 불타고 벙어리는 색시를 무릎에 뉘고 있었다. 그의 울분은 그 불과 함께 사라졌을지!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웃음이 그의 입 가장자리에 엷게 나타났을 뿐이다."

죽음을 초극하고 자신의 상태를 넘어선 사랑의 기쁨. 벙어리 삼룡이에는 민족의 애수와 한의 결정이 모여 만든 순수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는 미명 아래 내려놓기 어려운 욕망과 배설의 세계에서 비켜선 감성이 있다. 온 대지가 평화롭지 않은데 평화로운 극락, 즉 안양세계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그칠 날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나옹과 자공의 인연이 도래할 사회에 평화를 가져다줬다면 정치 무림의 평화는 한반도에 통일을 가져다 줄 것이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따뜻한 기운이 평화 무림국 어린 무림 학도들에게 모처럼 맑은 웃음을 선사했다. 무림대학 예비도경(수능)에서 대제학들이 출제한 문과 무의 술과경이 예측된 공부와 일치한 것이다. 무림 학도들이 고사장을 나가면서 꺄르르 웃어대는 웃음소리가 대국의 하늘을 온통 분홍빛으로 수놓았다. 대국의 겨울은 따뜻한 웃음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손학규#수능#나옹선사#나경원#오새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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