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오는 노동자대회(13일)를 기념해, 지난 10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청년노동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토론 주제는 '21세기 전태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실 이 같은 물음에 대한 응답은 멀리 토론회까지 가서 찾을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냥 우리 주위의 젊은이들이 사는 모습만 둘러봐도 답이 딱 나오거든요. 회사원이라면 신입사원들(대부분이 계약직이겠죠)을, 아버지라면 학교를 갓 졸업한 자녀들(대부분이 취업 준비생이겠죠)을, 교수나 교·강사라면 졸업반 학생들(대부분이 취업준비생이 되겠죠)을,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라면 자기 자신과 친구들의 현실(대부분이 계약직이거나 취업준비생이겠죠)을 눈 똑바로 뜨고 보면 되는 겁니다.
자신의 욕망을 덧대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보기만 한다면, 그들이 어떤 근로형태로 일하고 있는지,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앞으로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어렵지 않게 그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그것을 사실 그대로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도 (좀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정부는 지금까지의 임기 내내 청년고용 문제에 대해 '눈높이를 낮추라'는 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최근에는 지식경제부에서 청년백수를 해외 탄광으로 보낸다는 웃지 못할 대안(?)까지 내놓았는데요.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우리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실을 명확하게 진단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죠. 남들은 다 안 되지만 난 잘 될 거야, 남들은 다 안 되지만 우리 아들은 잘 될 거야, 남들은 다 안 되지만 난 정규직 전환될 거야, 아, 그러니까 그거 다 못난 애들 얘기고 어쨌든 난 된다니깐? 왜냐하면 나니까! 내가 제일 잘 나가! 뭐, 이렇게….
이날 토론회는 이 같은 우리의 허위의식과 저 같은 정부의 책임회피를 동시에 날려버리기 위해 열렸습니다. 정확하게 명중시키기 위해선 대상을 똑바로 보고 조준해야겠지요. 오늘을 사는 비정규직 청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의 생생한 증언과 토론을 귀 기울여 들어봅시다.
"네가 사원이야? 커피나 타는 애지"먼저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오프닝 격으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노동현장에서 겪은 고충들을 격의 없이 주고받는 장면을 영상으로 시청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정규직이라고 회식도 안 데려가고, 수시로 야근 시키고 그에 합당한 수당도 주지 않고, 명절 선물도 주지 않고… 도대체 자존감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보는 사람조차 화가 불끈 솟게 하는 (왜냐하면 겪어본 일이니까) 증언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네가 사원이야? 넌 커피나 타는 애지"라는 호통에 자기가 생각해도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게 됐다며 울음을 터트린 어느 여성 조합원의 고백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비인격적으로 대우 받는 차원을 넘어, 자기 스스로를 무시하고 우습게 보게 만드는 이 기막힌 청년들의 노동현실을 영상을 통해 지켜보며 회의실에 모인 이들의 표정은 울상인 듯 그렇지 않은 듯 하나 둘 일그러졌습니다. 자신의 현실인 듯 그렇지 않은 듯 그렇게 말이지요.
오프닝 영상상영이 끝나고 한국노동연구원의 은수미 박사님이 '주변부 노동 조직화전략 및 청년유니온 활동에 대한 평가와 향우 방향 제안'이란 주제로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은 박사님이 들고 나온 강연의 '리드'는 지난달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사마귀 유치원>의 '대기업 입사방법' 편이었는데요. 여러분 혹시 아시나요?
"대기업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아요. 고등학교 졸업 후 이름만 들어도 아는 우리나라 세 개 대학 중 하나만 가면 돼요. 세 개나 되니까 폭이 엄청 넓죠? 이렇게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4년간 학비가 적게는 5000만 원에서 많게는 2억이 드는데 (...) 부모님께 미안하다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 돼요. 시급 4320원을 받고 10시간씩 1년을 숨만 쉬고 일만 해서 꼬박 모으면 1년 학비가 생기죠. 그렇게 1년 알바하고 1년 공부하고 반복하면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어요. 쉽죠? (..) 이렇게 대기업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꼬박 일만 하고 숨만 쉬고 돈을 모으면 본전을 뽑을 수 있습니다. 참, 쉽죠?"
네, 저어엉~말 쉽군요. 은 박사님은 강연 내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주로 파견근로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어떻게 체계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셨습니다. 강의 후반부에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고 천명한 필라델피아 선언의 내용을 소개하며, 오늘날 상품처럼 버려지거나 대체되는 기간제근로자 및 파견근로자들의 현실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은 박사님의 강연 이후,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자신이 노동현장에서 겪었던 고충들, 말하자면 계약직 혹은 파견근로자로서 상품처럼 버려지거나 대체된 기억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희망 정책들에 대해 때론 솔직하게 때론 거침없이 털어놓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주야 맞교대에 디스크 판정... 스무살 청년도 못 배겼다토크쇼의 포문을 연 건 카페명 '구 드릴러'(31, 남)였습니다. '구 드릴러'는 자신의 진보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 졸업 후 시민단체에 입사했지만, 폭언과 비하적인 말을 숱하게 듣다가 6개월 만에 해고됐다고 합니다. 그 뒤 다른 곳에서 역시 비슷한 일을 겪고, 1년 가량을 구직 포기자로 살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건 존중받으며 일하는 건데 회사란 곳, 상사란 자들은 전혀 인간으로 대우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년 가량의 공백 기간을 거치고 핸드폰 컬러링 만드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와 계약직 생활을 1년여간 하다가 최근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답니다. 아르바이트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점심식사 자리에도 끼워주지 않는 등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임금체계가 포괄임금산정제로 정해져 있어 야근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을 전혀 못 받는 점이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월 최대 근로가능시간도 무려 275시간으로 계약되어 있다고 하네요. 대충 4로 나눠도 주당 근로시간이 끔찍할 정도로 많은 것이지요. 물론 그렇게 하루 표준노동시간인 8시간을 초과해서 근로해도 포괄임금산정제로 임금이 이미 결정되어 있기에 당연히 가산임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받는 월급은 125만 원 정도라고 하네요.
다음으로 말문을 연 건 '차씨'(32, 남)였습니다. '차씨'는 IMF 때문에 집안 사정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스무 살 때부터 바로 노동현장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죠. 그가 발을 들인 첫 직장은 공장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주야간 맞교대로 근무하고, 무거운 물건을 나르다 몸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허리디스크 판정까지 받은 것이지요. 결국 5년 만에 건강이 악화돼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까지 일했던 곳은 IT업체였습니다. IT의 파견근로자였던 것이죠. 하지만 주야간 맞교대는 여기서도 계속됐습니다. 3주 주간, 6주 야간의 생활을 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해서 그가 받은 월급은 150만 원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상 오후 10시 이후의 야간근로에 대해서는 150%의 가산임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액수가 굉장히 적은 편인 것이지요.
세 번째 주자는 '소요'(30, 여)였습니다. '소요'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이후 계약직을 전전하며 월 100만~150만 원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노동을 하며 자기 시간을 갖는 삶이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되고 친구들이 하나둘 시집을 가면서부터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게다가 자취를 하다 보니 월세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100여만 원을 벌어서는 월세 내고 핸드폰 요금 내고 나면 도저히 돈을 모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야말로 '한달살이' 인생이었습니다. 안 되겠다고 결심한 '소요'. 회사 퇴근하고 커피전문점에서 새벽 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을 하는 생활은 6개월간 지속됩니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어린이 노동자처럼 하루 16시간씩 일을 하며(주당 16시간도 아니고!) '이러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왜 이러고 사나',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는군요. 그런데 더 절망적인 건 그렇게 신산하게 살아봤자 크게 돈이 모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요'는 "10년 뒤의 내 모습을 생각해 봐도 지금과 크게 다를 것 같지가 않다. 그게 가장 힘든 점이다"라고 무덤덤하게 말했습니다.
성희롱 고발했더니... "잃을 게 없다고 막 지르는구나"이어 '한국인 송씨'(31, 여). 그녀는 모 방송사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겪은, 정말 깨알 같은 차별들에 대해 들려줬습니다. 일단 사원증 자체가 달랐고 노트북도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명절 선물을 못 받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자신은 투명인간 그 자체였다고 하네요. 생리휴가의 경우도 원래 우리나라 근기법상은 무급이 맞지만 회사 내의 노동조합의 힘으로 정규직들은 유급으로 휴가를 받았는데요. 비정규직 여성근로자들은 모두 무급으로 적용되었답니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남자 상사의 성희롱적 언사를 회사에 신고한 뒤에 발생했는데요. 그 일 이후 정규직 여직원들이 '한국인 송씨' 생각에는 자신에게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화장실에서 자기들끼리 "쟤는 잃을 게 없어 저렇게 막 지르나 봐"라면서 쑥덕거리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됐다네요. 같은 여직원 사이에서도 자신이 무시와 냉소의 대상이 된다는 데 상처를 받았답니다.
다음은 '포커페이스'(28, 여). 포커페이스는 학자금대출금 2800만 원과의 사투로 20대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 달도 일을 멈춰선 안 된다는 압박 때문에 제대로 취업을 준비해 보지도 못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물류센터 박스 나르기, 네일아트 손 모델, 시청 행정인턴, 초등학교 컴퓨터 보조강사…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일을 멈추면 바로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공기업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이제 계약기간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군요. 받는 급여는 세 전 130만 원. 그마저도 6개월 뒤에는 받을 수 없어서 다시 마음이 급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장균'(30, 남). 대장균도 20대 초반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현재까지 척추수술만 세 번을 했다고 합니다. 허리가 워낙 안 좋아 요즘은 최대한 몸을 안 쓰는 일인 웹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대장균' 역시 포괄임금산정제로 임금을 지급받아 야근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는 걸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초과근무해도 수당 없음... 포괄임금산정제, 이건 아니죠이렇게 여섯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들 28~32세 청년들의 공통점은 대충 100만~150만 원 사이의 월급을 받는다, 임금을 전체 일하는 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최저임금 4320원 수준이 된다, 포괄임금산정제로 임금체계가 측정되어 있어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을 받을 수 없다, 야간근로나 육체노동을 하다가 건강을 해쳤다, 직장이나 일에 대한 소속감이나 책임의식을 갖기가 어렵다,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그래서 미래도 설계할 수가 없다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희망하는 대안적 정책은 자발적 이직에 대해서도 실업급여를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4대 보험료를 회사에서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포괄임금 방식으로 급여를 지급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청년유니온 조성주 정책기획팀장은 "그동안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투쟁이나 피자 30분 배달제 폐지 운동 등에서 승리하며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갔지만, 정작 조합원 당사자들의 노동현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포괄임금산정제에 대해서는 한번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조 팀장은 자신의 사례를 들며 "돈이 없어서 카드빚을 막지 못할 때는 정말로 제2금융권의 광고가 눈에 들어오더라"며 "청년들이 실제로 이직이 많은데, 이건 청년들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현실상 충분한 직업탐색기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자발적 이직자 등에게도 실업급여 지원 폭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어준은 <나는 꼼수다>에서 "쫄지 않는 애티튜드가 위로가 되는 시대"라고 말했지만 이 말은 제가 볼 때 너무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 힘이 약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말은 본인이 가르치는 제자들에게는 위로가 될지 모르나 저와 제 주변의 청년들에게는 위로보다 모욕으로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넌 그래도 빚은 없잖아"란 말이 위로가 되는 시대
제 생각에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실질적이고도 강력하게 건네질 수 있는 위로는 "넌 그래도 빚은 없잖아" 같은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몇 천만 원짜리 통장이 있고, 자가 주택이 있는 것이 자랑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빚이 없는 게 자기위안이 되는 시대. 그런 시대에 대부분의 청년들이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입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는 과장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100여만 원을 벌어서 월세와 공과금 40만~50여만 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돈으로 꿀 수 있는 꿈은 없습니다. 각하의 말씀처럼 이 상태에서 눈높이를 더 낮출 수도 없는 것이고요.
청년백수들을 해외 탄광으로 취업시키겠다는 정부(무려 지식경제부), 50~60대 저임금 취업자 수가 증가해 전체 실업률이 조금 떨어졌다고 '고용대박'이라 자축하는 정부(무려 기획재정부)에게 부족한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