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시장의 '뜨거운 감자'였던 이슈 '블랙리스트' 제도가 마침내 시행 초읽기에 들어섰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는 '이동전화 단말기 식별번호(IMEI) 제도개선 계획'을 발표하고 내년 5월 이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지금까지 국내 이동통신시장은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제도가 운영돼 왔다. 이는 이동통신사가 자신들이 공급한 단말기의 고유 식별번호(IMEI)를 등록, 관리하는 제도로 분실이나 도난 등의 유고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으나, 실제 소비자들이 이를 통한 혜택을 누린 예는 극히 드물다.
반면, 이런 화이트리스트 제도는 기기간의 자유로운 USIM 이동을 막는 요소가 되므로 소비자들의 정당한 사용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예컨대, SK텔레콤을 통해 공급된 단말기를 구매한 소비자는 이를 KT를 통해 이용하고자 해도 화이트리스트 제도에 막혀 이용할 수가 없다. 이 단말기는 반드시 SK텔레콤에 가입한 후 정상해지 절차를 거쳐야만 이후 KT로 이동해 사용할 수 있었다.
개선되는 새 제도 하에서는 이같은 불편이 사라진다. 어느 유통망을 통해 구입한 단말기라도 자신의 USIM을 꽂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모든 IMEI 번호를 이동통신사가 관라하는 것과 달리, 블랙리스트 제도 하에서는 분실이나 도난 등으로 문제가 된 단말기의 IMEI 번호만을 관리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단말기라면 어떤 형태로 이용하든 사용자의 자유인 셈이다.
결국 국내에서 시행되던 기존의 폐쇄형 IMEI 관리 방식을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개방형'으로 바꾸는 것이 이번 개선안의 주요 골자. 방통위는 이통사, MVNO, 국내외 단말 제조사, 관련 전문가 등으로 전담반을 구성하여 제도개선을 준비해 왔으며, 이통사의 시스템 개발, 제조사의 단말기 생산, IMEI 통합센터 구축 등의 준비기간을 고려, 내년 5월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휴대폰 사용의 편리함 증대?
일각에서는 이같은 블랙리스트 제도를 통해 휴대폰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경로가 늘어나므로 소비자의 소비주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제도가 정착된 미국 등지에서도 2년 사용을 기본 골자로 하는 약정 제도는 국내와 동일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 또한 방통위의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현재에도 개통된 단말기는 타사의 USIM을 꽂아도 사용할 수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단말기를 구매할 때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이란 무기를 갖고 있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후 단말기의 출고가는 80만원 남짓에 형성되고 있는데, 이를 소비자가 모두 부담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는 일. 때문에 블랙리스트 제도가 활성화된다 해도 이동통신사의 보조금과, 이를 대가로 요구하는 2년 약정은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일반적 구매패턴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통신업계의 지각변동 촉발, 가격 현실화 될 듯
스마트폰이 급격히 대두되며,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들간의 힘겨루기도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과거 휴대폰은 '통화'와 'SMS'가 가장 주요한 기능이었던 데 비해 최근의 스마트폰은 다양한 멀티미디어 츨레이어로서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 통화나 SMS 역시 주요한 기능 중 하나이지만, 이는 스마트폰이 갖추어야 할 기능 중 하나일 뿐, 다른 어떤 기능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기능은 아니게 되었다. 여기에 와이파이 등 기존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방식의 메신져 등이 활성화 되며 통화나 SMS의 중요성은 날로 낮아지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와 함께 트래픽의 폭주를 경험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네트워크를 가진 자의 시장의 지배권은 서서히 빼앗기는 형국이다.
여기에 블랙리스트 제도가 시행되면 이동통신사를 통해 공급되던 기존의 단말기 시장에 새로운 유톨방식이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MVNO 등 새로운 이동통신 서비스가 부상할 여건도 갖추어진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시장 흐름의 변화는 '보조금'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가격질서를 왜곡하고, 단말기의 가격을 부풀린 후 소비자에게 마치 커다란 혜택을 주는 것처럼 위장해 실익을 남기면서도 생색을 내는 기존의 판매 방식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제도의 시행으로 2년 약정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단말기 자체의 원가와 투명한 단말기 원가 공개, 이를 통한 가격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 저렴하고 우수한 요금과 서비스로 승부해야 하는 시장 환경이 조성되므로 전반적인 이동통신 서비스의 질도 제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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