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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승우 신승우 시인이 첫 시집 <나를 두고 왔다>(푸른사상)를 펴냈다
시인 신승우신승우 시인이 첫 시집 <나를 두고 왔다>(푸른사상)를 펴냈다 ⓒ 푸른사상

바람 부는 언덕에 동생을 두고 왔다.
곁에 아무도 없어, 혼자일 텐데, 무섭고 외로울 텐데.
원인 모를 두통이 그치질 않는다. 머리 한 편이 바람에 얼얼했다.

흙손을 붙잡아 닦아주면 하얗게 빛나며 나타나던 손바닥은 내 손에서 떨어진 적 없었다. 빠진 이 창피한 줄 모르고, 활짝 보이며 웃던 소리가 귀에서 내려간 적 없었다. 그 입으로, 하루 종일 혀 짧은 소리로 지저귀던.

동생은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공부를 하면 나중엔 사탕을 주며, 종일 놀아줄 줄 알았나보다
책을 펼치기만 하면 놀아달라 보채지도 않고, 물끄러미 지키다 잠이 들곤 했다.
책을 읽고 언덕을 내려와 한 일을 생각해보면, 승진도 결혼도, 뭣도 아닌, 바람부는 언덕에 동생을 두고 온 것이다.
나도 사람이었다. 언덕 쪽으로는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독한 심장이 짐승의 목을 잡아채었다.

나도 안다. 허기진 몸에 부는 바람은 살갗을 뚫는다는 것을,
나는 또 안다. 언덕에 동생을 두고 와, 이제는 두툼한 옷이 배부른 몸을 감싸고 있지만,
죽어서도 그 언덕 바람은, 그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 <나를 두고 왔다> 모두

2011년 7월 KBS2 <사랑의 가족>에 나와 숱한 이야기를 뿌린 신승우 시인이 첫 시집 <나를 두고 왔다>(푸른사상)를 펴냈다. 시인은 군 복무를 마친 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해 1급 장애인이 되었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시를 쓴다. 이 시집은 장애를 당한 이가 장애를 앓고 있는 이 세상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다. 

4부에 55편의 시들은 이 세상을 향해 모진 슬픔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 모진 슬픔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발효시켜 하나가 되게 하고 있다. <오줌싸개> <그 단어의 뼛속> <빗물에 젖는 건 틀린 것이다> <거짓말> <납작 집> <아비를 닮았다> <물고기 발톱> <민들레가 놓지 않는 것> <발톱 깎는 공자> <열대어> <젖은 연탄을 가지고> 등이 그 시편들.

신승우 시인은 '시인의 말'에 "시를 쓴다는 것은 내 문법과 해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겠다는 투정"이라고 썼다. 그는 그가 쓴 시에 대해 "객관적 세상이란 건 애초부터 없었기에, 한 편 한 편 제가 건설한 세상이며, 이 별에 사십 년 동안 머무른 자의 신음 따위"이며 "그 신음소리가 얼마나 정교하고, 대단한 의미가 있겠느냐"라고 스로를 낮춘다.

그는 "나무들의 살을 발라 제 엉성한 문장을 엮은 책이 나온다는 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기에, 그 무서움을 숨기려 지금까지 저를 잡아주신 이 별의 닻들에게 인사를 전한다"라며 "책을 내다니, 제가 잘못한 건가요?"라고 오히려 되묻는다. 이 말은 곧 시인이 스스로 벼린 문법과 해석으로 이 세상을 기운 것이 잘못이냐고 따지는 것이다.

세상살이는 소학교 미술시간에 씹었던 두꺼운 도화지 맛

사랑 영화였다.
사랑은 언제나 곤란한 문제다.
가만히 찾아 쥐는 손이, 축축해서 쳐다보니,
울고 있다.

슬픔이 터졌다.
팝콘이 터졌다.

낼 모레면 질,
밤 벚꽃이 환하다.
- <영화를 보다> 모두
 
신승우 시인이 느끼는 사랑은 어떠할까. "언제나 곤란한 문제"이며 울음이다. 여기서 '울음'이란 '눈물'과는 다르다. 눈물은 그저 슬퍼서 흘리는, 감정을 적시는 끄나풀이다. 울음은 아파서 흘리는, 마음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통곡이다. 슬픔이 팝콘처럼 가슴 깊숙이 마구 터져 뼛속까지 시린 속앓이다.

시인은 그 속앓이가 있어야 어둔 세상살이에서도 예쁘고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벚꽃처럼 환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시인이 사랑을 화두로 삼은 시는 이 시집 곳곳에서 엉엉 울고 있다. "맨발이었고, 낄낄거렸고 그러다가도 엉엉 울었다. 미친 것 같이"(그 단어의 뼛속)나 "쉬어터지도록 사랑해도, 죽어 잊혀지고 마는, 별의 하루가 가는구나"(문장의 저녁), "골목으로 가자"(문장의 저녁) 등이 그러하다.

신승우 첫 시집 <나를 두고 왔다> 이 시집은 장애를 당한 이가 장애를 앓고 있는 이 세상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다
신승우 첫 시집 <나를 두고 왔다>이 시집은 장애를 당한 이가 장애를 앓고 있는 이 세상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다 ⓒ 푸른사상
메밀 맛은 사람을 쓸쓸하게 한다. 소학교 미술시간에 씹었던, 두꺼운 도화지 맛이다.
한의원 일층 음식점에서, 날 출생시켜 준 노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옆집은 그만 팔아주고, 망할 것 같은 메밀집에 앉았다. 그릇바닥에 뭔가 중요한 것이 있다는 듯, 열심히 긁는 어머니에 수저질.
- <메밀집 오후> 몇 토막

'메밀집 오후'란 시에서는 이 씁쓸한 세상살이를 빗대고 있다. 세상은 메밀 맛처럼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고, "소학교 미술시간에 씹었던, 두꺼운 도화지 맛"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시인이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을 살짝 들춘다. 그래야 시인이 지금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 그 뿌리가 어디서 나왔는지 엿볼 수 있다.   

시인은 '골목길'이란 시에서 "어릴 때 말이야, 학교에서 크레파스를 가져오랬는데, 무너진 마루에 앉아서 울기만 했"다고 되짚는다. 그때 옆집 아줌마가 동강이 난 크레파스를 모아 상자에 넣어준다. 그 아줌마는 얼마 뒤 동네 마른 우물에 빠져 죽었다. 시인은 쓴다. "사람의 수컷은 상처가 났을 때, 여자를 껴안는 버릇을 오랫동안 지켜왔다"라고.

그때부터 "크레파스 낙서가 어지러운 벽"이 세워졌고, 골목이 생겼다. 그 벽에 어지럽게 그려진 크레파스 낙서는 시인이 그 아줌마가 준 몽땅 크레파스로 그린, 그 아줌마에 대한 그리움이다. '골목'은 그 아줌마가 시인에게 남긴 깊은 상처다. 시인이 메밀국수를 먹으며 이 세상살이를 "두꺼운 도화지 맛"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하운 이후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

엄마, 밥할 때 쌀 씻고, 그 물 어따 버렸노.
저 꽃이 쌀뜨물 먹고 핀 거, 맞제이.

동네사람들도 아나.
엄마가 부엌서 저 꽃 피울라고, 쌀 북북 씻은 거.
우리 집 쌀뜨물 먹고, 참 고웁게 폈다.
암만 고와도, 내 눈은 못 속인대이. 봐라, 꽃에서 쌀 냄새 나는 거.
엄마, 참 고생했대이.
- <들켜버린 목련> 모두

시인 신승우. 그는 우리 곁을 다가와 머물기도 하고, 은근슬쩍 떠나버리기도 하는 이 세상 모든 사물을 독특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에게 자연과 삶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늘 함께 있다. 하얀 쌀뜨물을 하얀 목련꽃과 같이 보는 티 없이 맑은 눈과 깨끗한 마음을 지닌 시인. 그는 요즘 시를 들고 이리 꼬고 저리 화장하는 시인과는 아주 다른 새로운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가 목련꽃에서 쌀 냄새를 맡듯이, 글쓴이는 그에게서 시 냄새를 맡는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안양대 교수)는 신승우 시인 시를 한하운 시에 빗댄다. 그는 "한하운의 시세계 이후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신승우의 시편들은 우리에게 삶의 진정성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라며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가 현관문을 못 열어 동생과 함께 불타 죽은 사건 등을 자신의 처지로 삼고 아파하는 마음이 절실하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밥할 때 쌀을 씻고 버린 물이 목련꽃을 피운다고 여기는 마음이 극진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덕규 시인은 "신승우의 시는 골목에서 발효된 시이다. '쉬어터지도록 사랑해도, 죽어 잊혀지고'야 말 이 별의 어두워지는 골목에서 이제 다시 먼 여행을 떠나기 위해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걸어 나오는 저녁의 문장"이라며 "그런 그(꽃)의 '생채기'투성이 발을 어루만져보면, 'B612의 광속'으로 '뼛속을 달리는 사랑'의 맨 질주가 느껴진다"고 적었다.

시인 신성우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군대를 마친 뒤 후 교통사고를 당해 뇌병변 장애인이 되었다. 그는 2001년 '장애인근로자문화제'에서 시 부문 금상, 2004년 <솟대문학> 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경기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대표, 수원새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사단법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경기지부장을 맡았으며, 2007년부터 수원새움장애인야학교 교장, 2010년부터 경기도장애인극단 '난다' 대표 등을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나를 두고 왔다> 신승우 씀, 푸른사상 펴냄, 2011년 8월, 111쪽, 8000원
* 이 기사는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나를 두고 왔다

신승우 지음, 푸른사상(2011)


#시인 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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