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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공장 한켠에 마련된 노동조합 사무실에는 세진지회와 세진분회(세진글라스)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 준비에 정신이 없다. 점심시간에는 투쟁가가 울리고 식당 앞 휴게실에는 당당히 세진지회 깃발이 꽂혀있다. 한 달 사이 많이 달라진 공장 모습이다.

금속노조 경주지부 세진지회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다며 금속노조 새 식구가 된 지 한 달이 됐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일만 하고 살았다는 세진 노동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당당히 첫 발을 내딛고 있다. "노동조합이 생기니 출근할 맛이 난다"는 세진 노동자들을 15일 경주 양남 공장에서 만났다.

한달 6백시간 노동에도 최저임금

"사람이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도 못하고 정말 바보같이 살았다."

세진 노동자들은 지회 설립 전 노동환경이 너무 열악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협 지회장은 "10년 동안 이 회사에서 일했지만 늘상 고용불안, 인격모독에 시달리고 그러면서도 최저임금을 받아야 했다. 더 이상 후배들이 이런 대접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지회 설립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상협 지회장은 “10년 동안 이 회사에서 일했지만 늘상 고용불안, 인격모독에 시달리고 그러면서도 최저임금을 받아야 했다. 더 이상 후배들이 이런 대접을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지회 설립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상협 지회장은 “10년 동안 이 회사에서 일했지만 늘상 고용불안, 인격모독에 시달리고 그러면서도 최저임금을 받아야 했다. 더 이상 후배들이 이런 대접을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지회 설립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 ilabor.org 신동준

이곳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 기간은 2~3년 밖에 되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이 태반이라는 것. 무엇보다 조합원들은 장시간 노동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우정식 부지회장의 지난 달 급여명세표에 적힌 한 달 근무시간은 560시간이었다. 가장 많이 일한 조합원은 600시간이었단다. 30일 꼬박 출근해 하루에 20시간씩 일한 셈이다.

"우스갯 소리처럼 1년 365일 중에 350일은 일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추석에도 일이 많다고 하루 밖에 못 쉬고 나와서 일했다. 휴일이라는 걸 아예 모르고 일만 하면서 살았다".

우 부지회장의 설명이다. 월차는 물론 여성 노동자들은 생리휴가 쓴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일요일 특근도 일상적으로 진행돼왔다. 이곳 노동자들에게 특근은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회사는 특근을 안 한 노동자에게 결근계를 내라고 하기도 했다. 이 지회장은 "모든 것이 일방 지시였다. 노동자들과 협의를 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키면 시키는대로, 주면 주는대로 살았던 셈"이라고 토로했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주면 주는대로"

우 부지회장은 "금속노조 가입 뒤 특근은 무조건 강제로 하는 것 아니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 주말에 대부분이 다 쉬었다. 주말에 쉰다고 다들 정말 행복해했다"고 조합원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곳 노동자들의 임금은 법정 최저임금 수준이다. 조합원들은 "1년 일하나 10년 일하나 임금이 최저임금인 건 똑같다"고 불만을 토했다. 이러다보니 기본급은 1백만 원이 채 되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하다보니 기본급보다 시간 외 수당이 더 많은 상황이다.

 우정식 부지회장은 “금속노조 가입 뒤 특근은 무조건 강제로 하는 것 아니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 주말에 대부분이 다 쉬었다. 주말에 쉰다고 다들 정말 행복해했다”고 조합원들의 분위기를 전한다.
우정식 부지회장은 “금속노조 가입 뒤 특근은 무조건 강제로 하는 것 아니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 주말에 대부분이 다 쉬었다. 주말에 쉰다고 다들 정말 행복해했다”고 조합원들의 분위기를 전한다. ⓒ ilabor.org 신동준

김동수 분회장도 "인격 보장도 전혀 안되고 말 그대로 노예 생활을 해왔다"고 그동안의 어려움을 얘기했다. 김 분회장은 "이직율이 높은 이유도 노동자들이 내 회사라는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성장하면 우리 복지도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참고 기다렸는데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하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 분회장은 "할 얘기가 있어도 자유롭게 할 수가 없었다. 소통은 단절되고 오히려 말하면 불이익을 당하니까 노동자들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며 "그렇게 세월이 지나니 사람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동료애도 없어지더라. 10년 일하면서 체육대회를 세 번 밖에 못해봤다"고 강조했다.

 김동수 세진글라스분회장도 “어렵게 만든 노동조합인만큼 잘 지켜야한다. 조합원들이 앞으로 웃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다. 그 웃음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결의를 내비친다.
김동수 세진글라스분회장도 “어렵게 만든 노동조합인만큼 잘 지켜야한다. 조합원들이 앞으로 웃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다. 그 웃음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결의를 내비친다. ⓒ ilabor.org 신동준

이 지회장도 조합원에게 들은 얘기를 털어놨다. "여성 조합원이 집안 제사 때문에 쉬고 다음날 출근했더니 아무 말도 없이 작업장이 바뀌어 있었다더라. 자식뻘 되는 관리자들이 '야, 너' 이런 식으로 반말하고. 먹고 살려다보니 참았지만 남 모르게 울기도 많이 울었다는 얘기를 듣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다. 다들 속으로 쌓인 불만들, 억울하게 당한 일들이 정말 많다. 이것 하나하나 바꾸는 게 노동조합이 해야 할 일이다."

"노조 생기니 출근할 맛 난다"

이들은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이제 스스로 권리를 찾겠다는 뜻을 모아 지난 10월 지회를 설립했다. 우 부지회장은 "조합원들 반응이 좋다. 워낙 억눌려왔던게 많아서 당장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고 기대하는 것도 많다"고 반응을 전했다. 어떤 조합원은 지난 빼빼로데이에 힘내라는 메모와 함께 과자를 사오기도 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간부들이 출근선전전을 하는데 자기도 참여하겠다고 얘기하고 다음날 선전전에 나오기도 했단다.

이 지회장은 "조합원 전체가 힘을 합친다는 걸 회사에 보여줄거다. 다들 지회에 힘도 실어주고 응원도 많이 해준다"며 "자기 주장이나 불만을 속 시원히 얘기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조합원들은 신이 나고 기운이 나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지회가 생기기 전에는 철창에 갇혀서 하루를 보낸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출근할 맛이 난다고들 한다. 예전에는 다들 찡그린 얼굴로 출근했는데 지금 얼굴을 보면 표정이 한결 좋다."

 11월15일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노사교섭을 마친 세진지회, 세진글라스분회 교섭위원들과 조합원들이 "투쟁" 구호를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1월15일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노사교섭을 마친 세진지회, 세진글라스분회 교섭위원들과 조합원들이 "투쟁" 구호를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신동준

이날 지회는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3차 교섭을 진행했다. 그동안 억눌리고 빼앗겼던 것들을 찾기 위해 한 발 한 발 나서고 있는 중이다. "안정된 일터, 평생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되도록 조합원 모두를 위하는 노동조합이 될거다. 경주지부, 금속노조와 지금 이 마음 변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이 지회장이 각오를 다진다.

김 분회장도 "어렵게 만든 노동조합인만큼 잘 지켜야한다. 조합원들이 앞으로 웃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다. 그 웃음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결의를 내비친다. 세진 노동자들이 웃으며 자신의 일터를 지키는 승리의 소식을 기대해본다.

* 세진 노동자들은 지난 10월 12일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이어 같은 세진그룹 계열사인 울산의 세진글라스 노동자들도 노조에 대거 가입, 세진 분회를 설립했다. 세진은 자동차 스포일러, 차량 유리 등을 제조하는 부품사다. 이곳 전체 조합원 수는 모두 2백 70여 명에 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금속노조 인터넷신문 <금속노동자 www.ilabor.org>에도 실렸습니다.



#금속노조#세진#노조가입#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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