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주여성 22만명 시대다. 그만큼 국제결혼이 보편화 됐다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이주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고 기관과 지자체의 다양한 지원을 통해 이주여성들의 한국생활 정착 여건은 초반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이 땅을 떠나는 이주여성들이 아직도 적잖다.
전문가들은 다문화가정이 해체되는 것을 예방하려면 가족들 간의 따뜻한 보살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다문화가정의 갈등을 전문적으로 조언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국가기관 등의 사회적 관심도 요구되고 있다.
"결혼을 후회합니다, 아이만 불쌍하죠"2006년 대기업에 다니던 주아무개(45)씨는 서른아홉의 나이에 주식투자에 실패한다. 결혼을 해야 했지만 적령기를 놓친데다 자금도 없어 고민 끝에 결혼정보회사를 찾았다. 결혼정보회사는 베트남행을 추천했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곧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베트남에서 결혼정보회사가 소개해준 100여 명의 여성 중 아내가 될 사람을 선택했다. 도착 5일째 베트남에서 당시 22살의 아내 응옥 타잉(가명)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결혼 1년 만에 아이도 생겼다.
주씨가 결혼생활 6년 동안 베트남 처가에 보낸 돈은 5천여만원. 베트남 제조업체 직원의 연봉이 380만 원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돈이다. 주씨는 "장인은 두 번, 장모는 다섯 번을 초청해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며 "친지 방문으로 비자를 받아 우리나라로 들어오지만 대부분 6달 동안 일만 하다가 돌아간다. 베트남에 비해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씨의 장인·장모는 지금도 철강공단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아내 타잉씨는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다. 주씨가 아내의 외도 현장을 목격해 간통죄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휴지 뭉치에서 상대방의 정액을 채취해 간통죄가 성립됐다. 타잉씨의 외도 상대는 동갑내기 외국인 근로자 호앙(28·가명)씨.
주씨는 "그 사람(타잉)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외도가 이해되기도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며 "결혼을 후회하고 있다, 아이만 불쌍하다"고 전했다. 주씨는 현재 이혼 소송절차를 밟고 있다.
포항시외국인근로자상담센터 하광락 소장은 "이 같은 현상은 공장이 많은 포항이 이주여성과 남성 외국인 근로자들과의 만남이 비교적 쉬운 환경을 가진 탓"이라며 "이들에 대한 관리와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이어 "건전한 결혼관 형성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문화 가정의 갈등을 전문적으로 해결하고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을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포항시에 거주하는 베트남 이주여성과 베트남 국적 외국인노동자의 수는 각각 500여명, 1300여명이다.
"사회적 편견이 그들을 망치고 있다"15일 오후 3시. 포항시 남구 대송면의 한 식당을 찾았다. 주방이 시끌벅적했다. 베트남인으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대화를 하면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 안 계시나요?"라고 묻자 "엄마, 잠깐 나가셨어요"라고 했다. 그들은 이 식당 주인 김동자(59)씨를 '엄마'라고 불렀다.
베트남에서 온 이선녀(28)씨는 9년차 한국 주부다. 이씨는 '엄마' 식당에서 생활한 5년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한국생활 9년 중 이전의 4년은 방황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 동안 이씨도 타잉씨처럼 외국인 노동자와 어울려 다녔다. 남편은 온종일 PC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남편과 딸, 시어머니에 시누이까지 모시고 살아야 했다. 극심한 생활고에 집을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면서 엄마를 만났다.
김씨는 "처음엔 소통이 어려워 채용할 수 없었다, 국자를 달라고 하면 칼을 갖다 주는 일도 있었다"며 "지금은 선녀 없인 내가 못 살 정도"라고 했다. 이씨가 처음 식당일을 시작했을 때 김씨는 '그냥 예전처럼 놀러다니라'고 했단다. 갑작스런 통제가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다 김씨는 이씨에게 돈의 소중함과 저축의 필요성을 알려줬다. 그런데 저축을 하면서 이씨가 변했다. 밖으로 겉도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가정에만 관심을 쏟게 됐다.
이씨는 '엄마' 식당에 일하는 동안 베트남 친정에 집도 지어줬다. 동생 학비도 대고 있다. 이씨는 "선미(이씨의 딸)와 남편이 쓰는 돈 외엔 모두 저축한다, 모두 엄마 덕택"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김씨는 이씨에게 지급하는 월급 외 수입은 자신이 직접 관리한다. 초등학교 1학년 선미가 중학교 갈 때 목돈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란다. 김씨는 "선녀가 외국인노동자와 어울려 다닐 때는 많이 속상했다. 직접 찾아가서 선녀와 외국인 청년들을 때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한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성실히 살아가고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김씨는 다문화 가정의 해체 위험에 대해 "이주여성과 외국인노동자만 탓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어린 나이에 시집온 이주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그들을 망치고 있다, 갈등요인을 이미 가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그들이다, 남편과 그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이 절실하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