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 오는 날, 길가에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이가 있었다. 그이는 바로 황금찬 시인이었고, 그이는 빗물에 젖은 채 말간 얼굴을 내민 민들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 시인은 아름다운 시 한 편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이렇게 조금만 키를 낮추면 삭막한 도시의 뒷골목이나 아파트 단지 내에도 온갖 생명들이 활기찬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네 숲은 깊다>는 강우근이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에 대한 기록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것이다.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북한산 자락에서 어린이 책 기획자인 나은희, 나무와 단이 두 아들과 산다. 그는 텃밭을 가꾸고 공원과 길거리를 다니며 들꽃과 잡풀과 온갖 풀벌레들과 만나고 그 만남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강씨 가족은 사계절 내내 텃밭과 숲속 개울가와 골목길을 찾아다니며 작은 생명들의 경이로운 활동과 만난다. 한겨울에는 집안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스며든 생명과 나무껍질과 나뭇잎에 숨어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애벌레와 고치를 관찰하기도 한다.
그런 활동을 통해 저자의 두 아들인 나무와 단이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쳐 가고 더불어 생태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생명을 사랑하는 나무와 단이는 풀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고 올챙이 알이나 도롱뇽 알 하나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동네 골목 텃밭과 공원에서 만난 생명에 대한 생생한 기록
<동네 숲은 깊다>는 강우근 가족이 아파트, 동네 골목 텃밭과 공원을 돌아다니며 만난 300여 종의 풀꽃과 풀벌레, 개울가의 생명에 대한 생생한 생태 기록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동식물의 그림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생명을 관찰하거나 채집하는 방법, 나뭇잎이나 풀잎을 이용한 놀이가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그야말로 작은 식물도감을 보는 듯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길가에도 아파트 화단에도 집안에도 온갖 벌레와 작은 생명들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분 속에, 문틈의 먼지 속에, 형광등 안에도 작은 생명들이 숨어 있고 시멘트가 갈라진 틈새와 골목길에 냉이 민들레 속속이풀 괭이밥 토끼풀 등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가을의 상징처럼 된 화려하고 커다란 국화꽃 화분이나 쑥부쟁이 외에 국화과에 속하는 작은 꽃들이 길가나 아파트 화단에 넘쳐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이제 당신이 세심하게 골목길이나 공원 길가를 살펴본다면 빗자루국화, 서양민들레, 방가지똥, 왕고들빼기, 돼지풀, 붉은서나물, 망초, 중대가리풀, 서양등골나물, 도깨비바늘, 미국가막사리, 산국 등의 국화과 들풀들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동네 야트막한 산길을 산책하다 만난 산국, 미국쑥부쟁이, 개여뀌, 들깨풀, 강아지풀을 모아 엮으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근사하고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엄마나 아이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선물을 할 수도 있다. 그것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동안 키 높이를 낮추지 않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요즘 뭐든지 커야지 대접받고 큰 것일수록 더 쳐준다. 작고 소박한 것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작은 것을 보려면 걸음을 멈추고 키를 낮추어야 한다.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wr은 것을 들여다보려고 걸음을 멈추고 키를 낮출 짬이 없다. 들꽃을 보는 것은 멈추어 서는 것이고, 다르게 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다른 세상을 꿈꾸고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시작이 될 수 있다." - 142쪽 아주작은 것들 중-
아침 산책길 길가의 작은 생명이 건네는 인사에 귀 기울여보라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은택을 입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시 속 무한질주와 무한경쟁에 자기 자신과 아이들을 몰아넣고 그것이 경쟁에 뒤처지지 않고 더 잘살기 위한 방법이라 자위하며 달린다. 그러나 과연 무한경쟁과 무한질주를 통해 더 움켜쥐는 삶이 과연 인간의 행복을 담보하는 것일까?
재물은 소금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당신이 더 큰 것을 찾아 헤매는 동안 당신에게 주어진 생의 시간은 다할 것이고 당신은 단 한 순간도 당신의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삭막하게 생의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당신 아이에게 학원 한 군데 더 보내 영어 단어 하나 더 암기시키는 대신 아이 손을 잡고 텃밭을 일구러 가고 아파트 화단의 들풀을 만나러 간다면 무자비하게 생태를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이나 강정에 해군기지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안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저 잘 빌려 쓰고 앞으로 이 지구를 방문할 새로운 세대에게 되돌려줘야 할 유산일 뿐이다.
생태적인 삶,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도시의 삭막함이 자신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텃밭을 가꾸고 몸을 낮게 구부려 아침 산책길 마주치는 길가의 작은 생명이 건네는 인사에 귀를 기울여보라. 당신 안에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감사가 넘쳐나고 생명을 보는 당신의 눈길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은 생태의 순환고리 속에서 많은 생명의 은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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