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 일가가 부럽지 않을 만큼 '재벌'이었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모 제과회사 과자 속에 '따조'라 불리는 딱지가 들어있었는데 그것을 모으는 게 유행했다. 수업 뒤 친구들과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따조를 걸고 게임을 했다. 당시 난 동네에서 유명한 '따조 재벌'이었다. 신발주머니를 두 개 들고 다녔는데 하나는 따조 주머니였다.
당시 따조에 대한 탐욕은 요즘 재벌의 시장 독점욕 못지 않았다. 나의 부를 넘볼만한 상대가 나타나면 그게 누구든 기어코 맞대결을 벌여 무너뜨렸다. 그가 가진 마지막 따조 하나까지 빼앗기 위해 악착같이 공략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합병을 단행한 것이다. 물론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한 다음 그가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따조 몇 개를 그의 손에 쥐어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래야 판이 계속 유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따조를 독식하면서 친구들이 느끼는 불만은 점점 커졌다.
존 롤스의 정의론에 따르면 나의 따조 독식은 정의롭지 않은 짓이다. 사실 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따조를 모을 수 있었다. 따조를 빌려간 친구가 또 다른 친구들과 경기를 벌여 재산을 축적한 다음 이자까지 계산해 내게 바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본적 자유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기회가 균등하더라도 분배가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롤스는 정당화할 수 없는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추구했다. 그에 따르면 약자들의 삶을 중심에 놓는 비대칭적 균형이 정의고, 불공정한 분배를 바로잡기 위해 기득권을 차별하는 것이 정의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기득권 중심적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기업형슈퍼마켓 진출로 골목 상권을 침해하는 대기업에게 법인세도 감해주었다. 고용을 늘리기는커녕 기업 유보금만 늘리는 대기업을 위해 각종 규제를 풀었다. 주요 공직은 또 어떤가? 현 정권은 대부분 측근 인사, 회전문 인사로 그 자리를 채웠다. 금융감독원 비리에서도 보듯 기득권의 부패와 비리를 감시해야 할 감독기관이 오히려 썩었다.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유독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킨 것도, 대통령이 국정기조로 공정한 사회를 말한 것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독식하기만 하고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것을 공동체와 함께 나눌 때만 우리 사회는 정의롭고 공정해질 수 있다.
UCLA 대학 조사에 따르면 인간의 뇌에서 음식물과 공정함에 대해 반응하는 부분은 같다고 한다. 공정함은 식욕처럼 기본적 욕구 충족과 관련돼 있다. 우리가 먹는 것을 함께 나누듯 정의도 함께 나눠먹는 것이 아닐까? 나누는 것은 양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보를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먼저 내려놓는 게 순서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을 때만 그걸 나눌 수 있다. 또 정의가 골고루 나누어져야 공정한 사회가 되고 공동체의 연대의식도 강해진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비로소 다른 이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