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이 친숙한 시대다. 안경 쓴 학생이 쓰지 않은 학생보다 많을 정도다. 안경점도 지천이다. 거리 상가엔 몇 집 건너 안경점이 눈에 띌 정도다. 안경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선글라스, 고글 등 특수안경과 패션용 안경까지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 안경을 생각하면 여전히 애틋한 추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였다. 어느 날 학교에 친구 한 명이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처음 보는 안경이 정말 신기했다. 안경 쓴 친구가 멋있게 보였다. 안경을 벗고 찡그린 듯한 인상마저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여, 안경을 쓰고 싶었다. 안경을 쓰려면 시력이 좋지 않아야 했다. 방법이 없었다. 눈이 나빠져야 했다. 그때부터 눈에 좋지 않다는 행위만 골라서 했었다. 일부러 책을 눈 가까이 대놓고 읽었다. 두 눈 부릅뜨고 하늘을 쳐다보며 비를 맞기도 했다. 심지어 흙 묻은 손으로 눈을 비비기도 했었다.
하지만 노력은 허사였다. 짧은 시간에 시력이 나빠질 리 없었다. 결국 안경을 쓰고야 말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학창시절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최근 안경을 맞췄다. 작은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다. 이른바 노안(老眼)이 찾아온 것이다. 학창시절 그토록 갈망하던 꿈을 이뤘지만 예전 그 마음이 아니다.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게 불편한 안경을 왜 쓰려고 했는지….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온다.
안경은 언제부터 썼을까이 안경은 대체 언제부터 썼을까. 고대 중국의 재판관들이 연수정으로 만든 검은색 안경을 썼다고 전해진다. 표정의 변화를 감추기 위해서. 로마 네로 황제가 에메랄드 안경을 쓰고 검투를 봤다는 기록도 있다. 시력교정용으로 안경이 쓰인 건 13세기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시작됐다는 게 통설이다.
우리나라에선 16세기 후반, 임진왜란 직전이다. 일본에 통신사로 건너갔던 김성일(1538∼
1593) 선생이 쓴 게 처음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안경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널리 쓰였다. 스페인에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큰 안경을 썼다. 미국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그의 저서 '코리언 스케치'에서 "조선의 고위 관리들은 한 손에 긴 담뱃대를, 다른 한 손에는 부채를, 그리고 눈에 굉장히 큰 원형의 수정구 2개를 걸고 다녔다"고 적고 있다.
안경을 쓰는데 대한 예법도 까다로웠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는 건 금물이었다. 신분이 높더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임금도 어전회의에서는 안경을 벗는 게 원칙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 안경을 쓴 임금은 조선 정조였다.
이처럼 재미난 안경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 있다. 초당대학교(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소재)에 있는 안경박물관이 그곳이다. 지난 2001년 대학 본관건물 내 3층에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고 있다.
여기에 가면 역사 속 안경에서부터 최근 안경까지 다 만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못안경(1350년경 독일)과 우리나라 최초의 김성일 안경도 있다. 김성일 안경은 대모(玳瑁·거북의 등껍질)로 안경테를, 피나무로 안경집을 만들었다.
안경다리 대신 실을 매단 실다리안경과 꺾기다리안경, 무테안경 등 다양한 형태의 안경도 있다. 안경을 보관하는 안경집도 어피(魚皮·상어껍질), 가죽, 종이, 우각, 자수를 이용한 호화롭고 멋스런 것까지 모두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정조대왕, 고종황제의 안경, 백범 김구 선생의 상징이 된 뿔테안경도 볼 수 있다. 이승만,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이 쓰던 안경도 전시돼 있다. 전봉준 장군, 프란체스카 여사, 맥아더 장군, 도공 심수관이 쓰던 안경도 볼 수 있다.
전시물품이 모두 3000여 점에 이른다. 안경박물관은 옛 안경 전시실, 광학기기 전시실, 특수안경 전시실, 유명인사 안경 전시실 등 모두 6개의 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관람료도 따로 없다.
덧붙이는 글 | 초당대학교 안경박물관 ☎ 061-45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