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딸 신영이는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Harry Potter)>의 열렬한 팬이다. 신영이는 국내에서 개봉된 <해리 포터> 시리즈 영화를 모두 보았고 <해리 포터> 소설도 빠트리지 않고 다 읽었다. 호기심 속에서 시작되었던 신영이의 <해리 포터> 읽기는 신영이의 영어 공부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나는 <해리 포터>가 태어난 땅을 찾아가기로 했다. <해리 포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영국에서도 북쪽의 스코틀랜드에 자리 잡은 에든버러(Edinburgh)다. 에든버러는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600km를 넘게 달려가야 하는 곳이다.
우리는 에든버러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로열 마일(Royal Mile) 남쪽에 자리한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를 찾았다. 이 카페가 바로 <해리 포터>의 탄생지다. 이곳에서 한 여인이 하루 내내 죽치고 앉아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조앤 롤링(Joan K. Rowling). 그녀는 자신이 홀로 키우던 딸에게 책을 사줄 돈이 없어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던 이혼녀였다. 그녀는 유모차에 딸을 태우고 집 근처에 있던 이 엘리펀트 하우스에 와서 소설을 썼다.
엘리펀트 하우스 앞에는 자랑스럽게 '해리 포터의 고향(birth place of harry Potter)'이라고 적혀있다. 에든버러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여행명소지만, 아직 가게 앞에 여행자들이 줄을 길게 서있지는 않았다. 나는 아내, 딸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 안에 들어섰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가게 안에 커피나 케이크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줄 서있었다. 우리가 가게 안에 들어선 지 불과 5분 후부터는 여행자들이 만든 줄이 가게 밖까지 길게 이어졌다. 내 뒤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뿌듯했다.
우리 앞사람들이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는 앞으로 조금씩 전진했다. 아내는 앉을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 했다. 가게 종업원에게 물으니 좌석에서 주문하는 서비스는 오후 5시부터 가능하단다. 아! 그래서 5시 조금 전부터 가게 앞에 줄이 이어졌던 것이다.
여행자들이 길게 줄을 선 앞쪽에 가게의 진열장이 있다. 진열장 안에는 투박하게 잘린 쿠키, 밀크 초콜릿 케이크, 샌드위치, 핫도그 등이 가득 쌓여 있다. 예쁘게 다듬지는 않았지만 투박한 먹을거리들이 아주 달고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쿠키는 가게 이름대로 코끼리 모양을 하고 있다. 쿠키 중에는 백만장자 쇼트브레드(millionaire Shortbread)도 있다. 분명히 이 가게 안에서 쓴 책으로 영국의 100대 부호가 된 조앤 롤링의 기를 받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오후 5시가 되자 아내는 가게 안쪽의 좌석에 가서 자리를 먼저 잡았다. 우리는 스코틀랜드 잡지 <더 리스트(the list)>에서 최고 커피숍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나와 신영이는 계속 줄을 서 있다가 핫 초콜릿과 카페라떼를 주문하기로 했다. 신영이가 좋아하는 핫 초콜릿을 주문하려고 보니 커피 메뉴판에는 이 메뉴가 없다.
이곳 영국에서도 한국처럼 핫 초콜릿이라고 주문하면 될 줄 알았다. 다행히 점원은 내가 말하는 '핫 초콜릿'이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온 지 한참 만에 가게 안쪽 넓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게 입구는 좁았지만, 안쪽으로 넓은 좌석들이 펼쳐져 있었다.
커피 값을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하필 신용카드 영수증 용지가 떨어졌다. 에든버러의 젊고 예쁜 여자 점원 아가씨가 나를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짐짓 대범한 척 괜찮다고 하고 내가 지불한 금액이 얼마인지만 확인했다. 영국의 물가에 비하면 이곳의 커피 가격은 저렴한 편이었다. '혹시 실수로 다른 액수가 계산서에 찍히지 않았나'하고 찜찜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이곳은 <해리 포터>의 고향이니까 나에게 좋은 일만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커피 위에 초콜릿가루를 뿌린 핫 초콜릿은 자극적이고 달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가게를 둘러봤다. 가게 안은 온통 코끼리 천지였다. 가게 입구의 쿠키 진열대 앞에는 청동으로 만든 작은 코끼리 상이 서 있고, 내가 앉아 있는 의자의 다리도 코끼리 다리다. 벽면에는 온통 코끼리 사진과 코끼리 신문 기사, 그리고 코끼리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가게의 벽면에는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이 그린 다양한 모습의 코끼리까지 전시돼 있다.
카페에는 늦은 오후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영국 에든버러의 한 카페에서 쬐이는 햇살 덕분에 나는 행복했다. 조앤 롤링은 이 햇살을 맞으며 <해리 포터>를 써내려갔을 것이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창가 쪽을 보니, 창 밖으로 에든버러 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 밖의 에든버러 성은 높은 언덕 위에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우뚝 솟아 있다. 한참 높은 곳에 솟은 에든버러 성은 신비한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햇빛의 따뜻함과 에든버러 성의 신비함 속에서 <해리 포터>가 태어났을 것이다. 가게 안에는 에든버러 성을 바라보는 듯 조앤 롤링의 사진과 기사가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다.
"조앤 롤링이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이혼을 했대. 그런데 <해리 포터>로 대박을 터뜨린 후에 다시 의사와 재혼을 했다던데?"내 말에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참, 돈을 잘 벌면 좋은 와이프 감이 되는 거야? 그녀가 돈방석에 앉으니 의사 남편 만난 거네."
나는 인생역전을 이룬 조앤 롤링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나는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를 보면서 어떤 경험과 생각 속에서 그 끝없는 이야기들을 신비하게 풀어냈는지 감탄했다. 나는 조앤 롤링에게 '어떻게 그 기나긴 이야기를 구상했느냐'고 묻고 싶었다. 어떻게 한 젊은 여인의 머리 속에서 그토록 장대한 서사시 같은 글이 나왔을까?
그런데 이 카페 안에는 조앤 롤링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이 있었다. 그 창구는 카페 안 여자 화장실에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고 남자 화장실에 가 봤지만, 남자 화장실에는 해리 포터와 관련된 아무 흔적도 없었다. 유독 여자 화장실에만 조앤 롤링과 해리 포터에게 보내는 '러브 메시지'가 가득 남아 있었다. 나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지 못하니 신영이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해리 포터의 열혈팬인 신영이는 아주 신이 났다. 신영이는 여자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해리 포터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너무 좋아한다. 신영이가 여자 화장실에 가서 찍어온 사진을 보니 화장실 문 안쪽에는 낙서가 가득 했고, 그 안에 한국에서 날아온 신영이의 낙서가 있었다. 신영이는 '해리 포터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낙서를 남겼다.
볼일을 보면서 엉덩이를 대는 변기 위에는 해리 포터에 출연하는 모든 캐릭터가 붙어 있었다. 해리 포터를 깔고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것. 좁은 공간의 화장실에서 해리 포터의 열혈팬들은 소설 속 인물들을 엉덩이에 깔고 앉아 다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여자 화장실에만 '러브 메시지'가 남은 것은 인생 역전을 이룬 조앤 롤링이 여성 독자들에게 공감과 부러움을 사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소설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조앤 롤링의 이야기는 여자 화장실 안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스토리 텔링이 가득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남자는 여자 화장실에 잠깐만 들어갔다가 나와도 안 되나요?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80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