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토요일 광화문에 갔다. 매일 저녁 한미FTA 비준 반대 집회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퇴근 후 가면 이미 집회는 해산될 시간이라 못 갔다. 토요일도 피곤해서 사실 망설였다. 딸들에게 같이 가자고 하니 약속이 있단다.
약속을 깨고 가자고 하지 못했다. 왜냐면 선거권도 없는 딸들이 무슨 죄인가, 싶었다. 광우병 소고기를 수입하고 4대강을 파헤치는 걸 보면서 큰딸이 내게 따졌다. 왜 어른들은 도대체 대통령도 제대로 못 뽑고, 국회의원도 제대로 뽑지 못하느냐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한미FTA 비준까지도 막지 못했다. 어른들이 저지르고 독박은 아이들 세대가 쓰게 생겼다.
나는 진짜 미안한 마음으로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화문역에 내려 지하철 위로 나가려는데 웬걸 전경이 다 막고 서 있다. 무슨 일이 난 줄 알았다. 집회를 많이 다녀봤지만 지하철 아래까지 내려와 막고 서 있는 경우는 진짜 처음 봤다.
"지금 이 곳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교보문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회전문으로 나가주세요.""어? 왜요. 저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데요.""지금 저 위에서 시위를 하고 있어서 못나갑니다. 저쪽으로 돌아가셔야 됩니다.""저기요, 시위하는거 하고 이 출구로 나가는 것하고 무슨 상관있어요?"
"시위대가 많아서 나가시면 안됩니다. 일단 교보로 들어가서 저쪽으로 나가시면 됩니다.""저 어짜피 시위하러 가니까 여기로 나갈게요.""네?""저 지금 저 위에 시위하러 왔다구요."열심히 전경이 내게 시위대가 막고 있어 못나간다고 설명했는데 내가 그 시위하러 간다니까 갑자기 입을 꾹 다문다. '뭐 이런 아줌마가 다 있나?' 싶은 표정이다. 어이 없어 하는 전경과 말싸움을 할 필요는 없다. 그들도 얼마나 괴롭겠나, 싶다. 전경이 시키는대로 교보문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교보문고고 안에도 나가는 출구에는 전경이 또 막는다.
"왜 못 나가게 하세요?""저쪽 회전문으로 나가세요. 지금 위에서 시위를 하고 있어서 못 갑니다."
좀 화가 났다. 바로 코 앞의 출구를 나두고 난 교보문고 안을 돌며 회전문을 찾아 겨우 나갔다. 그러나 이건 또 뭐냐? 나가자마자 전경이 또 막는다. 나 말고도 많은 시민들이 전경들이 쳐놓은 바리케이트 앞에서 항의를 하고 있다. 인도는 전경이 막고 서 있고, 도로는 차들이 막고 서 있다.
"저, 저쪽으로 가려고 하는데요.""저쪽으로 못 갑니다. 시위대가 막고 있어요.""괜찮아요. 어차피 저 시위하러 온 거니까 가도 괜찮아요. 비켜주세요.""안 됩니다."광화문까지 한 시간 넘게 걸려서 갔는데 광장으로 못 나가게 한다. 거기까지 가서 포기할 순 없었다. 난 잽싸게 도로로 몸을 돌렸다. 전경이 "도로로 나가면 위험합니다" 하면서 양팔로 막는다. 난 잽싸게 전경 팔 아래로 고개를 쑥 집어넣고 빠져나갔다. 내 뒤를 따라오던 한 여자분이 빵 터지는 말을 했다.
"도로보다 당신들이 더 위험하거든!"
사람들이 많이는 모였지만 우왕좌왕했다. 다들 자발적이고 개인적으로 나온 티가 너무 난다. 어떻게 하자는 사람이 없다. 다들 집 안에 들어앉아 있을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항의하러 나오긴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다. 깃발은 있지만 지도부는 없어 보인다. 예전과 달리 요즘 집회는 자기 표현의 장이다. 자식과 부모가 함께 나오는 것만 봐도 열려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시민은 그렇게 열려 있는데 그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닫혀도 꽉 닫혔다.
이쪽으로 움직이려 하면 전경이 막고, 저쪽으로 움직여도 전경이 막는다. 우리나라 치한도 이렇게 철저히 막으면 범죄가 정말 줄 것 같다. 1 대 1로 보호해주려고 하나 싶을 정도로 발 빠르게 달라 붙는다. 그래서 행동 반경이 넓게 다니지를 못했다. 사람들이 가는 대로 흘러가다보니 시청을 돌아 광화문으로 다시 왔다. 지도부가 없어 헤맸다 싶었는데 다들 뭔가를 향해 모였다. 그곳은 바로 이순신 장군 동상 앞.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깃발들이 모였다. 난 마치 우리의 지도부가 이순신 장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순신 장군이 현 정부에게 엄숙히 경고하는 것 같다.
"무고한 시민은 잡아가지 마라. 그들은 99% 서민일 뿐이다. 너희가 한미FTA 비준을 할 때 무시했던 99%의 서민이다. 그들의 아픔을 봐라. 먹고살기 힘든 그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의 마음을 봐라. 제발 1%의 소수 재벌들만을 위하지 말고 99%의 국민을 봐라. 너희를 믿고 투표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돌아서고 있는지 봐라. 너희도 가슴이 있다면 제발 느껴라. 국민을 더 이상 봉으로 보지 마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