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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 시골의 시외버스에선 사람냄새가 난다. 도시의 버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시외버스시골의 시외버스에선 사람냄새가 난다. 도시의 버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 김민수

전북 김제터미널에서 금산사 가는 시외버스에 올라탔다. 그냥 시외버스가 아니라 정말 시골을 달리는 그런 시외버스를 얼마 만에 타보는 것인지 감회가 새롭다.

서울시내의 버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외버스에서는 사람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드문드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 안부를 주고받고, 낯선이에게도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목적지를 이야기하자, 낯선이는 알 수도 없는 곳에서 내린다며 잘 다녀가란다.

서울시내의 버스에서는 어지간해서 아는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고, 저마다 자기 일에 열중을 하느라 다른 이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데 시외버스에서는 한 가족인냥 속속들이 가정사까지 꿰고 있는 듯,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조금은 못생긴 사람들, 순박한 사람들, 그저 자기가 살아가는 곳에서 할수 있는대로 열심히 살았던 그들이건만 이제 또 한미FTA라는 괴물의 횡포가 그들의 삶을 유린할 것이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여?"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게 고향을 지키고 살아가는 땅의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강요하는 현실이 스산한 겨울날씨와도 같았다.

까치밥 조금 못생긴 까닭에 까치밥으로 남았다. 잘 생긴 탓에 먼저 가지에서 떠난 이들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닐까?
까치밥조금 못생긴 까닭에 까치밥으로 남았다. 잘 생긴 탓에 먼저 가지에서 떠난 이들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닐까? ⓒ 김민수

제법 까치밥이 많이 남았다. 가만 살펴보니 크기도 작아서 곳감을 만들기도 그렇고, 상품화 하기도 어려운 그런 것들이다. 그냥저냥 따서 말리면 군것질거리라도 될런지 모르겠다. 못생겨서 그곳에 남아있는 것이려니 생각하니, 못생긴 것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까치밥이 바람이 흔들리며 떨어졌다. 홍시가 된 까치밥이 땅에 안착할 리가 없다. 거의 터져버린 까치밥을 들어 흙을 떼어내고 맛을 보니 달착지근한 것이 잘 익었다. 저걸 어떻게 하나 따먹을 수 없을까 궁리를 하며 발로 감나무를 차보지만 그네들이 "웃기고 있네!" 조롱하듯 가지를 단단히 붙잡고 떨어지질 않는다.

'에이, 아직 저건 떫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피식 웃는다. 이건 이솝우화도 아니고 현실인데, 왜 요즘 현실은 이렇게 코미디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허긴, 국민이 볼 땐 코미디지만 지들은 생사 혹은 명예가 달린 문제요,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진짜 서글픈 코미디가 아닌가!

서리 밤새 서리가 내렸다. 서리를 맞은 풀들이 시들거린다.
서리밤새 서리가 내렸다. 서리를 맞은 풀들이 시들거린다. ⓒ 김민수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산책을 나섯더니 서리가 내렸다. 남도라도 아직도 푸른 기운이 남아있고, 쇠별꽃도 피어있다. 서릿발에 꼿꼿하던 풀잎도 늘어지고, 쇠별꽃도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 몇번 서릿발을 맞으면 사그러들 것이다.

어쩌면 한미FTA는 월동준비를 끝내지 못한 풀에 내리는 서릿발이 아닐까 싶어 서글프다. 월동준비를 끝내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서리가 내리면 그들이 죽어야 한다.

시절을 잘못 만난 것일까? 그들의 푸름이 안타깝기만 하다. 무슨 이유는 있을 터인데, 하필이면 겨울 초입에 이렇게 푸를 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호박 못생긴 것도 서러운데 버림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서러울까?
호박못생긴 것도 서러운데 버림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서러울까? ⓒ 김민수

밭 한 구석에 못생긴 호박들이 썩어가고 있다. 못생긴 것도 서러운데 제대로 익지도 못해 버림을 받았으니 얼마나 서러울까? 그렇다고 의미없는 일은 아니겠지. 저 안에서도 겨울을 나고 싹을 틔우고 호박씨가 있을 터이고, 그리하지 못한다고 해도 밭을 기름지게하는 거름이 될 터이고, 혹시라도 배고픈 들짐승의 허기를 채워줄 수도 있을 터이니까.

나는 그들을 보면서 이 땅의 농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못생겨서 버림받은 호박같은 인생들, 그럼에도 호박처럼 둥글둥글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그가 그였다. 어찌되든 그들은 살고 또 살아갈 것이다. 호박처럼 둥글둥글, 그래서 절망할 수가 없다.

견공 낯선 방문객의 발소리에도 완전무시하고 잠을 자는 견공, 새끼만 멀뚱멀뚱 객을 바라본다. 완전 개무시다.
견공낯선 방문객의 발소리에도 완전무시하고 잠을 자는 견공, 새끼만 멀뚱멀뚱 객을 바라본다. 완전 개무시다. ⓒ 김민수

그냥 발길을 돌려 치열한 경쟁의 도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을 천천히 할겸 청도리에 있는 귀신사(歸信寺)에 들렀다. 순전히 이름이 재미있어서였다. 이름은 그래도 들어있는 뜻은 의미심장하다.

사찰 마당엔 새끼강아지 세 마리가 어미개의 품에 안겨 젖을 빨고 있었다. 낯선 방문객의 발소리에 어미가 잠시 눈을 뜨는가 싶더니만 '개무시'하고 잠을 잔다. 새끼들도 에미를 닮아 물끄러니 쳐다보는 듯하더니만 이내 눈을 돌려버린다.

꼬리라도 치고 달려오면 쓰다듬어 줄 터인데, 꽤씸한 놈들 같으니라고. 그러다 문득 짖지 않는 것만으로도, 도망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싶다. 사찰이라고, 스님의 사랑 많이 받고 자랐겠구나. 너희들은 복날 걱정 없겠구나. 너희들 행동을 보니 사람들이 별로 무섭지 않구나. 비록 어미개 묶여 있어도 개답게 살고 있구나.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할 때, 그 개가 너희들이구나. 너희들이 정말 개구나.

서울로 돌아와 뉴스를 보니 아,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국민을 물어뜯는 소리가 넘쳐난다. 공권력에 린치당하는 국민들은 보이지 않는지, 거품을 물고 국민을 물어뜯으려고 안달들이다. 권력의 개가 되어버린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정의라며 발악을 한다. 개들이 판을 친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에 나오는 개와는 다른 미친개말이다.


#한미FTA#서리#호박#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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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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