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나 은경이를 다시 만났다. 이제는 내 집이 될 곳의 열쇠를 받고,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한 뒤 천천히 짐 정리를 시작했다. 넓은 책상 위에 화장품이나 책 같은 소소한 물건들을 올려놓고 옷장에 옷을 채워 넣었다. 다들 일하러 가거나 학교에 가느라 텅 비어 있는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는데 저녁쯤 됐을까, 한 여자 분이 방으로 들어왔다.
나중에 내 둘도 없는 친구가 돼줬던 혜미 언니였다. 약간 강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속으로 살짝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시원시원하게 인사하는 언니를 보며 호주에서 처음 만난 룸메이트와의 생활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오늘 처음 만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수다를 떨던 우리들은 그날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 내가 선택한 학교는 브리즈번에 있는 'Southbank of TAFE'라는 곳이었다. TAFE는 우리나라의 전문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데, 사실 직업전문 학교의 성격이 조금 더 강하다. 브리즈번에도 UQ, 그리피스 등 유명한 대학교들이 많은데 그런 학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교육비가 저렴하고, 일단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어학연수 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서관 같은 학교 시설을 무료로 개방한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였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미리 익혀두었던 길로 학교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교실을 찾을 수 없었다. 인터뷰 약속 시각은 다 돼 가는데, 사우스 뱅크 테입의 건물은 건널목 건너까지 길게 이어져 있어 대체 어느 건물이 어학원 건물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안내 데스크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 되지도 않는 영어로 '오늘 처음 온 학생인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허둥대는 내가 딱해 보였는지 직원 한 분이 알겠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앞장섰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나와 같은 신입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 가는 날
대부분의 학교와 어학원들은 수강생의 영어 수준을 알아보고 그에 맞는 학급에 배정하기 위해 간단한 인터뷰와 시험을 치른다. 사우스뱅크 테입에서는 문법과 독해 시험을 봤다. 이후 호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작문 시험을 치렀고, 어학원 관계자와 간단한 대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떨리고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담당자가 친절하게 대해준 덕분에 편하게 얘기했다. 나는 중간 레벨의 학급에 배정됐다.
사우스뱅크 테입은 기초반인 레벨 2부터 고급반인 레벨 5까지 있다. 이후로는 현지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상급자 반이나 IELTS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반도 따로 개설돼 있다. 테스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다 같이 보거나 문법, 스피킹 등 한 과목씩 따로 채점해 점수를 합산한 뒤 일정한 수준이 되면 상급반으로 올려 보낸다.
대부분의 워킹홀리데이 소지자는 호주에 도착한 직후나 한국으로 돌아가기 몇 달 전 쯤 부터 몇 개월 단위로 학원을 다니며 영어 공부를 하게 된다. 자기 생각에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좀 더 오랜 시간 공부를 하고, 나처럼 경험이나 여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일단 문법과 생활 영어를 집중해서 배운 뒤 다음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좋다. 정말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생각이 있다면, 한국에서부터 학원을 다니거나 영어 방송 라디오를 들으면서 공부를 한 뒤 호주에 오는 것이 낫다(내 경우에는 라디오 기능이 있는 MP3 플레이어가 도움이 됐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학교를 알아보고 비교한 뒤에 학교를 선택했지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로운 수업 방식, 오후 강의는 자신이 부족한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는 점(대부분의 학원이 비슷하다), 학교 학생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는 점 등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입학했을 때는 마침 도서관 건물 공사가 끝나서 나와 내 친구들은 깨끗하고 멋진 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어학연수 학생들도 등록한 기간 동안은 책과 DVD를 무료로 대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수준이 낮은 만화나 사진책 등을 읽으며 영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또 도서관 한 쪽의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는데(개수대를 비롯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함께 마련돼 있다), 처음에는 몇몇 친구들끼리 모여서 먹다가 나중에는 많은 친구들과 식탁 몇 개를 붙여 앉아 즐겁게 점심을 먹곤 했다. 물론 담당 선생님이 자주 바뀌거나 커리큘럼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불만스러웠던 점들도 있긴 했지만.
처음에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내가 호주에서 생활하는 데 있어서 정말 큰 힘이 돼 줬다. 여행이나 귀국으로 인해 한 사람씩 떠날 때면 마음 한 편이 허전하고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함께 바비큐 파티도 하고, 다 같이 브리즈번 근처의 골드 코스트처럼 가까운 곳으로 놀러 가기도 했다. 또 내가 학교를 수료하고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일본인 친구 집에서 주말마다 파티를 열어 불고기, 오코노미야키, 월남쌈 등 각국의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 기억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 큰 자산이다. 가끔은 그 때의 추억들이 생각나 가슴이 벅찰 정도니까.
아직도 라디오를 들으며 학교로 걸어가던 길과 도서관의 모습,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었던 사우스 뱅크 강가의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로 나는 이 학교와 그 곳에서 만들었던 모든 추억이 너무나도 그립다.
I love library!
앞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도서관을 무척 좋아한다.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을 가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들이 빼곡히 채워진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제목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을 꺼내 훑어보거나, 주로 사진 책이나 요리 책처럼 그림이 많이 들어가 있는 책들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만약 당신이 평소 책 보기를 돌같이 하거나 도서관 가는 것을 연례행사로 여기는 사람이더라도, 호주에 있다면 반드시 도서관에 즐겨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호주의 도서관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다. 우리나라 도서관은 시험 기간만 되면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꽉 채워질 정도로 공부·자습을 위한 공간으로 생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호주는 그렇지 않다. 크게 얘기하면 하나의 '문화센터'라는 개념이 더 적합할 것이다. 호주 도서관에서는 음악회도 열리고 각종 모임이며 세미나, 작가와의 만남 등이 개최된다. 지역 주민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한다.
내가 처음 호주의 도서관을 가보고서 매우 놀랐던 점은 '도서관'이라는 그 건물 자체에 있었다. 성냥갑처럼 일정한 규격에 비슷비슷한 양식을 가진 우리나라의 도서관에 비해, 이곳의 도서관은 그 형태부터가 너무나 개방적이었다. 브리즈번 시내에서 가장 큰 주립 도서관을 보면, 1층은 뻥 뚫려 있어 거의 공터나 다름없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유롭게 얘기를 나눈다.
옆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프리 인터넷 지역과 아이들의 놀이 시설이 펼쳐져 있다. 앞 쪽 탁 트인 유리창 너머 브리즈번 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편하게 앉아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고, 각자의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내게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이란…. 또한 도서관 바로 옆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연결돼 있어 한 번에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전시와 행사의 입장료는 무료다.
호주가, 그리고 다른 선진국들이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에게 좋은 문화적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 아닐까. 그 결과 국민들은 너무 일상적이라 거리낌조차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문화 의식이 생겼을 것이다.
만약 호주에서 전시도 보고 음악도 듣고 싶은데, 돈은 없고 비싼 책값을 감당하지 못해 슬프다면 주저 말고 도서관으로 가길 바란다. 브리즈번에는 강과 다리를 경계로 주립 도서관과 시립 도서관이 붙어 있다. 나는 시립 도서관에서 주로 책을 빌리고(책뿐만 아니라 잡지, 만화, DVD도 빌릴 수 있다), 부족한 공부를 하거나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 시립 도서관을 찾았다. 자신의 호주 내 현재 주소지가 적힌 편지 봉투와 여권 등 신분증만 있으면 바로 카드를 만들 수 있다. 시립 도서관의 경우, 이 카드 한 장만 있으면 동네마다 있는 도서관의 이용도 가능하다(주립 도서관은 이용할 수 없으므로 따로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각 도서관의 1층 안내 데스크에 가면 매달마다 열리는 행사가 목록별로 자세히 적혀 있는 홍보 전단이 있다. 나는 그런 행사들을 확인해 방과 후나 휴일에 하나둘씩 찾아다니곤 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다른 나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시립 도서관 2층 한가운데에서 펼쳐지는 음악회에 갔던 날에는 목소리가 고운 여가수의 노래를 바로 앞에서 들으며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뒤늦게 꿈을 좇아 노래를 하는 듯한 중년 여가수의 공연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내게 그 가수를 손으로 가리키며 "My sister'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주머니는 감격한 듯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물론 좋은 의미의 눈물이었지만, 나는 당황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영어 표현들을 동원해 그녀를 위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주립 도서관 1주년 행사때 1층 광장에서 보았던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들의 공연도 기억이 난다. 공연이 끝나고서는 아이들이 1주년 기념 초대형 컵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작게 자른 케이크를 다같이 나눠 먹었다. 또 도서관 후문 쪽의 테라스에서는 바비큐 파티를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핫도그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나는 핫도그를 받아서 브리즈번 강변 쪽으로 향했다. 벤치에 앉아 핫도그를 먹으며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1주년 행사를 이런 식으로 모두가 어울려 함께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이렇게 낯선 나라에 와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들의 사고 방식과 일상을 즐길 줄 아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작지만 아주 다르게 다가왔던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느낌. 나는 이 모든 것을 도서관에서 배웠다.
Cafe, Three monkeys에 가다
전부터 들었다. 내가 사는 웨스트엔드에 유명한 카페가 있다고. 여러 매체에도 소개될 만큼 널리 알려졌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도통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같이 집에 가고 있는데 깜짝 놀랐다. 신호등 옆에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카페가 바로 그 유명한 카페였다. 매일 지나는 길인데 몰랐다니.
한가한 주말 오후. 용기를 내 카페 '쓰리 몽키즈(카페의 간판 캐릭터가 원숭이 세 마리)'에 들어갔다. 고풍스럽게 꾸며진 내부는, 딱 어디 양식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오묘한 분위기였다. 굳이 말하자면 인디언 풍이랄까, 출처를 알 수 없는 장식품들과 카펫들이 이국적이었다. 여기저기 놓여 진 테이블마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호주의 커피 가격은 한국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대개 3달러에서 5달러 사이라고 보면 된다. 유명하거나, 좋은 입지에 있는 카페들도 어지간해서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호주에서 저렴한 가격에 개성이 뚜렷한 많은 카페들을 탐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번호표를 받고, 혼자 앉을 만한 자리를 물색하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가니 환한 공간이 펼쳐졌다. 카페 안쪽에는 정원처럼 트인 공간에 천막과 테이블을 둔 야외 공간이 따로 있다. 친구들 여럿이 함께 오거나 바람을 쐬면서 책을 읽고 싶을 때는 밖으로 나가면 된다. 두 가지 매력이 함께 있어서 이곳이 그렇게 인기가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어 안으로 들어와 조그만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어두컴컴한 카페 안의 1인용 테이블, 그리고 노란색 불 스탠드까지. 카운터에서 받은 번호표를 세워두고 잠시 기다리자, 종업원이 내 주문을 확인하고 커피잔을 내려놓고 간다. 맛있다. 심플한 잔에 고운 우유 거품이 있었고, 코코아 가루를 살짝 뿌린 카푸치노. 앞으로 나는 기념할 만한 일이 있거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날에는 이곳에 오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시간이 나는 주말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웠던 나머지, 좋은 곳이 있다며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한번은 학교에서 알게 된 에이린과 스텔라, 그리고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갔다. 모두들 이 오묘한 카페의 매력에 빠졌고 나는 예상치도 못한 칭찬을 받았다.
그날 우리는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서 각자 음료를 시켜놓고 평소 다 하지 못한 수다를 떨었다. 간혹 말문이 막힐 때면 손짓도 하고, 그것도 안 되겠다 싶으면 종이와 펜까지 동원했다.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 것을 들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우리는 전혀 다른 나라에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이렇게 만나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웃고 떠드는 그 와중에도 어렴풋이 놀랍게 느껴졌던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