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열린 곽노현 교육감사건 제13차 공판을 참관했다. 11차 공판서부터 3차례 연속 진행된 박명기 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그밖에도 박 피고인의 선거본부장을 지냈다는 양아무개 증인, 최측근 보좌관 김아무개 증인을 비롯, 이해학 목사, 유시춘 전 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등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역할을 했던 여러 증인들에 대한 신문자리에도 자리를 지켰다.
곽 교육감과 박 교수가 돈을 주고 받은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 이상, 그리고 그 사실을 중심으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이상, 이 사건이 교육개혁을 좌절시키고 진보진영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위해 기획된 표적수사라고 언제까지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선 진상을 명확히 알아야 주장도 힘을 얻는 법이다. 한명숙 전 총리 재판 이후 또 한번 무거운 발걸음을 법원으로 옮기기 시작한 이유다.
특히 이날의 13차 공판에서는 박명기 피고인 측에서 단일화과정을 혼자 이끌다시피 했던 양아무개 증인, 양아무개 증인의 인척(동서)이면서 곽노현 후보의 회계책임자로 양아무개 증인과 협상을 최종 마무리했다는 이보훈 증인, 그리고 이들 사이에 이루어진 협상 내용을 보증했다는 최갑수 교수(서울대 서양학과)간 3자 대질신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양아무개 증인이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이날 3자대질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들 세 사람의 대질을 통해, 단일화 대가로 돈을 주고 자리를 주기로 한 사실을 곽교육감이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 정도는 규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무산되고 말았다. (양아무개 증인의 불출석에 불같이 분노한 재판장이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하고 구인장을 발부함으로써 3자대질이 8일에는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무산된 대질신문, 나타나지 않은 박 교수 쪽 협상 대표재판의 본질은 분명하다. 돈과 자리를 제공하기로 한, 선거 참모들끼리의 단일화 협상 내용을 곽 교육감이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와 나중에 곽 교육감이 친구 강경선 교수(방송통신대 법학과)를 통해 건네 준 돈이 후보사퇴에 대한 대가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재판장(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 김형두 부장판사)은 지난 11월 1일 첫 재판에서 법학 교과서와 일본 판례들을 들어 "사전 인지나 추인 여부와 관계없이 사퇴 후에 대가로 이익이 제공되면 죄가 성립한다는 법 해석들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그는 "사전 인지 여부는 대가성을 판단하는 부수적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부연함으로써, 곽 교육감이 언제 참모 간 협상 내용을 알았느냐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왔다. ('사후매수죄'라는 법률의 적합성 여부는 이번 재판을 대가성을 중심으로 판단하겠다는 재판장의 굳은 의지 앞에 별 의미를 갖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재판이 지금까지 총 13번이나 진행됐고, 예정된 증인 10여 명이 모두 증언을 마쳤음에도 아직 어느 것 하나 명확히 규명된 것이 없는 것이다. 주요 쟁점마다 증언이 엇갈린데다 대질신문마저 연기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비교적 일치된 증언을 통해 확정된 사건의 개요를 시간순으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① 2010년 5월 초순 언간에 박명기 후보의 친구이자 선거본부장인 양아무개가 후보단일화를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박 후보 진영에서는 당선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듯 하다. ② 2010년 5월 18일 두 후보자와 양아무개, 김아무개 등 두 후보자의 핵심 참모가 처음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두 후보 사이에 '경제적 어려움'(박) '성심껏 돕겠다'(곽) '자문위원장 맡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박) '그럴 것이다'(곽) 등의 대화가 오갔으나 포괄적 의미의 얘기였고 옵션은 아니었다. 정책연대 얘기도 나왔다. 식사 후 곽 후보가 먼저 일어서고 그의 참모 김아무개가 배웅하려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양아무개가 박 후보에게 "7억으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③ 저녁 때 사당동 모 호프집에서 시민사회학술단체대표 대리역인 이해학 목사, 최갑수 교수, 양측 캠프의 양아무개, 김아무개가 모였고 박명기 교수도 왔다. 이야기가 진행되던 중 돈 얘기가 나오고 각서 쓰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분위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이해학 목사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곽 교육감이 나중에 와서 (얘기를 듣더니) 얼굴이 붉어진 채 자리를 떠났다. 이어 이 목사, 최 교수도 떠나고 박 후보, 양아무개, 김아무개(곽 교수 측)가 남아 유세차량 인수 문제를 논의하다가 박 후보가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④ 이튿날 아침, 박 교수는 평소 어려운 일을 논의해 왔던 유시춘 위원에게 전화해 차량계약을 파기할 경우 손해배상 범위를 물어 봤고, 기왕에 지출된 선거비용 보전문제 때문에 단일화가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그때까지 쓴 비용이 3, 4억 정도 된다고 받아 들인 유 위원이 곽 후보에게 전화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고 이 내용을 박 후보에게는 알려 주지 않았다.사건의 재구성- 돈 얘기에 완강하게 거부감 표시한 곽노현 후보⑤ 박 후보는 스스로 후보사퇴를 결심하고 이날 오전 양아무개에게 후보단일화 재협상 문제를 일임했다. ⑥ 박 후보는 이후 11시 흥사단에서 열린 후보자 정책 메니페스토에 참석, 곽 후보와 나란히 앉았다. 곽 후보는 협상재개를 제안했고 박 후보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답했다. 12시 20분쯤 곽 후보는 먼저 자리를 나와 인사동 한식당에서 모 언론사 간부들과 점심자리에 참석했다. ⑦ 협상을 다시 일임받은 양아무개가 12시 30분 쯤 여전히 흥사단에 남아 있던 박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와 "얘기 잘 됐다. 비용문제는 우회적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자세히 얘기하자"고 했다. ⑧ 한편 곽 후보, 모 언론사 간부들과 함께 인사동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최 교수에게 1시쯤 양아무개가 "협상이 될 것 같다"는 전화를 걸어 왔다. 최 교수는 2시 30분 쯤 양아무개와 그의 동서이며 곽 후보 측 회계책임자인 이아무개와 인사동 찻집에서 만나 그들로부터 "5억(혹은 7억+차량인수비용)으로 합의하기로 했으니 (진보)진영에서 해결해 주는 것으로 최 교수가 보증해 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⑨ 오후 4시 양아무개가 박 후보 측 사무실로 돌아와 "7억 원(낙선 경우 5억)을 보전하되 긴급처리 비용 1억5천은 자신(양아무개)의 집을 담보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자신과 최 교수 등 3자가 8월 말까지 처리하기로 곽 후보 측과 합의했다"고 보고했다. "이 사실을 우리 측에서는 박 후보와 자신, 저쪽에서는 곽 후보와 회계책임자 이 아무개(자신의 동서)만 알기로 했다"고도 했다. 박 후보는 당시 '정황상' 곽 후보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확인하지는 않았고 선거 끝난 후 8월쯤 양에게서 (곽 후보로부터 확인받은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⑩ 오후 6시 단일화 기자회견장에서 회견 직전 원로들 앞에서 박 교수가 먼저 "사퇴하겠다"고 하자 곽 후보가 감격한 상태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박 후보를 끌어 안고 "(후보감으로) 차고 넘치는 사람이 양보해 줘서 고맙다"며 "앞으로 형제처럼 지내자"고 했다. 돈 주고 받기로 한 동서끼리의 합의, 곽 교육감은 알고도 감격했을까다음은 선거가 끝나고 곽 후보가 교육감으로 취임한 이후의 시간대 별 상황이다.
① 기대했던(혹은 약속한 것으로 믿었던) 돈은커녕 자리도 마련되지 않는데다 급기야 자신의 단일화협상 대리인 격이었던 양아무개가 전화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극심한 소외감과 불만에 싸여 있던 박 교수가 8월19일 곽 교육감을 불쑥 찾아 간다.② 8월 말, 혹은 9월 초에 양아무개, 김아무개 등 측근들을 만난 박 교수는 곽 교육감 사무실에서 "이게 정치도의상 (맞는 일)이냐. 장삼이사도 약속을 지킨다. 그런데 이렇게 철저히 무시하나. (5월 18일) 식당에서 (내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지 않게 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는 말을 하고 이를 녹취한다. 이 녹취록에는 이밖에 곽 교육감이 놀라면서 "갑자기 무슨 말을 하십니까" " 어? 그래요?" 등등의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다. 곽 교육감은 확인해 보겠다고 약속도 했다.③ 박 교수는 자신의 측근인 김아무개를 곽 교육감 비서로 추천했으나 거부당한데다 9월 1일 교육청 인사와 혁신학교 발표를 보고 "협의없이 왜 그렇게 하느냐. 정책연대가 그런 것이냐"고 항의했으나 곽 교육감은 "정책연대는 선거기간 중에 다 한 것 아니냐"는, 자신으로서는 기가 막힌 말을 듣는다. ④ 10월 양아무개마저 "네 멋대로 하라"며 떠나자 박 교수는 6일 '단일화과정의 개요와 내용'이라는 문건을 작성한다. 11월 초 이 문건을 들고 최 교수를 찾아가 "당신이 보증하지 않았나"고 따진다. 최 교수는 "이런 걸 왜 작성하나. 내용도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르다"고 반응한다. ⑤ 1주일쯤 후, 최 교수의 주선으로 곽 교육감 포함 세 사람이 인사동에서 회동한다. 식사 후 박 교수가 "단일화 때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도움…"운운하자 곽 교육감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최 교수, 당신이 약속했어? 당신이 책임 져"라는 반응을 보이고 박 교수는 "이럴 수 있느냐"며 언성을 높인다.⑥ 11월 17일 곽 교육감의 친구 강경선 교수와 김아무개 교수가 박 교수를 처음 만났다. 박 교수는 자신의 선거비용 관련 서류를 들고 나갔다. 5억, 7억 등의 말이 나왔다. 이후 양 측은 여러 차례 더 만나 조건에 대해 얘기했으며 강 교수 등은 "맡긴 돈 달라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 최대한 줄 수 있는 것이 2억 원이고 그것도 한꺼번에는 안 된다"고 했고 박 교수는 "2억으로는 내가 파산한다. 3억은 돼야 한다"고 맞섰다. ⑦ 2억 원은 2월 22일부터 4월 12일까지 총 6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박 교수의 동생에게 전달되었으며 이 돈 중 1억5천은 박 교수 계좌로, 5천만 원은 현금으로 다시 박 교수에게 전달되었다. 일부 돈에 대해서는 차용증을 쓰기도 했다. 박 교수는 수사과정 초기 이 돈이 "후보단일화 명목으로 강경선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진술했으나, (곽 교수 주변의 진보)진영인사들이 만든 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날 공판은 이 대목에서 여러 차례 재판장과 감찰, 변호인단이 확인, 재확인을 거듭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단일화 합의명목으로 받은 것"이라는 박 교수의 검찰진술을 유지하고자 애쓰면서 "어제(12차 공판)부터 갑자기 진영 얘기를 하는 것은 곽 교육감을 감싸기 위해 그러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검찰의 추궁이 심한 추측이라면서 "민주진보진영 전체가 도의적으로 생계를 책임져 준다는 의미로 단일화 명목이라 한 것"이라는 진술을 확정하려 했다.
'단일화 명목'의 의미를 둘러 산 공방 재판장이 공판진행을 멈추고 박 교수의 조서를 흝어 본 결과, 박 교수는 검찰에서 추가조사를 받을 때 이미 "(진보) 진영 전체의 도의적 책임에 의해 만들어진 돈"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재판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9월 21일 재판부에 낸 피고인 의견서에 "2억 원을 출마비용 빚 갚는데 사용했으나 민주진보진영이 도의적 책무차원에서 마련해 준 것이기 때문에 단일화 대가로 받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분명히 밝혔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고 보니 곽 교육감이 2억 원 중 출처를 밝히지 않은 1억 원이 어떻게 조성된 것인지 새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곽 교육감이 참모들의 단일화 합의내용을 사전에 알았는가 몰랐는가의 문제는 아무튼 8일로 예정된 양아무개, 이아무개, 최갑수 교수간 3자 대질신문으로 확정될 것이다. 하지만 2억 원의 대가성 여부는 도무지 오리무중인 상태로 해를 넘길 것 같다. 2011년을 딱 하루 남긴 30일까지 모두 6번의 기일이 빡빡하게 잡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