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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품안에 자식"이라는 옛말과 함께 친척이나 결혼을 일찍 한 분들에게 종종들었던 말이 "중학교 들어가면 서먹서먹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내 자식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큰 아이가 5살 때입니다. 급한 볼일이 있어 시내를 혼자 갔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였습니다.

 

"여보, 인헌이가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에요."

"방금까지 괜찮았잖아요. 갑자가 무슨 일이에요?"

"아픈 것이 아니라 자기 안 데려간다고 숨어 넘어갈 정도로 울고 있어요."

"알았아요. 다시 데리려 갈데니까 달래주세요."

 

"아빠하고 그렇게 함께 가고 싶어?"
"예, 아빠하고 같이 가고 싶었어요."

"우리 인헌이 울지마, 아빠가 데리고 갈 것이니까."
"앞으로는 꼭 데리고 다녀야 해요."

"그래, 약속."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가 큰 아이와 함께 시내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가 멀리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온다는 전화를 받으면 1시간도 기다릴 정도로 아빠를 좋아했었습니다. 6살까지 업고 다녔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서로를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아빠, 업어주세요."

"인헌이 벌써 다섯 살이야. 다 큰 아이가 아빠에게 업혀 다니면 사람들이 흉본다. 다 큰 아이가 아빠에게 업힌다고."
"괜찮아요. 아빠 등에 입히면 마음이 좋아요."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업어 달라고 하겠다. 아빠도 네가 등에 업히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면 그 때는 네가 아빠를 업어주라."
"그럴게요."

 

 중1 큰 아이. 차를 함께 탓는데 갑자기 서먹한 느낌을 받았다.
중1 큰 아이. 차를 함께 탓는데 갑자기 서먹한 느낌을 받았다. ⓒ 김동수

6학년 때까지도 큰 아이는 저를 잘 따랐고, 이야기를 자주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침에 일찍 가고 방과후 학습을 하고 집에 조금 늦게 오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아빠와 아들 사이 대화 시간이 줄어들었으니까 부자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밤새 토했습니다. 웬만큼 아파도 큰 아이는 학교를 갑니다. 아니 아내가 보냅니다. 하지만 화요일 아침 아이 모습을 보니 학교에 갈 몸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몸조리가 필요할 것 같았지만 아내는 차로 데려다 주라는 것입니다.

 

"그냥 집에서 쉬면 안 되나?"
"쉴 정도는 아니에요. 당신이 차로 데려다 주면 되잖아요."

"가기 싫은데."
"저 몸으로 어떻게 버스를 탈 수 있어요. 태워 주세요. 시간 얼마 걸린다고."

 

1학년 초에 가방이 너무 무거운 것 같아 차를 2주일 정도 태워 준 후 8달 만에 다시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큰 아이도 아빠에게 할 말이 없었는지 적막감이 돌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7~8분 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였지만 굉장히 긴 시간이었습니다. 짧은 등교시간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답답했습니다. 다섯 살까지 입어줬고, 창문에서 아빠를 1시간 아니 2시간도 기다렸던 큰 아이와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서먹함을 경험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도 계속 토하고, 밥도 먹지 못했다는 선생님 전화를 받고 데리려 갔습니다. 아침과는 달리 말을 이어갔습니다.

 

"밥 먹지 못했니?
"예, 먹지 못했어요. 먹으면 토할 것 같았어요."
"배 많이 고프지?"

"고픈지도 모르겠어요. 몇 번이나 토했어요."

"병원 가서 치료받고 약 먹으면 괜찮아 질 것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빠, 저 좀 누워야겠어요."
"그렇게해."

 

짧은 대화였지만 아침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도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학교 공부 이야기, 꿈이 무엇인지, 친구들과 관계 등을 묻고 답했습니다. 화요일보다는 훨씬 나아졌습니다. 아빠와 아들 무슨 큰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부터 대화의 문을 열어가야 함을 이틀 동안 경험했습니다. 다섯 살 때처럼 함께 가겠다고 울거나, 업어 달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것은 아빠와 아들 사이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큰아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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