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 삶은 무척이나 힘들다. 교회를 설립한 지 3년이 넘어서고 있는데 뜻한 대로 부흥하지 않는 까닭이다. 맨 땅에 헤딩한 꼴이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어려울 줄은 몰랐다. 가끔 선배 목사들이 몇 명이나 모여서 예배하는지 묻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그런 걸 예상하고서 아예 모임 자체에 안 나갈 때가 많다.
외판원처럼 이집 저집 전단을 들고 찾아가도 문전박대받기가 일쑤다. 그나마 고마운 이들이 있다. 전철역에서 전단을 받아들고 고마워하는 이들이 그렇고, 이른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전단을 받아주는 젊은 학생들이 그렇다. 그래도 대부분은 무시하거나, 받았다가도 금방 집어던지기가 일쑤다. 고귀한 뜻을 홍보(?)로 대변해 보려다 낭패를 겪고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처음엔 10년간 열심히 개척을 해보기로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10년 동안 한 가지 일에 정념하면 수맥이 잡히지 않겠냐 싶은 까닭이다. 그러나 개척교회의 현실은 3년 안에 판가름이 난다는 게 정설이다. 되는 교회, 되지 않는 교회, 그게 3년 안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기준을 따라 그만 접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할지, 아니면 기존 교회에 눈을 돌려야 할지, 그도 아니면 정말로 10년간 한 우물을 팔지, 망설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머리를 식힐 겸 책 한권을 받아들고 읽어봤다. 이름 하여 <안철수 경영의 원칙>이 그것이다. 문고판처럼 얇디얇은 책이라, 휘리릭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안철수 교수가 '관악초청강연'에서 한 강연과 토론과 회중의 질문에 답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뭐랄까? 안철수가 걸어온 삶의 이력, 혹은 그의 인간경영의 원칙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내게 정리해 준 인생경영의 원칙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단기적인 행복보다 장기적인 행복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정작 자기 자신의 행복을 취해야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의사가운을 입으면 환자도 그렇지만 자기 자신도 병든다는 것도 그 이치였다. '영혼 없이' 치·의대에 혹은 목회자의 길에 몰려드는 것도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
둘째는 죽어도 부끄럽지 않는 역사적인 이력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그는 매 순간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뭔가를 노리는 이해타산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보다 과정에 방점을 찍어왔다는 뜻이다. 교수로 임명받은 기간도 2008년부터 2027년까지였다는데, 그는 미래에도 교수로 있을지 장담할 수 없고, 다만 현재의 일에 모든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거 보면서 '내가 2027년까지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계획을 안 세우니까 아마 2027년에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좋으면 정년까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그 순간에 제가 가장 의미를 느낄 수 있고 재밌게 일할 수 있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72쪽)마지막 하나는 그가 추구한 융합의 원리인데,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서 다른 분야에도 열려 있는 상식과 포용력을 갖추도록 한 게 그것이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과 다른 길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심지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삼을 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길도 트일 것이다.
그것이 안철수 교수가 밝힌 인간경영이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것은 내가 어느 정도 잘 지켜온 것들이지 싶다. 장기적인 행복을 위해 개척을 했고, 또 돈으로 목회지를 사고파는 목회세계에 부끄럽지 않는 길을 택해왔고, 그리고 상식과 포용력으로 반대편 사람들까지도 기꺼이 품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있다면 뭘까? 정치도 생물이듯이, 목회는 더더욱 생물이라는 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모두가 인간 경영에서 비롯되지만 목회 세계엔 신적인 경영의 원리가 스며 있는 것 말이다. 그걸 제대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또 바른 다리를 놓지 못하는 까닭에 헤메이고 있는 게 아닐까?
어떻게든 결단을 해야 할 때다. 안철수 교수는 큰 결단을 해야 할 때, 성공해도 성공에 집착해서 안 되고 실패해도 실패에 얽매이지 않도록 충고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보통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는 까닭일 것이다. 더욱이 주위 사람의 평가에도 연연하고, 미래의 결과에 대해 미리 욕심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것들을 털어낼 수 있는 길, 아직은 이 책에서 답을 얻지 못했다.
다만 현재에 더 충실해 보자는 것, 그게 현재로서 내가 얻는 답이다. 사람들은 안철수 교수가 내년에 대선에 나올지, 관심을 둘 것이다. 그 부분의 답은 이미 이 책에 나와 있다. 그는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택할 것이요, 역사적으로 부끄럽지 않는 이력서를 쓸 것이요, 미래에 대한 이해타산보다 현재 과정에 최선을 다한다는 게 그것이다. 나도 그가 발로 쓰고 있는 현재의 이력서, 곧 '현재의 최선'에 내 방점을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