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양반 나 좀 내려줘요, 주전자에 가스불 켜 놓고 와 부런네. 얼른 차좀 세워주쇼."
한 회원이 급히 차를 세워 달라고 아우성이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한 남성의 가스 불을 꺼야 한다는 다급한 목소리에 차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지러졌다.
토요일이었다. 지난 10일 오전 9시 여수망마경기장에 50여 명의 회원들이 모였다. 이들은 여수YMCA에서 주관하는 금오도 여행길에 나섰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2개의 팀으로 나눠었다. '남해안 섬 명소탐방 금오도·안도 자전거 여행'팀과 '여수 YMCA 회원가족 금오도 여행' 비렁길 등반 팀이다. 이번 행사는 여수 YMCA에서 실시하는 회원모집운동의 일환으로 시민들에게 이를 홍보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의 일환이다.
인원체크가 끝나고 등반팀은 큰 버스로 돌산 신기항으로 출발했다. 이후 자전거팀이 탄 미니버스가 그 뒤를 따랐다. 그 중년 남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날 아침 일찍 부인이 하루 집을 비운사이 물을 끓이려고 가스 불을 켜 놓고 자전거를 타러 왔단다. 그는 가스 불을 물을 올려놓고 온 것 같기도 하고 불을 끈 것 같은 생각도 가물가물. 아무튼 버스를 아파트 앞에 세웠고 허겁지겁 집으로 갔다. 잠시 후 차를 탄 그에게 질문이 터졌다.
"가스불은 끄셨어요?""워메 물이 팔팔 끌고 있어 얼른 끄고 왔어라. 오늘 집 날릴뻔 했네 그냥. 요즘 나이가 들다보니 갈수록 건망증이 심해져 큰일이구만요."이 말을 들은 또 다른 중년 남성이 말을 거든다.
"아 나도 얼마 전 주전자에 물 끊인다고 물을 올려놓고 새벽에 출근했는데 오후 3시까지 타고 있드랑께, 글쎄 가스레인지 옆에 나무가 시커멓게 타 부렀어요."홀아비들의 수난시대다. 차에 있던 사람들은 아침부터 배꼽을 잡았다. 모임이 많은 연말. 자전거도 좋지만 자나 깨나 가스불 조심. 불조심은 항상 강조해도 결코 지나친 법이 없는가 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 금오도로 떠나는 자전거 여행길. 아침부터 차디찬 바람이 불어댄다. 아마도 올 들어 남도에서 가장 추운 날씨가 찾아온 듯 싶다.
신기항에 도착했다. 여객선에 오르니 비렁길 등반을 떠나는 많은 사람과 차들이 여객선을 가득 메웠다. 비렁길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지는 무려 1년도 안 된다. 그런데 비렁길의 위력은 대단했다. 지금 이곳은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섬의 신비가 살아있는 금오도 비렁길을 오르는 경치도 장관이지만 산위에서 보는 바닷길의 매력은 또 다른 맛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남해바다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막혔던 숨도 확 트인다. 비렁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싶다.
"세상의 시름을 안고 있는자 비렁길로 오라. 절벽 널 바위 비렁길이 그대들을 품에 안아줄 것이니...."이뿐이 아니다. 금오도 비렁길에 버금가는 숨겨진 코스가 있다. 바로 자전거 라이딩 코스다. 자전거로 섬 구석구석을 직접 훑어보는 맛은 섬여행의 묘미를 더한다. 금오도·안도간 자전거 여행길은 약 20km의 거리다.
항아리처럼 생긴 섬, 수항도를 지키고 사는 한 쌍의 노부부여천항에 내려 함구미-유송리-우학리로 향한다. 우학리로 가는 첫길에 유송리 대유마을에 도착한다. 대유마을은 가을, 겨울철 감성돔을 낚는 낚시꾼이 끊이질 않는다. 대물감성돔이 이곳에 틀어 박혀 낚시꾼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송리 바로 앞에는 수항도가 보인다. 섬의 이름이 물을 담는 항아리처럼 생겼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수항도에는 전기도 없다. 지금도 한 노부부가 외로이 섬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빗물을 받아 생활한다. 이들 부부는 면역이 생겨 괜챦지만 일반사람들이 가둬둔 물을 먹으면 바로 설사를 한단다. 또한 가스는 배로 실어 날라 선창에서 지게를 지고 배달해야 한다. 얼마 전 TV에도 나왔는데 꼭 한 번 이들을 만나고 싶다.
이곳 대유마을 코스를 지나면 옥녀봉 가는 등반길과 만난다. 이 재를 넘으면 곧 우학리에 도착한다. 일행들이 미리 점심을 예약해 두었는데 식당이름이 '우리식당'이다. 이곳 주인아줌마의 자랑이 이어진다.
"우리 집은 메운탕과 회가 젤 맛있어요. 육지분들 한번 드셔보셔요. 뭍에서 못 본 맛이 여기 다 있당께요." 볼락구이와 볼락회가 오지고 푸지다. 그냥 뼈째 썰어주는 볼락사시미에 막걸리 한잔 걸치는 이 맛. 캬~~아 하는 감탄사가 연발한다.
이후 식사가 끝나고 미포마을을 지나니 안도대교가 우리를 반긴다. 섬과 섬을 하나로 연결햐여 금오도와 안도는 한 몸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견우와 직녀의 다리'라고도 부른다. 다리위에는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이 한적하다. 한적한 길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분도 끝내준다.
다리를 건너 안도 본동 마을을 지나 안도해수욕장을 오르면 동고지와 오지암 마을이 나온다. 동쪽 끝마을 동고지는 기러기의 머리모양을 닮은 마을이다. 안도(安島)는 지금은 편안할 안(安)를 쓰지만 초창기에는 기러기안(雁)자를 썼다. 섬의 모양이 마치 기러기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이곳 동고지 마을 까지는 왕복 4km다.
이 길을 달려야 비로소 안도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동고지를 돌아 오지암 마을을 지나면 상산동 마을이 나온다. 상산동은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마을이 사라진 동네다. 이곳은 남향이라 마을이 참 아늑하고 따뜻하다. 약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십여 가구 모여 살았으나 하나둘 사람들이 떠나자 마을은 이제 주인 잃은 빈집만 남았다.
종종 마을이 없어지는 시골마을의 이런 쓸쓸한 풍경은 앞으로 더 늘 것이다. 이후 이야포 마을에 당도한다. 산위에서 보는 몽돌해수욕장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참 멋지다. 자전거를 타던 회원들이 내리막 도로를 타고 금세 마을로 내려왔다. 이야포 마을회관 앞에서 잠시휴식을 취한다. 여기서 먹는 간식타임에서 다시 힘을 돋운다.
이제 안도를 떠나 배를 타는 여천마을 까지 되돌아 가야한다. 절반이 조금 못 남은 셈이다.
여천으로 다시 리턴 하는 길에 소유마을을 지나는 길에 밭에서 일하는 한 노부부를 만났다. 강복심(72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밭에서 암소에게 먹일 마른 고구마 순을 모으고 있다. 백구는 자식마냥 이들 부부를 따른다.
"할머니, 섬에 살면 뭐가 가장 좋아요?""공기가 제일 좋아. 그러니까 건강해서 소도 키우고, 농사도 짓고 그 맛에 살제."
할머니는 이곳 금오도 직포마을에서 태어나 소유마을로 시집왔다. 70평생을 이곳에서 산 이들 부부는 옛날에는 배를 부렸다. 배로 자식들을 다 키워 밖으로 출가시키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 영감님과 함께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란다.
자전거는 대유마을 고바위재를 지나 이제 마의 고개를 넘었다. 어느덧 오후 3시 40분경 다시 선착장이 있는 여천마을에 도착했다. 함께 온 일행인 등반 팀들이 뒤풀이를 하고 있다. 자연산 회와 파전에다 막걸리 판이 벌어졌다.
금오도 여행의 별미는 아마 맛이 아닐까? 시장이 반찬이지만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남도 음식맛이 으뜸이다. 정말 꿀맛이 따로 없다.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위로와 덕담이 추위와 피곤을 잊게 한다. 어느덧 금오도 막걸리에 취해 금오도의 추억이 발갛게 익어간다.
덧붙이는 글 | 전라도뉴스와 넷통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