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부석사 앞에서 소백산을 조망하다
아침 기온이 상당히 낮다. 영하 9도까지 내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산내들내 길 찾아' 팀은 부석사로 향한다. 이번 걷기의 목표는 소백산 자락길 제11, 12구간이다.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 앞에서 시작, 순흥면 배점리 삼괴정에서 끝난다. 이 길은 과수원길, 올망길, 수변길, 도란길, 서낭당길, 배점길로 나눠진다. 배점길을 제외하면 모두 정겨운 우리말로 자락길의 특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물가로 올망졸망 연결되는 과수원길을 따라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보면 서낭당을 지나 배점마을까지 가게 된다.
부석사 주차장에는 이른 아침이라 차와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자락길 탐사를 시작한다. 우선 북지리 갓띠를 지나 임곡리의 중심마을인 숲실까지 갈 계획이다. 나는 잠시 봉황산으로 눈을 돌려 부석사 쪽을 바라본다. 부석사가 숲속에 자리 잡고 있어 그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다시 눈을 서남쪽으로 돌린다. 부석, 단산, 순흥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소백의 능선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국망봉과 비로봉 정상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길은 부석면 소재지와 단산면 소재지로 이어진다. 우리는 송두들(松皐) 마을로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갓띠 마을로 향했다. 갓띠라는 마을 이름은 뒷산이 갓의 띠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어 생겨났다. 실제로 갓띠는 마구령에서 갈곶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명당이다. 소위 북쪽의 주산을 좌청룡 우백호가 좌우에서 감싸고, 앞으로는 조그만 고개가 있어 마을의 복이나 좋은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돼 있다.
봉황산 자락에 포근하게 들어앉은 갓띠 마을마을로 들어가는 고갯마루에는 소나무가 무성하고, 한쪽으로 장승 두 기가 서 있다. 갓띠대장군과 갓띠여장군이다. 여장군의 가슴을 특히 풍성하게 만들어 놓았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낙화암천을 따라 오른쪽으로 나 있다. 이 개울은 갈곶산에서 발원, 부석면을 지난 다음 봉화읍 문단리에서 내성천과 합류한다. 갓띠마을은 행정리로는 북지(北枝)1리다. 마을 중심에는 마을회관과 노인정이 있다. 이곳에는 태극기와 대한노인회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대한노인회, 대단한 단체다.
마을회관 옆에는 무지막지한 돌덩이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는 1998년 10월에 세운 '북지지구 전기반사업 준공기념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혹시 전기반(田基盤) 사업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간단히 설명해야겠다. 전기반이라는 말보다는 밭기반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된다. 밭기반 사업이란, 밭의 형태는 그대로 둔 채 도로와 농로를 내고, 고랑을 정비하고, 배수시설을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그 때문인지 마을 주변이 잘 정돈된 느낌이다.
이제 우리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서쪽의 언덕으로 올라간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언덕 위에는 역시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일종의 방풍림이고 비보 차원의 수구막이다. 이곳에서 마을을 돌아봤다. 정말 명당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양지바르고 포근해 보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농토가 조금 적다는 것. 고개를 넘으니 비교적 너른 들판과 소백의 준령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들을 지나 한밤실과 숲실 마을로 갈 것이다.
마을 이름이 사그레이가 아니라 사그랭이다
추수를 한 들판은 텅 비어 있다. 내년 과수농사를 위해 지주대나 부목을 설치해 놓은 게 보인다. 한참을 내려가니 '부석사 아래 단풍길 펜션'이라는 간판도 보인다. 이 지역이 임곡2리 한밤실이다. 주변에 임곡보건진료소도 있다. 2009년 11월 27일에 준공됐다고 하니 2년이 조금 넘은 셈이다. 그래선지 아주 깨끗해 보이고, 주변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면 935번 지방도로와 만난다. 이 도로가 단양 영춘과 영주 부석을 잇는 영부로다.
우리는 다시 영부로 117번길을 따라 곰마와 숲실 쪽으로 향한다. 한밤실, 숲실, 곰마가 임곡리의 중심 마을들이다. 한밤실에서 다시 고개를 하나 넘으면 곰마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숲실이 나온다. 숲실 역시 사방에 낮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풍수지리상 아늑하고 포근한 마을이다. 옛날 이곳은 임곡리의 중심이었지만 한밤실 쪽으로 도로가 나면서 한밤실이 더 커지게 됐다.
숲실에서 우리는 고개를 넘어 표지판을 따라 사그레이 마을로 향한다. 고갯마루에서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숲실과 한밤실 그리고 갈곶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 넘어 처음 만나는 것은 당남저수지다. 이름으로 보아서는 저수지 북쪽에 서낭당이 있었을 것 같다. 아주 조그만 농업용 저수지로 수량도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부석저수지 아래 소천리 사그레이 마을로 들어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그레이가 아니고 사그랭이다.
사그랭이는 한자로 사문(沙文)이라 쓰며, 모래밭에 글쟁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옛날 학식이 뛰어난 선비 김희소(金熙紹)가 경치가 좋은 산천을 찾아다니다 이곳에 왔다. 그는 이 동네에 있는 폭포에서 글을 읽고, 모래밭에 글을 썼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글쟁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사글쟁이가 사그랭이로 변했다는 것. 나중에 김희소라는 선비를 찾아보니, 의성김씨로 영남지방에 살던 남인계 문인이다. 그의 문집으로는 1874년 목판본으로 발행된 <문천집(文泉集)>이 있다.
양지말에 오니 사람을 좀 만날 수 있었네
우리는 부석저수지 아래로 해서 다시 고개를 넘어 노곡2리 양지마을로 향한다. 마을 입구에 '산 좋고 인심 좋은 양지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소백산 자개봉(868m)에서 이어진 용수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아 양지말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좀 만날 수 있었다. 넉살 좋은 김완수 회원이 한 아주머니를 누님 대하듯 한다. 그녀는 겨울 농한기라 마실을 나간다고 한다.
우리는 원래 양지말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다음 목적지인 원티까지 가기로 한다. 양지말 주변도 온통 과수원이다. 그런데 이곳 과수원에서는 두 가지 색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마을 사람들이 부지런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러는 건지, 사과나무 주위로 벌써 거름을 뿌려 놓았다. 검은 부엽토 비슷한 게 정말 걸게 생겼다. 사과라는 게 거름을 먹고 자라는 과일인지라, 거름을 많이 할수록 맛이 좋다고 한다.
근데 우리는 이상한 풍경을 목격한다. 이상하게도 나뭇가지에 물병이나 돌덩이를 걸어 놓은 것. 그 무게 때문인지, 가는 가지들이 축축 늘어져 있다. 나뭇가지를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이유가 뭘까? 알고 보니 가지를 아래로 처지게 만들어 가을에 사과를 딸 때 편하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그냥 내버려 두면 가지가 하늘로 올라가 사다리나 A형 지지대를 놓고 사과를 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안전성과 경제성을 위한 조치였다. 필요가 아이디어를 낳고, 아이디어가 발명을 하게 한다더니 여기서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원티를 원통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참 나 이제 길은 산속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는 정말 마을을 경유하는 농로를 따라 길이 이어졌는데, 이제부터 자락길 답사는 등산 개념이다. 자개봉에서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능선길이 바로 우리가 지나온 부석면과 우리가 갈 단산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길도 희미하고 자락길 표지판도 정확하지 않다. 표지기가 잘못 걸려 있어 원티 넘어가는 도중 잠시 길을 잃기도 했다. 제11코스 중에서 개선해야 할 것이 많은 구간이다.
표지판에는 원통이라고 쓰여 있지만 현지인들은 원티라고 부른다. 원티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뒤의 티자는 고개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충청도와 경상도에서는 령(嶺)이라는 한자 표현보다는 티, 치, 재라는 순우리말을 사용한다. 은티, 지름티, 고치, 미내치 등이 대표적이다. 원티에는 현재 빈집들만 몇 채 보일 뿐이다. 산속이라 농토도 별로 없고, 과수원 등 밭농사 흔적만 여기저기 보인다.
산속 저수지, 둑 높이기 하는 이유가 뭘까?원티에서 다시 고개를 넘으면 단산 저수지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단산 저수지 둑에서 좌석리 쪽으로 800m쯤 올라간 지점의 골짜기를 따라 내려간다. 길에 이르러 저수지를 보니 물이 많이 빠져 있다. 빠져 있다기보다는 지난가을 가뭄으로 말라있는 것. 옛날에는 저수지를 보면 마음이 편안했는데, 어째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저수지가 농토에 물을 대는 목적 외에,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둑 높이기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저수지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임무를 완전하게 수행하고 있다. 저수율이 항상 60%를 웃돌기 때문에 농업용수가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둑 높이기라는 이름의 사업이 한창이다. 나중에 강과 하천에 수심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란다. 운하를 할 것도 아닌데, 수심은 왜 높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농촌 사람들 역시 둑 높이기라는 이름으로 마을에 몇 십억 원씩 나온다고 하니 반대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또 한국농어촌공사는 공사가 완료되면 몇 년, 아니 몇 십 년 일거리가 생긴다고 하니 마을 주민들이 반대할 리 만무하다. 만약 한국농어촌공사가 순수하게 농업기반 시설을 만들고, 농어업 생산기반을 조성하고, 농어촌 지역을 개발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라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새만금 사업단을 운영하고, 천수만 사업단을 만들고, 영산강 하굿둑 구조개선사업, 서산 간척지 재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농어업의 생산성을 늘리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산 속 저수지에 둑 높이기 하는 이유가 뭡니껴?"라고 묻던 마을 주민의 말이 귓전을 울린다.
덧붙이는 글 | 12월 10일(土) 소백산 자락길 제11, 12코스를 답사했다. 첫 번째 기사이지만, 소백산 자락길 전체로는 열 번째 기사다. 앞으로 소백산 자락길 제11, 12코스에 대한 기사를 3회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