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브랜드에 의존하지 말고 자기 브랜드를 키우세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정보공개청구는 저의 브랜드가 됐습니다. '나는 꼼수다'에서도 저에게 선거관리위원회 사이트와 관련한 정보공개청구를 문의하기도 했죠. '그 선배는 국회에 출입했어'보다는 '그 선배는 세금분야 전문기자였어'라고 기억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했는데 어떤 기사를 썼는지 사람들이 몰라준 채 사라지는 건 기자로서 불행한 일인 것 같습니다."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빅유즈(@biguse)'라는 아이디(ID)로 유명한 박대용(38) 춘천MBC 기자가 후배들에게 하고 싶다는 말이다. 자신의 이름 '대(big) 용(use)'을 영문 아이디로 만든 박 기자는 5만 명 가까운 팔로어(친구)를 가진, 대표적 소셔널리스트(소셜+저널리스트)의 한 사람이다.
약 2년 반 전 동료 기자를 통해 트위터를 알게 된 뒤 스마트폰을 사면서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취재와 관련한 정보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트위터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강원도에서 배추 파동이 났을 때 배추 농사짓는 사람을 찾는 일이 막막했던 박 기자는 트위터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단 10분 만에 적합한 취재원과 연결된 일이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안에 대해 (보도의 방향을) 판단해야 할 때도 유용합니다. 반값등록금 집회 때 경찰이 연행한 여대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브래지어를 벗도록 해 논란이 일었죠. 당시 한 트위터 이용자가 지난 2009년 국회에서 경찰청 경무국장이 '전 세계적으로 브래지어를 이용해 자살한 사례가 없어 자살방지를 위해 압수하는 물품 목록에서 제외했다'고 발언한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SNS 사용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구글이고 네이버인 것이죠."
트위터 이용자 1900명이 참여한 '희망승합차' 구입 프로젝트
박 기자가 독립 저널리스트인 '미디어몽구'와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주도한 '희망승합차' 구입 프로젝트는 많은 트위터 사용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미디어몽구의 부탁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갔습니다. 직접 가서 보니, 이건 정말 함께 분노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할머니들을 돕기로 했죠. 그래서 트위터에 '할머니들이 이동하시는 데 도움이 될 희망승합차 구입을 위해 돈을 모으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7일까지 1900명이 약 5400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좋은 차를 살 수 있었어요. 저도 이렇게 많이 모일 줄은 몰랐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어 온 수요정기집회가 1000회 째 되는 14일, 할머니들에게 희망승합차가 선물될 예정이다. 이 차에는 성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도 기록됐다. 박 기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할머니들이 알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금 낸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자동차에 올린 것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할 때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지난 8일 <단비뉴스>가 박 기자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의 전국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부산일보 노조의 투쟁을 기록한 영상물을 편집하고 있었다.
현재 부산일보 노조는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소유의 정수재단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며 사장실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다. 박 기자는 직접 카메라로 촬영하거나 편집할 필요가 없는 취재기자지만 입사 초부터 촬영과 편집에도 관심을 갖고 직접 뛰어다녔다고 한다.
"원래부터 1인 미디어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진 찍는 것도 좋아했고요. 입사할 때 최종면접에서 '일인다역을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이를 지키기 위해 5년 정도 꾸준히 촬영, 편집 에 대해 언론재단 등에서 연수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런 노력으로 상당한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지난 2006년 강원도 인제에 큰 수해가 났을 때는 도로가 끊긴 마을에 혼자 헤엄을 쳐서 들어가 '피해지역 24시'를 촬영했다. 이 영상물은 MBC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메인뉴스로 크게 보도됐다. 그는 비밀리에 잠입취재가 필요한 경우 등에도 이 같은 1인 미디어 시스템의 장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인력이 부족한 지역 방송국에서 근무했기에 더욱 유용했다고.
"SNS 사용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구글이고 네이버죠"
지난 2001년에 춘천MBC에 입사한 박 기자는 원래 춘천에 연고가 없었다. 대구 출신이고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출신인데 기자 시험을 치다 보니 춘천MBC에 합격한 것이다. 그래서 입사 초기에는 '서울로 가야하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춘천에서 가족과 함께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서울에 와 있을 때 불편함을 느낍니다. 처음엔 춘천에 연고가 없는 것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인연이 없는 것이 기사를 제대로 쓰는데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연고가 있다면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 인연 때문에 보도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죠. 보도를 위해 필요한 자료는 정보공개청구와 SNS를 활용해서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박 기자는 정보공개청구 분야에서도 알아주는 전문가다. 정보공개청구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의 업무 내용에 대해 국민들이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지금까지 현직 언론인 중 가장 많은 총 3306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한 그는 이를 통해 관용차 주유비 지출내역과 구제역 매립지 등에 대한 기사를 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각 언론사 수습기자 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연수프로그램에서 정보공개청구 관련 강의도 한다.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기자들이 취재원과의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앞으로 모든 기자들이 정보공개청구와 SNS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성언론 중에서 SNS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앞으로 신문방송은 SNS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후배들이 저에게 블로그와 트위터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냐고 묻는데, 저는 블로그와 트위터를 둘 다 하라고 말합니다. 트위터는 확산속도를 높이는 액셀레이터 역할을 하고, 블로그는 콘텐츠를 담는 베이스 역할을 할 수 있죠. 신문방송들은 SNS를 경쟁관계로 볼 게 아니라 협업을 해야 합니다."
박 기자는 이런 맥락에서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SNS를 심의하려고 하는 데 대해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청소년 유해물 등 상식을 벗어난 콘텐츠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하겠지만 정치사회적 발언에 대해 심의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SNS의 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쟁점에 대해 객관적 보도를 해야 할 기자가 트위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히고 사회적 운동을 기획, 주도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박 기자는 그러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을 기자가 한다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희망승합차를 마련하는 일이나 정수장 사고로 식수난을 겪던 구미 주민들에게 생수를 전달한 일처럼 제가 직접 움직여야겠다는 동인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비판하는 분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제가 하나의 매개체가 됐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쓰러진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일으켜 세우려는 천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회사에서도 그의 적극적인 대외 활동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 춘천MBC의 인터넷 기사 조회 건수는 보통 100건 미만인데, 박 기자가 트위터에 연계한 기사는 조회수가 6500건을 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도 트위터나 강의 등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나누면서 장기적으로 책 저술이나 사회사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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