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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진영, 종편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긴급 집담회가 14일 오후 7시 신촌의 카페 위지안에서 있었다.
'진보진영, 종편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긴급 집담회가 14일 오후 7시 신촌의 카페 위지안에서 있었다. ⓒ 이현진

시장의 돈 많은 상인이 거대한 슈퍼마켓을 차렸다. 그 상인이 부당한 방식으로 물건을 팔아온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슈퍼마켓의 독과점이 가져올 해악이 우려스럽다. 그래서 급기야 그런 나쁜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식부터 문제 삼기로 했다. 그런데 누구는 슈퍼마켓의 악덕함을 모르고, 누구는 알면서도 일하며, 이 가운데는 생계의 문제와 직결된 '밥벌이'라는 비난하기 애매한 지점도 존재한다. 이들 모두는 비난받아 마땅한가? 그리고 이것은 슈퍼마켓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인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개국 2주 만에 이른바 '종편 참여'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이슈가 됐다. 종편 개국 전부터 지상파에서 옮겨간 언론인이나 종편에 출연을 결정한 연예인에 '종편행'이라는 수식을 붙이기 시작해, 공지영 작가가 TV조선에 출연한 김연아를 비난하면서 논란이 좀 더 가시화됐으며, 트위터 상에서는 채널A에 출연 결정을 한 허지웅 칼럼니스트가 집중 공격을 당했다. 특히 그는 평소 진보적인 성향으로 정치적 발언을 해왔기 때문에 그 죄가 가중(?)됐다. 트위터에는 "허지웅을 십자가에 매달에 공개 화형시키자"는 원색적인 비난도 등장했으며,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그에게 '부역자'라는 오명을 붙였다. 이것이 진보진영의 종편 참여에 대한 집담회를 열어야 했던 최근의 상황이다.

'진보진영 종편 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14일 오후 7시 신촌의 카페 위지안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트위터에서 공방을 주고받던 고재열·허지웅은 물론 김진혁 EBS PD·김완 미디어스 기자·원용진 문화연대 집행위원장·한윤형 자유기고가 등이 참석했고, 전규찬 언론연대 운영위원 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사회로 토론이 진행됐다.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기획을 맡은 콘서트의 점검회의 때문에 자신의 발언 후에 자리를 떠났다.

'우리 편' 논리에 따른 종편 출연 비난, 타당한가?

일단, 불법 편법으로 출범한 종편의 부당함과 미디어 시장에 끼칠 해악을 설명하는 것은 이 토론회에서 별 의미가 없다. 적어도 토론 참석자는 물론, 진보진영에서는 종편의 문제점에 대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편' 안에서의 싸움이다.

김완 기자는 "'안티 종편'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해나가기 위해 비판 등의 과한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떻게 우리 편이 출연할 수 있냐'는 관점에서의 비난이 종편 문제를 위한 해결 방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편' 논리를 극대화시킨 예로 <나는 꼼수다>의 파시즘적인 성격을 들며, "종편 출연 논란보다 먼저 (막무가내식 '우리 편' 논리에 대한) 우리 안의 반성이 먼저 돼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거 '안티조선운동'을 언급한 그는 "그때는 '조중동' 중심논리에 대항하는 진지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진영이 충분히 구축돼 있다"며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타적인 '우리 편' 논리에 따라, '지상파는 우리 편을 사장으로 앉히면 괜찮다'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적군인 종편을 때려죽이자는 접근으로는 이른바 '안티 종편' 운동이 힘들다는 의견이다.

고재열의 허지웅 비난? "종편 출연 자체가 아니라 태도 문제다"

 진보진영의 종편 참여에 대한 논란은 평소 진보적인 성향으로 정치적 발언을 해왔던 허지웅 칼럼니스트가 최근 채널A의 영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불거졌다.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온라인 상에서 허지웅을 거세게 비판했다. 김진혁 EBS PD는 "허지웅에 쏟아졌던 인격모독적인 발언은 잘못된 것이지만, 종편 출연자를 비난하는 것을 테러리즘으로 정의하면 종편에 대한 최초의 비판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전복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보진영의 종편 참여에 대한 논란은 평소 진보적인 성향으로 정치적 발언을 해왔던 허지웅 칼럼니스트가 최근 채널A의 영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불거졌다.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온라인 상에서 허지웅을 거세게 비판했다. 김진혁 EBS PD는 "허지웅에 쏟아졌던 인격모독적인 발언은 잘못된 것이지만, 종편 출연자를 비난하는 것을 테러리즘으로 정의하면 종편에 대한 최초의 비판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전복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 이현진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무엇보다, 자신이 허지웅을 격하게 비난한 일이 '종편 출연' 자체가 아닌 '애티튜드(태도)'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찌질한 방송에 누가 출연하든 말든 관심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그는 "허지웅을 중심으로 의견의 흐름이 종편 출연을 비판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쪽으로 대세를 이루는 것에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고 해명했다.

고재열 기자의 해법은 종편 출연자를 크게 연예인·지식인·언론인 등으로 나누고, 비난의 층위를 다르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연예인은 모르고 출연했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층위로 접근해야 하지만, 언론인의 출연에는 엄격한 기준을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군사정권 때 '동아특위'로 내몰린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동아일보 기자들과 80년대 해직 언론인들이 종편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음에도 젊은 언론인들이 쉽게 종편에 출연하는 상황에 대해 "숟가락을 얹는 것"이라고 질타한 그는 이들의 출연을 쉽게 용인하는 것은 종편의 존재를 인정하고 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종편에 출연하는 진보 좌파 인사를 '종편은 보수 언론과 다르다'는 알리바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인질로 비유했다. 때문에 김연아나 허지웅 칼럼니스트에 대한 비난은 종편의 알리바이를 차단하고, '안티 종편'을 위한 텐션(긴장감) 조성에 일조했다는 것. 고재열 기자는 종편의 낮은 시청률을 그에 따른 유의미한 결과로 해석했다. 끝으로 허지웅 칼럼니스트에게는 "채널A에 출연을 철회했다가 다시 출연하기로 했다는데, 말끔하게 끊어줬으면 더 멋진 모습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언론계 선배'로서의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에 허지웅 칼럼니스트는 "이런 문제를 '멋있고, 멋있지 않고'로 평가를 내리며 논제에 참여하는 멘탈(정신)은 어떤 것인가 끊임없이 회의가 든다"고 일침을 가하며, 윤리적인 논리로 접근해 개인의 욕망을 무시하고 종편 출연자를 부역자로 낙인찍는 상황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과거 운동권부터 결정된, 디테일한 팩트를 뭉그러뜨리면서도 거악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대의만 내세운 논의과정이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종편 출연을 비판하는 본인들은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자신의 선의를 증명하기 위해 (종편 출연) 철회를 강요받는 상황이 테러리즘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어디까지 비난하고, 비난하지 말아야 하는가?

김진혁PD는 "종편에 출연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종편 출연자에 자주 빗대어 지는 친일파의 문제처럼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 역시 가이드라인이 있을 수 없다는 것. 방송사 PD로서 그는 '슈퍼갑' 행세를 하는 지상파 대신 종편에 갈 수밖에 없는 외주제작사의 안타까운 상황을 예로 들면서도 "생계에 무리가 없는데도 종편행을 택한 것은 비판할 수 있다"고 구분 지었다.

<안티조선 운동사>의 저자인 한윤형 자유기고가 역시 "종편 참여가 안 된다면, 사실상 조중동의 모든 계열사의 매체를 다 거부해야 한다"며 이번 논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학술 활동을 하는 교수가 종편에 참여하는 것과 종편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기회가 되는 사람들의 개별적 상황에 대한 비판의 적절함이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윤형은 "(종편 출연자 비난 등의 근간이 되는) 엄격하고 과도한 윤리적 원칙대로라면 정치적 발언을 이끌어 내기 힘들다"며, "김연아가 삼성 광고를 한 것이나, 대기업에 다니면서 진보진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비판까지 생길 분위기"라고 우려했다.

문화연대의 집행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원용진 서강대학교 교수는 좀 더 큰 맥락에서 시민사회운동의 방식을 제안했다. "분명 종편을 반대해야 할 당위가 있다"고 주장한 그는 "시민들이 먼저 움직이고, 사회단체가 뒷받침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생계 직결된 사람은?" VS "종편 말고도 밥벌이 할 데 있잖아"

이날 토론회 참석자 중, 지방에서 기자와 PD로 일하다가 다른 방송사를 알아보고 있다는 두 예비 언론인은 "우리에게 종편은 기회인데, 언론인으로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실질적 고민을 털어놨다. 종편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출연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바로 생계와 직결된 상황. '출연하는가, 안 하는가' '비난해야 하는가, 아닌가'의 이분법 안에서는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다.

이날 토론자 중 유일하게 종편에 출연하고 있는 허지웅 칼럼니스트는 "윤리적 층위에서 개인의 선택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이끄는 단죄 방식이 가장 문제"라며 "'연예인은 잘 모르니까 상관없고, 지식인은 출연하면 안 된다'는 논리에서 지식인의 범위는 판단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석자 중 어떤 이는 "종편이 아닌 다른 데에서 밥벌이를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에 한윤형 자유기고가는 "지사형 자세로, 다른 곳에서의 밥벌이만 인정한다는 것은 판타지"라며 "종편 출연을 거부하는 소신이 있는 사람은 존중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티조선운동' 초반에 조선일보에 글을 기고한 사람들을 폭로하던 부정적인 방식이 아닌, 운동하는 사람을 존경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접근을 제안한 것이다. 허지웅 칼럼니스트 역시 "소위 '개념 연예인'을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그 논리로 종편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비판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김완 기자는 언론인이 할 수 있는 운동으로써 "종편의 편법적인 출발이나 부당한 광고 영업 등 약탈적인 방법을 폭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제안하며 "이를 통해 (슈퍼갑과 을인) 지상파와 외주제작사와의 관계 등을 정상화할 수 있다면 종편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예상했던 것처럼, 종편 출연과 그에 대한 비난 여부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더군다나 논란의 중심에 있던 고재열 기자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반쪽짜리 토론이 된 것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었다. '종편=절대악', 고로 '종편 출연=죄'라는 부역자 논리는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이날 확인한 것처럼 종편 출연에 대한 기준은 정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연예인·지식인·언론인으로 비난의 층위를 나눈다는 판단도 모호해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서 '종편 출연이 잘못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종편이 편법으로 만들어진 불편한 방송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얼마나 큰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종편 참여#허지웅#고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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