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차별없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성소수자 공동행동'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의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심의를 하루 앞두고, 한 명의 성소수자로서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공개편지를 드립니다.
어제 14일 오후 2시 성소수자들이 서울시 의회 점거 농성에 들어갔지요. 위원장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그 이유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중 '차별금지'를 명시한 조항에 열거된 차별 사유에서 '성적지향', '임신출산'이 삭제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직접 농성에까지 나선 것은 역사상 처음있는 일입니다. 그만큼 성소수자들은 이 문제를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문제가 성소수자들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차별이 용인되고, 권리가 유보될 수도 있다는 선례가 남는다면 똑같은 논리가 언제든지 다른 누군가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아동권리위원회'가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 정부에 '성적지향을 명시하여 소수자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조항들을 입법화 할 것'을 요구한 이유도 차별이 이루어지는 사유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어떤 상황에서도 '보편적 인권'의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는 이 문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 현장에서 끔찍한 폭력과 차별에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성소수자, 비혼모 청소년들에게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위원장님을 비롯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분들이 이번 결정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책임감을 가져주시기를 바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정'이라는 명분으로 가해지는 폭력들을 아시나요?
14일 오전 11시에는 '성적지향과 임신출산에 따른 차별사례 보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보고회에서 상영된 짧은 영상에는 한 청소년의 충격적인 증언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청소년의 친구는 중학교 때 친구들에 의해 아웃팅(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 알려지는 것)을 당한 이후 남학생들로부터 '교정강간'이라 일컬어지는 성폭행을 당하고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 결국 자살을 했습니다.
그 후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알려질까 봐 매일 긴장 속에 살아야 했던 이 청소년은 정신과에 상담을 요청했지만 정신과에서는 당시 시력이 나빠지고 있던 그녀에게 '네가 타락해서 병에 걸린 것'이라며 기도원을 소개해주었고, 결국 이 청소년 역시 기도원에서 '성교정치료'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성폭력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어서 직접 자신의 사례를 발표한 다른 청소년은 중학교 때 친구들로부터 아웃팅을 당해 매일같이 벌어지는 혐오와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교실에 오면 체육복이 찢겨져 있고, 책상에는 '에이즈 걸려서 죽어라 게이 새끼' 같은 문구들이 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혐오 발언과 신체적 폭행 또한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이 청소년은 용기를 내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으나 선생님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그러게 니가 안 들키게 잘 했어야지"하는 책망과 외면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퇴를 했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군가가 체육복이 찢어지고, 친구들이 일부러 엎은 급식에 교복이 더러워진 채로 나타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일부 여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이반검열'이라 불리는 '색출작업'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여성스럽지 못하거나', 레즈비언이라고 '소문이 난' 학생으로 지목을 당하면 이들은 매일같이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교사의 일상적인 감시와 폭언, '교화'를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성경책 쓰기' 등의 체벌에 시달려야 합니다. 학교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지목되어 교사에게 차별을 받는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친구들로부터도 소외됩니다. 결국 이들도 자퇴나 자살로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현실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이와 같은 사실들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과 폭력에 내몰려 자살을 해도 '성적비관'으로 무마되거나 자살 사실을 알리는 것 자체가 아예 금기시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다 자퇴를 하게 되는 경우에도, 이들은 그저 '부적응 학생'이나 '문제학생'으로 남을 뿐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교육현장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들을 끊임없이 감추고 외면하며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이성애 규범 교육'의 현장으로 스스로를 포장해 왔습니다. 고통받는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아가면서 말이지요.
위원장님께서는 이와 같은 현실을 계속해서 덮어두기만 하시렵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성찰하고 긍정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자기 자신 또는 누군가를 혐오하고 부인하는 데에 익숙해지는 현실, 모두의 인권은 평등하며 소중하다고 가르치면서도 누군가에 대해서는 폭력과 차별이 용인될 수도 있음을 학교 현장에서부터 체득하게 되는 현실을 말입니다.
해외 여러 나라 '성소수자 학생 차별금지' 명문화영상 인터뷰를 통해 힘들게 자신의 사례를 증언했던 청소년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반성폭력 교육과 올바른 성지식을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성소수자를 포용해 줄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교사들의 인식도 바뀌기를 바란다. 나는 '괜찮다', '너는 잘못을 한 게 아니고, 이상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답했습니다. 이 청소년에게 학교 현장에서 단 한 명이라도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너 자신을 사랑해도 돼"라고 말해주었다면,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교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 청소년은 좀 더 일찍 자신을 긍정하고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학교는 사회로부터 철저히 분리된 성역이 아닙니다. 청소년들은 학교 안과 밖에서 사회를 마주하며 그 속에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의 문제에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무리 가리고 감추려고 해도 현실이 가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년들도 엄연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성적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적 정체성,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와 책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할 일은 그것을 감추고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민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청소년들도 함께 고민을 나눌 사람들을 만나 자신에 대해서 보다 편하게 성찰하고, 자신이 지닌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해야 합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고정된 성역할과 이성애 규범만을 강조하거나 순결을 강요하는 대신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와 책임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등 13개 주와 워싱턴 D.C에서는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문화하고 학교의 의무과 구제수단 등을 담은 교육관련법을 제정하였고 영국의 평등법에서도 성소수자 학생에게 포용적 학교 환경을 조성할 교육당국의 의무를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팸플릿을 만들고 세미나와 워크샵 등을 통해 꾸준히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 중 하나입니다. 또한 뉴질랜드에서는 출산을 한 10대 청소년들을 위해 보육시설을 갖춘 학교를 만들어 학생들이 보육 전문가에게 아이를 맡기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차별 없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도 현실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꿈에 불과한 것일까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에는 학교에서부터 제대로 인권이 존중되기를 바라는 9만7000여 명 서울 시민들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비록 '시민'으로서 조례 제정 청원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이 조례의 제정을 바라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 서명을 받았던 수많은 청소년들의 땀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부디 이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It gets better", 아직 희망을 걸어봅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아버지의 권총으로 자살한 13세의 청소년 어셔 브라운과 친구에 의해 자신의 동성친구와 함께 있는 장면이 비디오로 촬영되어 공개된 후 다리에서 뛰어내린 타일러 클레멘티의 사건을 겪으며 'It gets better´라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괜찮아', '너의 문제가 아니야', '앞으로는 더 나아질 수 있을거야' 라는 메세지를 영상으로 전했고, 결국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까지 이 캠페인에 동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브로드웨이의 스타들이 함께 부른 노래의 가사를 전합니다. 서울시 의회가 직접 이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친구야혼자라고 느껴질 때나 세상이 증오로 가득 차 있다고 느낄 때, 끝이 아니야.혼자 밖에 서 있는 게 아니야. 아직 축하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걸. 위를 올려다 봐. 하늘이 곧 맑아질 테니까. 지금보다, 여기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있어. 위를 올려다 봐. 더 나은 날이 여기 있으니까. 내일은 눈부신 해가 빛날 거야. 점점 나아질 거야. 괴로움은 적어질 거야.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다른 길이 있으니까. 점점 나아질 거야. 괴로움은 적어질 거야. 그러니까 당당하게 맞서 싸워. 그 날을 보기 위해 살아. 그래, 그 날을 보기 위해 사는 거야. 그 날을 보기 위해 살면 돼. 친구야우리도 너처럼 느끼곤 했어. 끝이라곤 보이지 않고 매일 두려워했어. 그저 스스로를 지켜내. 스스로를 찾으면 길이 보일 거야. 포기하지마.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넌 빛날 수 있어. 이제 네가 무대 위에 올라갈 시간이야. 포기하지마.왜냐하면 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거든. 넌 그저 페이지를 넘기기만 하면 돼. 아직 만나게 될 친구들이 있어. 불러야 할 노래들이 있어. 아름다운 일몰이 있어. 이겨낼 거야.- 'It gets better'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김나영씨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