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축산농가를 강타한 구제역은 우리의 구제역 방역시스템을 돌아봄과 동시에 외국의 구제역 대응방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0년 기준 아시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유럽, 중남미에서는 39개 국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고 이동제한, 살처분, 백신접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대응한 바 있었다.
가까운 일본 미야자키현은 구제역 발생 4개월만에 조기 종식한 바 있다. 이에 일본과 한국의 구제역 대응활동을 비교해보고 구제역 대응 행정체계와 인력 등에 대한 다른 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지난 5월에 일본 미야자키현에서 발간된 <미야자키현 구제역 방역 매뉴얼>(헤세이 23년 4월판)을 바탕으로 구제역 방역조치를 살펴본다.
세부적인 원칙 준수하는 일본 미야자키현 '방역대책'
일본 규슈 남부에 위치한 미야자키현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지난 2010년 4월 20일. 미야자키현에서만 1339가구에서 소, 돼지 29만 마리가 살처분 되었고 2350억 엔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발생 후 약 4개월만인 2010년 7월 27일에 구제역이 조기 종식되었고, 발생지역은 미야자키현에만 국한되어 전국으로 확산돼 초등대응에 실패한 한국과는 다르다.
일본이 구제역 확산을 막은 것은 신속한 신고와 구체적인 방역시스템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살처분 방역작업과 동원된 인력에 대한 철저한 방역조치는 우리와 확연히 다른 점으로 지적된다.
미야자키현에서 사전방역은 대상에 따라 역할이 분담되어 있다. 현을 비롯한 시정촌(일본의 지방 자치 제도의 기초 자치 단체를 이르는 말), 농가, 축산관계차량과 렌더링업자의 대응방법이 세분화 되어 있고 국외 또는 국내의 발생상황에 따른 단계별 방역대응체계가 마련되어 있다. 특히 신속하고 철저한 방역조치를 수행하기 위한 사전준비에 있어 현과 관계기관이 세부적인 역할을 분담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현에서는 방역종사자의 확보(수의사, 현장팀 등)와 방역자재 확보 및 비축, 매각후보지와 소독포인트 등을 사전섭외 해두고 시정촌에서는 매립지 선정에 대한 주민설명과 동의, 소독포인트 운영지원 등 세부적인 현장지원과 교육을 맡는다. 축산관계단체는 시정촌의 역할을 보좌하는 역할을 '사전에' 갖추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일본에는 대규모 축산농가가 많지 않고 분뇨처리 시스템이 분산돼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매뉴얼에는 '이동제한 구역 내 사축사체 및 배설물 이동특례'에 대한 내용으로 이동신청과 가축방역원에 의한 확인, 사체의 일시보관을 위한 시설(스톡포인트)을 지정해 구제역 바이러스 이동을 막기 위한 매뉴얼도 상세히 기록했다. 방역조치를 위한 신고에서 종료까지 종합적인 방역이 가능하도록 만든 타임테이블도 눈에 띈다.
일본과 한국 모두 구제역 긴급행동지침(SOP)이 마련되어 있지만 일본은 한국과 달리 지침이 구체적일 뿐 아니라 이를 정확히 준수했다는 것이 큰 차이점으로 꼽힌다. 일본은 '매뉴얼 사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서두르기보다 미리 정해놓은 매뉴얼에 따라 일을 진행하는 사회적 특징이 있다. 그래서 살처분과 방역작업에 관한 가축의 살처분은 가스, 전기, 약물을 이용한 방법으로 안락사 시킨 뒤 매몰했고, 매몰지 확보를 위해 지역주민의 동의를 얻는 과정들을 충실히 이행했다. 일본은 도살처분한 가축을 묻을 매몰지가 확보되지 않으면 함부로 도살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 초기 매몰지 확보에 대응이 늦어져 애를 먹기도 했지만 지하수나 주변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등의 조건을 엄격히 지켜 침출수나 지하수 오염 등의 문제가 후에 발생했다는 보고는 들리지 않았다.
현 중심의 행정체계로 작동... 각 지역 상황에 맞게 초등대응 가능
<미야자키현 구제역 방역 매뉴얼>은 구제역에 대한 방역의 기본방침과 조직체제, 방역대책과 조치에 대해 지역에서 가동 가능한 형태로 '매뉴얼화'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이 구제역 긴급행동지침(SOP) 따로 지역 백서 따로 발간되는 것과는 다르다.
이 매뉴얼에 따르면 한국이 중앙정부 중심 행정체계로 작동하는 것에 반해 현 중심의 행정체계로 작동된다. 현의 지사는 우리나라 농림수산식품부급 본부장의 직책과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관계부국의 장은 총괄기획부로, 관계 과장들은 간사회라는 이름으로 현대책본부의 사무를 보좌한다. 현의 본부장은 비상사태 선포권한을 갖고 기획부는 방역방침의 기획입안을 총괄하는 역할로 현 대책본부 안에 설치되어, 방역에 대한 권한을 지자체에 상당부분 위임한 것으로 분석된다.
감염확대를 방지하기 위한 백신접종이나 예방적 살처분을 결정하는 과정도 '백신접종 또는 예방적 살처분에 의한 방역대응을 국가에 요청'하도록 기본방침이 정해져 있다. 중앙부처와는 백신접종과 예방적 살처분 둘 중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를 협의하는 정도로 정해져있다. 한국처럼 중앙정부가 결정하면 지자체가 집행하는 것과는 달라 각 지역의 상황에 맞게 초등대응을 빨리 진행할 수 있는 점이 우리와는 다르다. 2010년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미야자키현 지사는 구제역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백신접종 등의 방역대책을 요구해 5월 22일부터 백신접종을 하는 등 의사결정과정의 신속성으로 피해확산속도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구제역 사태가 진정되면서 지자체에서 구제역 관련 방역활동과 평가 등을 담아낸 구제역 백서를 발간했다. 충남도도 지난 11월에 <구제역 방역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는 미야자키현에서 발간된 매뉴얼과는 차이가 있다. 예방적 살처분, 백신접종 등 대응방식에서는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한국의 구제역 백서가 발생현황을 중심으로 진행된 방역내용과 보상 등을 정리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면, 일본 미야자키현의 매뉴얼은 구제역 대응 행정체계를 다시 정리하고 구제역 사전대응부터 조치까지 대상에 따른 역할을 분담해 정리해 두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충남도 축산과 관계자는 "자치단체 성격이 강한 일본과 우리나라는 확실히 다르다"며 "중앙정부 중심으로 전체적인 틀을 잡고 대응하는 것이 지자체가 각자 움직이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구제역 검사를 중앙기관에서 하다보니 아무래도 대응속도의 문제가 있어 도에서도 구제역 검사시설을 갖추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역체계는 일선에서 '가동이 가능한' 행정체계와 인력, 매뉴얼이 갖추어졌을 때 체계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은 방역인력과 행정체계를 갖추고 다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갖춰진 방역체계에 맞게 가동될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보령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