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3사에서 동시에 애국가 틀어도 시청률이 4%는 나온다고 한다. 평일 낮 시청률이 0.5% 정도인 SBS '문화가중계' PD가 '그래도 '인수대비(jTBC 주말드라마)'보다는 높다'고 하더라.(웃음)"평균 시청률 0.3%대. 개국 한 달을 앞둔 '조중동매' 종편(종합편성채널)의 초라한 성적표다. 이를 지켜보는 최상재(50)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SBS 프로듀서)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종편을 만든 미디어법 개정을 막으려다 법정에 서야 했고 최근 회사에선 '대기발령'이란 중징계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종편 못 막았으니 실패한 싸움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 공공부문 민영화와 시위방지법 등 반민주적인 법을 실현을 막았다. 둘째 종편 자체도 애초 지난해 2월 이전에 출범시키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대기업 지원도 무산됐고 정권 말기여서 종편 광고 압력도 크게 줄었다. 종편이 마음 놓고 베팅하려 해도 자금력과 광고 영업력이 약한 상황이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 초기 일정을 꼬이게 만들어 공적인 부분을 일정 정도 지켜냈다고 자부한다." "대기발령 황당... 지상파는 미디어법 반대 투쟁 수혜자"대가도 컸다. 미디어법 투쟁에 참여한 언론 노동자들 가운데 12명이 회사에서 파면이나 해임을 당하고 60명이 기소됐다. 사내 징계까지 포함하면 피해자는 150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 전 위원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목동 SBS 본사 1층 카페에서 만난 최 전 위원장은 출근은 정상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회사에서 일감을 안 줘 손을 놓고 있었다.
최 전 위원장이 회사에서 '대기발령' 통보를 받은 건 지난 16일. 지난 2009년 7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막으려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한 일로 지난달 말 서울고등법원(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란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다. 하지만 허금열 전 SBS 상임고문이 청와대 대통령실장에 내정된 시점에 뒤늦게 징계가 이뤄져 회사의 청와대 눈치 보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회사에서 징계 운운하는 게 황당하다.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SBS로 상징되는 민간상업방송 지배세력의 잘못된 인식이 확대되면서 이런 문제를 야기한 것 같다. 최근 전임 노조 간부들에게 승진 누락, 해외연수 배제 등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도 이들이 사내 지배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언론노조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도 최 전 위원장 대기발령 취소를 요구하며 SBS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회사 쪽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휴직 발령'하겠다며 오히려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을 위해서 한 건 아니지만 (미디어법 반대 투쟁은) 그들 입장에서도 종편 영향력 확장을 지체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지상파 공공성을 덜 후퇴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지상파 방송 사업자들은 오히려 수혜자다.대기발령 중이지만 출근 전, 점심시간, 퇴근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계획이다. 민간상업방송 지배주주의 전횡을 고발하고 내부 구성원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한편 시민단체와 사회에 메시지를 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종편 수준 미달... 정치편향·선정적 방송 불가피"
최 전 위원장은 지난 8월 노조 전임자 활동을 마치고 7년 만에 SBS 시사다큐팀 프로듀서로 복귀했다. 지난 12월 1일 TV조선, jTBC, 채널A, MBN 등 종편 4사가 나란히 개국한 뒤엔 방송 현업자 관점에서 이들을 꾸준히 모니터해 왔다고 한다. 과연 '최상재 PD' 눈에 비친 종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마디로 평가 대상이 안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질이 낮고 품위가 없다. 틀자마자 '형광등 100개 아우라'(TV조선 박근혜 편)가 나오는 걸 보고 허탈했다. 저 정도 수준 방송을 막으려고 그 추운 겨울날 투쟁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한편으로 우리가 그만큼 치열하게 투쟁해서 종편이 저 수준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웃음) 종편은 24시간 방송인데 지금은 하루 5~6시간 편성할 여력밖에 없다. 무리하게 3~4배 방송하다 보니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종편은 경계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오히려 전규찬 교수(언론연대 대표) 말대로 앞으로 종편은 그 틈을 메우려고 성과 폭력, 정치를 소재로 자극적으로 갈 거다. 0.5% 시청률을 탈피하려 미국 폭스TV 같은 정치 편향적인 방송, 선정적인 옐로 매거진 이상의 프로그램으로 마지막에 승부할 수밖에 없다."- SBS도 개국 초기에 비슷한 평가를 받지 않았나."SBS도 불륜 막장 드라마, 일본 오락 프로그램 베끼기란 비판을 받았다. 그래도 그때는 SBS 하나뿐이었고 시장 상황도 괜찮아서 금방 KBS, MBC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또 노조나 PD협회, 기자협회 같은 내부 감시 장치도 작동하고 있었다. 종편은 당장 노조를 결성할 여력도 없고 100배 더 심한 생존 경쟁에 몰려 물불 가릴 수 없는 처지다. 자기 역량에 맞는 채널이 될 때까지 오랜 기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지상파 경쟁은 전략적 실수...<동아>까지 문 닫을 수도" - 다매체시대에 드라마나 예능 등 일부 프로그램에서 성공하면 영향력이 있지 않겠나."독과점 시장에 안착하려면 기존 사업자보다 3배 이상 힘이 있어야 한다. 지상파보다 3배의 인력과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종편은 1/3도 안 된다. 지상파 방송을 경쟁상대로 한 게 전략적 실수다. 정치적 외압과 광고 수주로 어떻게든 메워보려던 것인데 이 정부는 수명이 다했고 다음 정권은 '조중동'에 우호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상파와 케이블 사이에서 틈새를 노려야 하는데 '조중동매'가 자기 실력 이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한국 언론시장의 불행이다. 직접 실패를 확인하는 상황까지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 덫에 걸리는 꼴이다."
최 전 위원장은 결국 종편이 기존 케이블방송 수준에 걸맞게 스스로 축소하거나 소멸될 거라고 전망했다. 특히 동아 종편(채널A)의 경우 모회사인 <동아일보>의 운명까지 흔들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MBN은 시청률이 보도전문채널일 때보다 반 토막이 났다. 결국 경제뉴스 중심 특화 채널로 갈 거다. TV조선은 드라마와 예능이 황금알 낳는 거위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보수적인 뉴스 채널, 시사 보도 채널로 가야 생존할 수 있다. jTBC는 지상파에 여전히 눈독을 들이고 있어 OBS(경인방송)를 포함한 종합미디어그룹을 노릴 것이다. 하지만 지상파를 소유하려면 상당한 정치적 변화가 필요해 구상대로 되기는 쉽지 않다. 채널A는 이리로도 저리로도 가기 힘든 애매한 상황이다. 결국 소멸되고 모기업인 <동아일보>가 문 닫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 <동아>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 <동아> 출신 MB 실세들을 앞세워 종편에 가장 큰 드라이브를 걸지만 가장 큰 손실을 볼 거다. 결국 자업자득이다." - '신문을 하면 천천히 망하고 방송을 하면 빨리 망한다'는 <조선일보> 사장 말이 결국 <동아>를 두고 한 말처럼 들린다. 종편으로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부를 걸지 않겠나."종편이 애초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전에 최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보수 세력과 결탁해 언론을 장악할 계획이었는데 결국 무산됐다. 결국 내년 총선과 대선에 최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거다. 보수 집권 연장이 안 되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올인'하는 순간 종편 거부자들에게 더 정당성을 주게 된다.
지금까지 보여준 방송은 보수 편향이라거나 채널 자체를 지울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KBS, MBC가 보도하지 않는 선관위 디도스 공격 건을 종편이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인'하면 부정적 인식을 줘 자기 무덤을 파게 되고 소멸과 위축은 더 빨라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과 상처도 오래갈 거다. 지상파방송이 중심을 지켜야 할 텐데 언론 속성상 특종과 속보 경쟁에 묻혀서 휩쓸려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같은 언론 노동자로서 안타까움일까? 최 전 위원장은 시청자들의 요구에 맞춰 종편 스스로 살 길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시청자가 지상파에 원하는 건 뭘까? 지상파는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츠 가운데 꽤 높은 수준이다. 정치 중립성과 수준 높은 교양 프로그램이 아쉬운 정도인데 종편이 권력을 감시하겠나? 예능이나 드라마를 흉내 내도 더 뛰어난 걸 만들 실력은 안 된다. 정치적 입장과 과거 조중동 행적을 떠나서 시청자 요구에 맞는 부분이 없다. 결국 자기 특성에 맞는 채널을 찾아가는 게 맞다.언론 노동자 처지에서 조중동은 무조건 사라지라고 못한다. 보수적 관점도 인정해야 하고 필요하다 생각한다. 다만 팩트(사실관계)에 근거해서 보도하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때 얘기다. 보통 보수-중도-진보가 3-4-3 구도인데 조중동은 80%도 모자라 언론 시장을 전부 장악하려 하니 나머지 70%를 저항 세력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정치권도 30% 이상 여론을 보장 못하는 언론에 의존해 80~90% 국민 대상으로 정책 만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나."
"다시 처음으로... SBS 바꾸면 우리 사회 바꿀 수 있어"1996년 SBS 프로듀서로 입사한 최 전 위원장은 2004년 언론노조 SBS지부장을 맡은 뒤로 현업에서 오랫동안 떠나 있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유혹도 있었지만 최 전 위원장은 프로듀서 생활에 더 큰 애착을 보였다.
최 전 위원장은 "싸움 현장을 더 넓은 곳으로 옮겨보라는 제안도 들었다"면서도 "내 행보에 따라 미디어법 반대 투쟁의 순수성이 걸려 있는데 개인적 호불호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프로그램 제작에 매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독거노인 고독사 문제를 다루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송에 통신기술을 접목해 독거노인에 대한 전 사회적 관심을 일깨우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싶다는 것이다. 뭔가 날카로운 사회 고발성 프로그램을 예상했던 기자에겐 뜻밖의 대답이었다.
"작가가 한 번 등단한 뒤 좀 쉬었다고 신춘문예 다시 도전하나. 그동안 나름 작가란 자부심을 가지고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언제라도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종편에서도 시사 다큐로 시청자에게 인정을 받으려 할 텐데 지상파가 가만 있어야 되겠나. 종편 모니터링하면서 지상파용 시사 다큐를 만들려고 했는데 대기발령이 났다. 대법원 판결까지 1년 이상 갈 수도 있는데 무책임하다." 투쟁 현장을 떠난 지 4개월. 잠시 '휴식'을 마친 최 전 위원장은 대기발령을 계기로 다시 예전의 투쟁 의지를 되찾고 있었다. 상대가 이명박 정부에서 SBS 지배주주와 경영진으로 바뀌었을 뿐 그 결의만큼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마침 SBS가 직접 광고영업을 통해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 체제 무력화에 나선 것도 결국 지배주주와 경영진에게 부메랑이 될 거라고 전망했다.
"(투쟁을) 쉬고 싶었는데 회사에서 계속 싸우라고 각성시키는 것 같다. 2004년 지부장 시작할 때 방송 공익성 문제를 처음 들고 나왔다. 민간상업방송을 바꾸면 한국 언론과 정치 민주화에 기여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SBS를 바꾸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