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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마지막 투어지는 서울·경기·인천입니다. [편집자말]
 2009년 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 행사장의 현수막 밑 벤치에 노숙인이 잠들어 있다.
2009년 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 행사장의 현수막 밑 벤치에 노숙인이 잠들어 있다. ⓒ 연합뉴스
많은 이들에게 겨울은 '추억의 계절'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도 동파를 걱정하고, 치솟는 기름값 탓에 난방비를 아끼려 냉방에서 으스스 떨며 자야 하는 계절이다.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일용직 일자리조차 없어 주거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계절이다.

특히, 서울역에서 살아가는 홈리스에게 찾아온 강제퇴거 방침은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면서 더욱 잔인해지고 있다. 이들에게 겨울나기란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아직 살아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서울역에서 나가라!"는 말은 "그냥 죽어라!"라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홈리스에게 매년 찾아오는 겨울은 빨리 깨고 싶은 악몽일 것이다. 

홈리스들에게 물어봤다. 한겨울에 노숙하는 게 어떠냐고.

어떤 이는 "너무 추워 발이 시리고, 잘 때에도 고통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얼어 죽지 않으려면 필수품"을 챙겨야 한다고 했다. 침낭과 내복 혹은 신문지와 따뜻한 물, 핫팩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겨울이 되면 "늘 나가던 일용직 자리도 거의 없거나 반나절밖에 못한다"고 했다.

겨울이면 더 '쉽게' 사망하는 사람들

누구는 "몸이 좋지 않아 많이 (일용직 현장에서) 거절을 당했는데, 겨울이 되면 그것조차 없어 쪽방에도 못 들어가고 밖에서 자야 한다"고 했다.

집 없이 거리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주는 서러움과 피곤함, 그리고 이들을 쳐다보는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홈리스가 거리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기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추울 때면 홈리스의 사망 소식은 더 자주 들린다. 이는 살아있는 홈리스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비참하게도 한다.

"죽지 않으려고 바깥보다는 좀 더 따뜻한 지하도로, 역사 안으로 찾아갔어. 그런데 노숙인이라고 내쫓는 거야. 난 갈 데도 없는데, 나가서 죽으라는 말인가"라고 말했던 홈리스가 생각난다.

홈리스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더 안전한 곳을 찾아 간다. 주로 지하도나 역사가 그곳이다. 사람들 속에 섞여, 신문지, 박스집, 은박돗자리, 깔판, 침낭, 두꺼운 잠바를 두둑하게 챙겨서 잔다. 그래도 너무 추워서 겨울에는 투명한 김장비닐을 덮고 잤다는 홈리스도 있었다.

 GDP 세계 13위 대한민국. 하지만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 이웃은 매년 평균 300명을 넘어서고 있다.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서울광장 등. 서울 도심에서 매일 화려한 축제가 벌어지는 가운데 2009년 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가 열렸다.
GDP 세계 13위 대한민국. 하지만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 이웃은 매년 평균 300명을 넘어서고 있다.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서울광장 등. 서울 도심에서 매일 화려한 축제가 벌어지는 가운데 2009년 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가 열렸다. ⓒ 권우성

밖보다 따뜻한 지하도나 역사가 있기에 영하 16도에도 비교적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눈빛은 차갑다. 그럴 때마다 간절하게 생각나는 게 바로 '주거'. 타인의 눈치 신경쓰지 않고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주거 공간이 없는 이들은 오래전부터 역사를 중심으로 삶을 이어갔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일자리를 구했다. 또 의료를 이용하거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저마다의 생활을 유지해갔다. 그러던 어느날, 서울역 거리 홈리스 강제퇴거라는 철도공사의 계획이 떨어졌다.

이런 계획의 배경에는 '혐오감을 주는, 위협적인, 범죄자 같은, 쓰레기 같은' 등 홈리스를 향한 사회적 낙인이 있다. 그렇게 홈리스는 힘없이 역사 밖으로 내쫓기는 차별을 당했다. 공공역사에서도 안전할 수 없게 된 이들의 '안녕'은 더욱 위협을 받고 있다.

홈리스들은 사회적 무관심과 낙인,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투명인간 혹은 쓰레기,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다. 한창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10년 동안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늘었다. 2005년부터는 매년 300명 넘는 홈리스들이 거리에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았다.

내가 만난 한 홈리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의 노숙 동료는 영등포역 근처 공원에서 자다가 취객들에게 폭행을 당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비참한 동료의 죽음을 본 뒤,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죽어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창피하더라도 조금 더 안전한 곳,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역사를 찾았다.

또 어느 홈리스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박스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매일 밤,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게 꼭 관에 들어가는 것 같다." 그렇다. 홈리스로 사는 일은 매일 죽음을 경험하고, 실제로 죽어가고 있다는 걸 말한다.

많은 이들은 이런 홈리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임시적 대책만 들먹이면서도 뭔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왜 탈노숙을 하지 않느냐"고 채찍질 한다. 어떻게든 홈리스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마음대로 '처리'하고 싶은 것이다.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매일 관에 들어가는 느낌"

지난 8월 22일, 강제퇴거 이후 서울역 홈리스가 1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당시 근처 대형마트에서 연 불우이웃돕기 바자회 탓에 홈리스들이 다른 곳으로 잠시 떠났을 뿐이다. 서울역 홈리스는 8월말부터 다시 300명대로 늘었다.

철도공사 강제퇴거 이후 서울시에서 대책을 마련했다. 임시주거지원와 특별자활근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도 '임시'였다. 게다가 이것도 부족해 지원도 못한 홈리스가 태반이었다. 남은 홈리스들은 "강제퇴거"를 외치는 역사 주변을 불안하게 맴돌았다.

그리고 한창 추워지는 지난 11월, 서울시에서 또다시 동절기대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겨울동안 홈리스들이 '얼어 죽지 않게' 하려는 정책에 불과했다.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위기관리팀, 터무니없이 부족한 임시주거지원,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단기간 특별자활근로, 한곳에 몰려 자야 하는 응급구호방 등 모두 '임시'일 뿐이다.

홈리스 규모는 서울에만 약 1300명에 달하는데 임시주거지원은 고작 200호다. 이렇게 터무니없이 부족한 물량으로 홈리스를 지원하겠다는 게 말이 되나?

상담 중에 만났던 거리홈리스들은 대부분 서울시 대책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거리 홈리스는 서울역에서 60명만 지원하는 한 상담보호센터에 주거지원을 신청했다. 그는 180번대 후반의 상담대기표를 갖고 있었다. 번호를 보면서 한숨 쉬는 내게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 방에 들어갈 수 있어요. 따뜻하게 잘 수 있다고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홈리스들에게는 겨울 동안 무사히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겨울보다 더 시린 차별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서울역의 강제퇴거 방침이 우선 철회되지 않는 한, 임시적인 서울시 대책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홈리스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외롭게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박사라 기자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입니다.



#노숙인#홈리스#철도공사#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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