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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저녁 인터넷 포털 기사 타이틀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내 이름이 기사 타이틀의 첫머리였다. <'김영숙' 호명하면 4만 여명 손든다>(머니투데이) 그렇다. 바로 추측되듯이, 내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김영숙'이다.

기사는 어느 신용정보회사의 DB자료를 활용해 동명이인의 수를 조사한 결과 내 이름이 40335명으로 가장 많다는 사실을 알렸다. 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1위의 영예(?)를 차지할 줄은 몰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기사에 이름에 얽힌 옛 기억이 줄줄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안방에는 대구시 전화번호부가 있었다. 무슨 마음이 내켰는지, 어느날 나는 그 전화번호부 인명란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내 이름이 몇 개나 되는지 헤아려 보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이름인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그 숫자는 70언저리였다. 1980년 대구시 얘기다. 전화번호부 인명란은 가구의 세대주 이름으로 등록했던 것임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숫자였다. 그런 앞뒤정황을 모르는 어린 내게도 70이라는 수는 놀라운 숫자였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한 반에 영숙이란 이름이 4명이나 있었다. 김영숙, 권영숙, 여영숙, 차영숙.

수학과목을 담당하셨던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에선 차집합, 여집합 모두 '영숙'으로 통한다고 하시며 수학 집합 단원 배우기가 너무 쉽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셨다. 대학에 들어가자 이번엔 서세원씨가 '영숙이 숙제 했어?' 란 유행어를 터뜨려 보는 친구나 선배마다 숙제는 다 했냐고 놀려대기 일쑤였다.

절정은 남편과의 연애시절, 호칭문제에서 일어났다. 남편의 누나 이름이 '영숙'이었던 때문에, 도저히 애인 이름을 부르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하던 남편은 급기야 둘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애칭을 만들기까지 했다. '소미'라고. 자기 마음에 드는 이름이라고 여겼던지, 애인이 생겼다는 말에 회사 직원들이 이름을 물어볼 때도 내 본명대신 '소미'라고 대답하는 통에, 사람들은 그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마지막승부>에서 심은하가 열연했던 '다솜이'를 떠올리며, 소미? 다솜이? 라고 되묻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이름에 대해 사뭇 덤덤하게 지내왔다. 학생일 땐 학생으로, 사회에선 계속 내 직업을 가지며 내 이름이 하나의 고유명사로 나라는 인격체와 연결되어 불리워지는 상황에 익숙해서였을 것이다. 이름이 흔하다지만 조직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고 별달리 혼동될 일도 없었다. 연애 시절, 남편이 자기 누나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름 한 번 참 촌스럽다고 놀려댈 때만 살짝 내 이름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뉘앙스를 줄 수도 있구나 싶었을 뿐이었다.

이름에 대한 애정은 부모님에 대한 마음으로도 연결된다. 내년이면 일흔 여덟, 일흔 일곱이 되시는 친정부모님은 결혼해 갓 얻은 아들을 석 달 만에 병으로 잃고 십 년 넘게 자식이 없어 애를 태우다 나를 얻으셨다. 사람들이 부르기 쉽고, 많이 쓰는 이름이면 좋은 이름일 것이라 여겨 골라주신 그 마음을 잘 알고 있고,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안다. 수 많은 같은 이름 중에서도 나는 '나'라는 이미지의 '김영숙'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수 많은 이미숙 중에서도 배우 '이미숙'을 구별해 내고, 수 많은 김미숙 중에서도 탤런트 '김미숙'을 알아본다. 이름 하면 빠질 수 없는 삼순이도 드라마 막바지에 현빈의 만류로 개명신청을 그만둔다. 현빈에게 삼순이는 '삼순이'로 불려야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 흔한 이름을 가진 덕에 이름을 주제로 이렇게 기사도 쓸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이름 덕을 보는 재미다. 나를 아는 사람들 중 어제 그 기사를 보았던 이들은 누구든 한번씩 나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4만 명이면 어떻고 5만 명이면 어떨까? 나는 내 이름이 좋다. 내 이름은 '김영숙'이다.


#동명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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