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채 하루도 지나기 전에 제주도 강정마을이 대규모 연행사태로 꽁꽁 얼어붙고 있다. 경찰은 26일 오전에만 주민과 평화활동가 등 모두 27명을 연행해 조사하고 있다. 연행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저항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 무렵부터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현장 정문 앞에서 해군기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던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동원된 병력은 사복경찰 50여 명, 전투경찰 200여 명 등이다.
이에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은 "불법 집회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집회 신고를 한 장소에서 평화적인 집회를 하고 있는데 불법연행이 웬말이냐"며 항의했지만 허사였다. 이 과정에서 문정현·문규현 신부와 양윤모 전 영화평론가협회장 등 27명이 연행됐다. 프랑스 출신 평화활동가 뱅자맹 모네는 경찰에게 불법연행을 항의하다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됐다.
강정마을 밴드인 '신짜꽃밴(신나고 짜릿한 꽃밴드)' 멤버(조약골·돌고래·김세리) 세 명도 이날 전원 연행됐다. 이들은 오늘 밴드의 데뷔 음반을 녹음할 예정이었다.
"경찰, 주민들이 기침만 해도 잡아가고 있다"경찰의 느닷없는 대규모 연행소식에 강정마을은 물론 제주도가 발칵 뒤집혔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지금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장본인이 누구냐"며 "해군의 온갖 불법과 탈법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찰은 주민들이 기침만 해도 잡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 회장은 또 "힘없는 주민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벌써 200여 명 가까이 사법처리를 받아야 하나"라며 "이유는 단 한 가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까지 나서서 오류를 지적하며 검증위를 통해 검증받으라고 하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통탄했다.
고희범 제주포럼C 대표는 "서귀포경찰서장이 바뀌자마자 연행사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해군의 불법적인 행태는 제재하지 못하면서 활동가들을 연행하는 것이 경찰 지도부에 '강한 서장'이라는 인상을 심어줄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부메랑이 되는 걸 여러 차례 봐 왔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법 집행은 공정해야 하고, 우선 적법해야 한다"며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지도 못할 연행자체가 불법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임 서장, 상부에 잘 보이려고 무리수 두고 있다"
강정마을회는 대규모 연행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총력 투쟁'을 선포하고, "연행자를 전원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천주교 사제들은 연행에 항의하며 오후 4시 미사를 열 예정이다.
한편 경찰이 이날 대규모 연행을 한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제주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신임 서장이 전임자들이 강공책만 구사하다가 불명예 영전한 사실도 모른 채 상부에 잘 보이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국회가 해군기지 설계 검증 후 공사를 하라는 말은 사실상 국회가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업자체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이에 다급해진 해군이 경찰에게 강수를 주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 예결위 야당 관계자는 "국회가 예산을 줄 때 내건 최소한의 부대조건조차 지키지 않은 사업"이라며 "해군 스스로 인정했듯이 설계 자체에 명백한 오류가 있었던 만큼 국회가 주문하는 검증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사업검증 전까진 예산을 줄 수 없다는 압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