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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치·고문·살해 위협을 받는 파키스탄 언론인들의 현실을 전한 <슈피겔>.
납치·고문·살해 위협을 받는 파키스탄 언론인들의 현실을 전한 <슈피겔>. ⓒ <슈피겔>

'국경 없는 기자회'는 올해 전 세계에서 보도 업무 중 살해된 기자가 66명, 체포된 기자가 1044명이라고 21일 밝혔다. 이 중 가장 많은 언론인이 살해된 나라로 꼽힌 것은 파키스탄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올해 파키스탄에서 10명의 언론인이 살해됐다고 밝혔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언론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국가'로 파키스탄을 2년 연속 꼽았다.

'국경 없는 기자회'뿐만 아니라, '언론인 보호 위원회'도 파키스탄을 '언론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국가'로 규정했다. '언론인 보호 위원회'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 언론 단체다.

파키스탄이 이런 오명을 얻은 것은 탈레반을 비롯한 극단적인 테러 세력 때문만은 아니다. 막강한 군부가 이끄는 정보기관도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주요 요소로 꼽히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의 발표 이후, <슈피겔>은 '가장 치명적인 국가'에서 보도 활동을 하고 있는 파키스탄 언론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게재했다. <슈피겔>은 하미드 미르, 우마르 치마, 사에드 살렘 샤자드의 사례를 통해 파키스탄 언론인의 현실을 전했다.

올해에만 10명 피살... 목숨 걸고 보도해야 하는 사람들

이에 따르면, 하미드 미르(45세)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인 중 하나다. TV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 민영 방송사의 얼굴로 통한다. 하미드 미르는 20일(현지 시각), 다음과 같이 협박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제까지 너와 같은 개자식을 본 적이 없다. 누군가 널 발가벗기기를 바란다."

하미드 미르가 협박 메시지를 받은 건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후 파키스탄 군부가 쿠데타 계획을 세웠다는 소문과 관련돼 있다. 쿠데타 소문은 파키스탄을 뒤흔들었다. 파장의 한가운데에는 파키스탄 태생의 미국 국적 사업가인 만수르 이자즈가 있었다. 만수르 이자즈는 '미군이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을 쿠데타로부터 보호하고, 장군들의 힘을 제한할 것'을 요청하는 메모를 파키스탄 외교관으로부터 받아 미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만수르 이자즈는 이 외교관이 대통령과 가까운 후사인 하카니 주미대사라고 주장했다.

군부는 격노했다. 하카니 주미대사는 사임했다. 이 사건을 통해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이 이끄는 민간 정부와 군부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2007년에 암살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이다. <슈피겔>은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이 군부에 휘둘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미드 미르는 토크쇼에서 정보기관 수장인 아흐메드 슈자 파샤 장군이 걸프만 일대의 여러 국가를 방문해 쿠데타 계획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려 했다는 소문에 대해 다뤘다. 그 후 하미드 미르는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

협박 메시지를 받은 후 하미드 미르는 이렇게 말했다.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 이런 문자메시지는 날 불안하게 한다. (……) 감히 군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위험 속에서 살아간다."

하미드 미르는 자신에게 협박 문자메시지를 보낸 휴대전화 소유자를 추적하려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런 답도 듣지 못했다. 파키스탄에서는 군부만이 통신회사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슈피겔>은 보도했다.

하미드 미르가 보도 내용 때문에 위협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 시절, 부패한 정치인들 문제를 여러 차례 다루다가 방송 금지 처분을 당한 적도 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는 육군 참모총장 출신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하미드 미르는 파키스탄에서 언론인이 위협당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동료들이 주로 분리주의 집단이나 과격 정당들의 테러 공격에 희생됐다. (……) 폭탄 공격 현장에 달려갔다가 또다시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은 동료들도 있다."

또한 군부를 축으로 한 정보기관의 위협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제 (언론인을 위협하는) 주요한 적은 국가, 군대, 정보기관이다."

군부-알 카에다 연관성 보도했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이도

우마르 치마(35세)도 군부를 비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우마르 치마는 정치 부패 및 군부의 정치 개입에 관해 보도했다. 우마르 치마는 작년 9월에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들에게 납치됐다. 남자들은 우마르 치마의 손발을 묶고 눈을 가린 후 차에 태워 어딘가로 데려갔다.

"한 남자가 내게 '나쁜 보도를 했으니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 상의를 찢고 바지를 벗겼다. 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우마르 치마는 5명의 남자들에게 30분 동안 널빤지와 가죽끈으로 얻어맞았다.

"그 사람들은 내게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게 하고, 사진을 찍으며 날 모욕했다. 마지막으로 내 머리털과 눈썹도 밀어버렸다."

우마르 치마는 이슬라마바드에서 남쪽으로 1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버려졌다. 납치된 지 7시간 만에 살아 돌아온 우마르 치마는 이 일의 배후에 파키스탄 정보기관이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보도한 내용에 대해 정보기관에서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지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겪은 후, 우마르 치마는 하미드 미르와 마찬가지로 '파키스탄 언론인에게 가장 큰 적은 테러 집단이 아니라 군부와 정보기관'이라고 보게 됐다.

사에드 살렘 샤자드(40세)는 더 끔찍한 일을 당했다. 사에드 살렘 샤자드는 5월에 이슬라마바드에서 납치됐다. 그 후 고문당한 시신으로 수로(水路)에서 발견됐다. 납치되기 전, 사에드 살렘 샤자드는 파키스탄 해군 장교들과 알 카에다의 연관성을 비롯해 군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사에드 살렘 샤자드의 죽음에 대해 하미드 미르는 "우리는 그 죽음의 배후에 정보기관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주장했다. 우마르 치마는 사에드 살렘 샤자드가 정보기관으로부터 경고를 들은 후 살해됐다며, "(정보기관 말고) 어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물었다.

파키스탄 정보기관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일에 대해 정보기관을 비난하지만, 우리는 명예를 존중하는 기구"라고 반박했다.


#파키스탄#언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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