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는 지난해부터 '제1회 공익제보자의 밤'을 열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한국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부당한 거래의 고리를 끊고 반부패를 앞당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양심선언자 및 공익제보자들에게 감사와 지지를 표해왔다. 올해부터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의인기금'을 설립하고 후원계좌와 네이버 해피빈 등을 통해 모금을 진행 중에 있다.오래 전부터 공익제보지원에 앞장섰으며 '의인기금' 설립을 위해 씨드머니로 1억 원을 쾌척한 김창준 변호사를 시작으로 대표적인 공익제보자들을 만나 한국 사회에서 공익제보의 의미와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들어본다. - 기자 말정봉주 전 의원이 결국 구속됐다. 정 전 의원이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혐의다. 이에 대해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 '국가가 국민이 한 말이 허위라고 해서 잡아가두거나 국가가 독점하는 기타 강제력을 행사하려면 우선 그 말이 허위임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했다(
정봉주 유죄판결은 법적 착시현상). 박 교수는 이번 정 전 의원에 대한 유죄 판결이 이 원리를 깡그리 무시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이명박 정부 4년간 국민들의 정당한 의혹제기가 괴담이나 허위사실이 되어 처벌되고 묵살당하는 광경을 여러번 목도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9년 국세청이 내부게시판에 전 국세청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당 직원을 파면조치하고 명예훼손으로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다.
내부게시판에 의혹 제기했다고 파면에 고소다행히도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지난달 24일 "김씨가 올린 글의 내용은 허위사실이라고 보기 어려워 범죄가 입증되지 않는다",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공인에 대한 비판을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을 2년 6개월간의 법적 공방 끝에 받아내고 이달 초 복직한 나주세무서 계장 김동일씨가 이번 인터뷰 주인공이다.
그는 2009년 5월 '나는 지난 여름에 국세청이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국세청 내부게시판에 올렸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벼랑끝에 서게 한 원인 제공자가 우리의 수장"이라며 "국세청 수뇌부는 왜 태광실업을 조사하게 됐고, 왜 관할이 아닌 서울청 조사 4국에서 조사했는지, 왜 대통령에게 직보하고 직보를 한 후에 어떤 조치가 이뤄졌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국세청은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적용해 그를 파면하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미 혐의를 받고 있던 전 청장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조직의 자성을 촉구하는 글을 단지 내부게시판에 올렸을 뿐인데 결과는 가혹했다. 그러나 그는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만 해도 이렇게 큰 싸움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나는 이미 국세청 내부게시판에서 한 명의 논객이었다. 내가 쓴 100여편의 글에 조회수가 100만건에 이를 정도였으니까. 나는 이 정부 전에도 현직 청장이나 심지어 대통령도 비판해왔기 때문에 반응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훨씬 심한 글을 올렸으면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었다. 그런데 한상률은 현직도 아닌 전직 청장이다. 전직 청장에 대한 비판글에 이렇게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노 대통령의 죽음과 관계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혹이 생겼다. 정권이 바뀌면 전면 재조사 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이미 오래 전부터 내부에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던 그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던 일로 그를 파면시킨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민변 변호사로 꾸려진 공동변호인단이 가장 큰 힘그는 지난해 참여연대 의인상 수상자 중 한명이었다. 조직의 비리나 문제를 외부에 알린 일반적인 공익제보자와는 유형이 조금 다를 순 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조직의 문제를 지적하고 내부에서 이를 해결하려다가 오히려 파면과 고소를 당하는 바람에 외부로 알려진 새로운 유형의 공익제보자라 보았기 때문이다. 글 한편으로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그가 이 긴 싸움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에 일을 당했을 때 머릿속이 새하얘졌었다. 가장 먼저 법률적인 부분이 생각났다. 나는 옳은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배신자, 죄인으로 몰아가니까 나 스스로도 내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 '당신은 죄가 없다'는 말만 해줘도 숨통이 틔일 것 같았다."그에게 가장 힘이 된 것은 무료변론을 나선 24명의 민변변호사들로 꾸려진 공동변호인단이었다. 그리고 사건을 모니터하고 대응해온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의 지원과 의인상 수상 또한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나야 각오가 되어있었으니까 괜찮은데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런데 참여연대에서 의인상을 받아가니까 아내와 아이들이 뿌듯해했다. 그것이 다시 나에게 용기가 됐고 위안이 됐다. 주변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진 것을 느꼈다. '저 사람이 그렇게 나쁜 행동을 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 것 같았다.""공익제보 하는 사람들,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대부분의 공익제보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파면이나 해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지난하고 외로운 법적싸움으로 인한 일상의 파괴일 것이나 그 못지않게 힘든 점은 옳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익제보를 하는 사람들이 당당한 척 해도 불안하고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이 끊기다보면 말을 안 하고 있는 시간이 1~2일에 달할 때도 있다. 말하는 법도 잊어버릴 정도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리를 목격해도 직접 고발하거나 나서기가 쉽지 않다. 참여연대도 1996년부터 지금까지 반부패운동의 일환으로 공익제보지원 사업을 해왔으나 2011년 한국 사회의 부당거래는 여전하고 공익제보자들은 핍박받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공익제보자가 나올 수 있을지 그에게 물었다.
"조직원들의 양심이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것을 지금 이 시점에서 고치지 않으면 더 부패하고 앞으로 이 조직에 들어올 젊은이들이 더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휘슬을 불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공직에 20년 이상 근무하면서 느낀점은 우리나라는 상명하복체제의 관료주의가 굉장히 문제라는 점이다. 밑에서 올라오는 의견은 묵살하기 일쑤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자신의 권위가 침해된다고 생각하면 안한다. 이제는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와 공간이 마련되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인식의 전환과 양심에 대한 사회적 지지 절실공익제보운동이 활성화 되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대다수 공익제보자들은 권위적인 한국 문화를 꼽는다. 유난히 연공서열과 위계질서를 따지는 사회에서 약한 개인들이 거대한 조직의 부당함과 싸우려면 인식의 전환과 사회적 지지,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당함에 대한 양심의 목소리에 눈감지 않는 것이리라.
"나에게는 고등학교 3학년 딸과 고등학교 1학년 아들 그리고 부인이 있는 한 가정의 남편인데 고민이 없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 시작할때부터 공무원들에게 하수인이 되길 요구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싸운 이유는 어떤 잘못을 보고도 다 눈감고 스쳐지나가면 다음에 오는 사람은 어쩌겠나. 내가 앞서 싸워줘야 다음에 오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편하지 않겠나. 그런 차원에서 도전했고 그 도전에 대한 회의는 지금도 없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있어 공익제보란 무엇인지 물었다.
"나에게 있어 공익제보란 사방이 다 막혀있고 빛을 볼 수 없는데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리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다."그는 복직을 하자마자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했다. 복직이 되고 나면 시민단체들을 지원하겠다던 다짐을 실천한 것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긴 싸움'을 혼자 하게 두지 말고 함께 싸울 수 있도록 제도가 갖춰졌으면 좋겠다"며 "그래야 나와 같은 길을 다른 사람들도 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더는 그들이 더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싸움을 홀로 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그리고 당신이 그들의 양심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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