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 먼저 나온 사람의 말이 사랑 없는 재미없는 생을 살거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네 살아간다는 것은 별이 되어가는 것이라네-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5집 앨범에 수록된 <인생은 금물> 노랫말 가운데일단 이 글은 인디문화에 대한 칼럼이나 홍보글이 아님을 밝힌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청소년운동을 해왔다. 이 운동은, 청소년운동을 하지 않았던 시간과 청소년 활동가로서 살아가는 시간 사이를 명쾌하게 가로지른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는 거다.
사실 나는 원래 시적 감각도, 음악적 감수성도 처절하게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멍하니 서서 처음 들었을 때는, 가사가 품고 있는 뜻을 이해하기가 벅차 노래를 그냥 흘려보내버렸다는 말이 어울렸다. 그런 와중에도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라는 한 소절은 섬광이 스치듯 뇌리에 박혀버렸다. 사실 이 노래에 매혹되어 버렸던 가장 큰 이유는, 그 한마디에 공감하며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말자'라고 다짐하는 시간들을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이 노래에 꽂혀버린 그 어느 순간을 되새기며,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지막 고백이다. 10대를 3일 정도 남겨뒀다는 것을 애써 인지해내며, 다시는 돌아가지도 못하고 살아내지도 못할 그 순간들을 위해, 또 그 시간을 지나쳐왔던 나를 한번 힘껏 안아주려 한다.
인권을 만나고 난 후의 내 삶은 꽤나 피곤해졌고, 고달파진 것 같다. 학교와 운동판을 오가며 지내다 보니 그 끝없는 괴리감에 숨이 막혀왔다. 그러다 2학년이 되자마자 학교와 작별을 고하고 본격적인 청소년운동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던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은 서울시민 10만 명의 서명이라는 기염을 토해냈지만, 그 찬란한 성공 뒤에는, 어른들에게 '서명해주세요'라고 구걸하다시피 말하며, 그 굴욕적인 마음을 애써 감추며 거리에 서야 했던 처절한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
주민발의 운동이 끝나자마자, 동네에 새로 생긴 고등학교에서는 상벌점제로 개교 석 달 만에 20여 명의 학생들이 강제자퇴를 당했다. 함께 대책위를 꾸리고 한 달 만에 전원 복학이 되는 기적을 만들어냈지만 그 뒤에는 이미 주민발의로 너덜너덜 해진 몸과 마음을 수습할 새도 없이 거의 한 달 내도록 교육청과 학교와 싸워야 했던 시간 역시 있었다.
너덜너덜, 아등바등... 2년이 언제 지나가버렸지?늘 이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같이 모여 일을 할 수 있는 공간 하나 못 구할 만큼 가난하기도 하고,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학교와 가정문제처럼 또 다른 삶을, 하나씩은 더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뭔가를 해보자고 아등바등 하다 보니 내 2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함께 운동한다는 '어른 활동가'들이 꼰대짓을 선보여주실 때마다 대놓고 하지 못했던 '개새끼'라는 말을 속으로 끝없이 삼켰다. 그렇게 청소년 활동가라고 무시하는 것도 서러워서 죽겠는데, 그 앞에 내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여성이라는 단어 하나가 추가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보다 더 두터운 가족주의와 보호주의를 마구 뽐내주시기 덕분이다. 더 찌질한 어른들은 성희롱까지 더해 완벽한 진상짓의 삼단콤보를 보여주신다.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어가면서도 걸고 넘어져야만 했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를 넘어, 사회운동을 함께 해나가는 동등한 '주체'로써 인정받기 위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의 '지랄'이었다. 그렇게 '지랄'할 때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그런 푸념은, 곧 '그래서 후회하니?' 하는 지긋지긋한 질문으로 이어지곤 했다.
사실 청소년운동을 하는 나에게 '대학'은 꽤나 민감한 주제였다. 이제껏 학벌사회를 그토록 열렬히 비판해왔는데, 어느새 나는 학벌사회를 보다 더 견고하게 유지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도 가장 정점에서 말이다. 그때,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은 대학거부 운동에 매진하고 있었기에 친구들을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도 죄스러웠다.
또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차라리 이런 일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비판도 할 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렇게 매일을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으로 지내야 했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간절했다.
학교에 예비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울적한 마음에 옆 동네인 홍대 거리를 혼자 거닐었던 적이 있다. 그때 들렸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다. '함부로 태어나지 말라'는 노래가사가 참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나를 일으켜세웠던 것 같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그 한 소절이, 스스로에게 물었던 그 질문에 대해 다만 '그럼에도 버텨내라'는 대답을 하게 했었던 것인지 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것은 결국 나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체념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냥 함부로 태어나지 말라는 노래를 핑계 삼아 '인생은 금물이라지만, 그래도 난 잘 살아낼 거야 불끈!' 하는 오기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음엔 진짜 태어나지 말아야지' 하며 혼자 중얼거리는 것으로 울적함을 쏟아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고.
이제 10대가 아니다... 다시 마주할 나를 위해 '안녕'정말 곧 있으면 20살이다. 대학을 가게 되고, 살인적인 등록금을 걱정하며 학점에 목메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도, 신념들도 어느 순간 빛바랜 것들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대학이 주는 달콤함에 젖어서, 혹은 청춘이니 하는 진부한 단어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사유를 가로막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나의 10대는 여전히 참 고민스러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끝까지 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묻는다. 매 순간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던 그 질문을 다시 던진다. 그토록 불편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느냐고. 사실 수천 번도 더 물었을 그 질문은 즉각적인 대답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다만, 그 시간을 모두 견뎌내고 나서야, 보다 더 단단해진 나를 마주할 때, 쑥스럽지만 나 역시 빛나고 있다는 걸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때서야 간신히 내 스스로에게 조그만 위로 하나를 던질 수 있게 한다.
내 귓가에 속삭이듯 스며드는 그들의 노랫소리처럼 달달하게 다가가지는 못하겠지만, 스스로에게 조금 오글거리는 한마디를 던져줘야겠다. 그다지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아서 흐릿하고 잔잔하게 물결처럼 흘러가는 그들의 노래 같은 한마디가 지금 필요할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꽃이 져버리고 나서야 그때가 봄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너 역시 그랬던 것 아니겠냐고. 그렇기에 사실 너는 언제나 봄날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나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말이다.
여전히 나에게는 곧 20대가 된다는 말보다, 이제는 10대가 아니라는 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지난 2년이 너무나 선명해서 그 시간들을 놓아버려야만 하는 순간들이 온다면 무척 슬플 것 같지만 그럴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 순간들은 머릿속에만 남아 있다 언젠가 지워져버릴 과거의 기억 따위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 될 미래이자, 그것의 현재이니까 말이다.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을 통해서,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통해서, 나의 모든 순간을 통해서 아주 오래도록 이어질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금 던지는 안녕이라는 인사가 내게는 작별을 고하는 것이 아니다. 온전히 다시 마주하게 될 내 스스로에게 반갑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정말 안녕이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