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뭐가 그리 볼 게 많은교?""응? 어…. 재밌잖아.""…….""아직 멀었나?""아, 아니, 그래 가자."성미 급한 후배 때문에 못 다한 구경, 실컷 해보자 우리 부부는 여행을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지 무척이나 꼼꼼하게 살피고 구경하곤 한답니다. 더구나 그 옛날 우리가 어릴 적 살았던 때와 비슷한 풍경을 만날 때면 더욱 그렇지요. 벌써 스무 해도 더 된 이야기인데, 언젠가 남편이 후배랑 함께 온양민속박물관에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답니다. 그 때만해도 그리 자주 여행을 다닌 때가 아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꼼꼼하게 둘러보는 버릇은 마찬가지였나 봐요. 게다가 민속박물관이니 얼마나 재밌는 구경거리였을까요?
그런데 함께 간 이 후배가 참 성미 급한 사람이었다더군요. 아니 급해서가 아니라, 남편과는 달리 그런 구경거리가 썩 재미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게지요. 전시관이라고 해봐야 3층까지가 다인데, 그냥 스쳐가듯이 휙휙 지나가며 구경하고 가니 남편은 남편대로 조바심이 났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먼저 저만큼 앞서가며 보고 가던 사람이 다시 다가와서 아직 구경을 다 못했냐면서 얼른 가자고 보채더랍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 말았다고 하네요. 그 오래 전 이야기를 남편한테 틈틈이 들어왔는데 오늘(12월24일) 드디어 바로 그 곳, 온양민속박물관에 우리끼리 가게 되었답니다.
아산시에 온 첫 발자국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넋을 간직한 현충사에 가장 먼저 찍고 '은행나무길'을 따라 온양민속박물관으로 들어왔어요. 입장료가 어른 기준으로 5천 원씩인데, 추운 날이었지만 이곳을 찾아온 이들이 꽤 보이더군요. 단체로 와서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구경하는 이들도 있었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담긴 박물관1층 전시실은 '한국인의 삶'이란 주제로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로 묶어서 모형으로 된 인형까지 세워놓고 갖가지 모습으로 잘 전시가 되어있었답니다. 이 땅에 태어나기 앞서부터 부모들의 치성으로 아들을 기원하는 모습부터 돌을 지내고 자라는 과정과 어른이 되어 혼인을 하고 농사일, 바닷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것, 또 나이가 들어 죽고 난 뒤에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는 것까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을 함께 곁들여 전시를 했더군요. 또 입는 것, 먹는 것, 집 모양까지 신분과 생활방식에 따라 잘 나타나 있더군요.
2층 전시실에는 '한국인의 삶터'라는 주제로 꾸며졌는데, 농사일, 가축 기르기, 사냥과 고기잡이, 대장간까지 사실 그대로 전시해놓았는데, 참으로 볼거리가 많았지요.
"히야, 저거 봐! 저건 나도 어릴 적에 수없이 많이 썼던 건데, 그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감회가 새롭네.""맞아, 나도 저거 해봤다. 아궁이에 불 땔 때, 풍구를 앞에다가 놓고 훠이훠이 돌려서 불을 지피곤 했는데, 그땐 연기가 어찌나 많이 나고 맵던지, 불 때라고 하면 제일 귀찮고 싫어했는데.""그거 아나? 시미기.""알지 쇠죽을 우리는 시미기라고 했잖아. 자기도 옛날에 시미기 끓이라고 하면 싫어했지?""아이고 말도 마, 그때는 학교 갔다 오면 집안일 해야 할 게 너무 많았어. 맘 같아선 논에 가서 놀고 싶은데 때 되면, 시미기 끓여야하지, 산에 가서 나무도 해야지, 토끼풀도 뜯어야지, 그 나이에 오죽 놀고 싶겠냐? 그런데도 집에 가면 일이 산더미라. 그땐 너나 할 것 없이 얘들도 다 집안일, 농사일 다 하면서 살았으니까, 그땐 진짜 귀찮았지.""에이, 나 공부해야되여, 하면서 우짜든지 핑계 대고 안 할라고 용 썼는데…."
망태, 삼태기, 지게, 논바닥 헤집을 때 쓰던 가래, 탈곡기, 똥장군, 등 여러 가지 농기구가 한데 모여 있어 어릴 적 생각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지요? 그 말이 딱 맞는 말인 듯해요.
민속박물관이 재미난 까닭은? 바로 옛 추억 때문에"이런 데 오면 내가 이키나 좋아하는 건 아마도 옛날 추억이 많이 떠오르기 때문일 거라. 저런 물건들만 봐도 괜히 가슴이 짠하고 저런 거 쓸 때 일이 하나하나 떠오르잖아. 그리고 그땐 엄마가 저런 일 시키면 죽어라고 안 할라고 했거든. 그땐 그게 왜 그렇게 싫었겠나? 그런 일들이 하나하나 다 생각나니까 이런 거 보면 그키나 좋은 기라.""그렇지? 그러이 그 옛날 추억을 먹고 사는 기라.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또 그 때 생각을 해보겠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구경하니까 더 꼼꼼하게 보게 되고, 무엇보다 재밌잖아. 그런데도 옛날에 그 놈은 그키나 휙휙 지나가면서 지는 다 봤다고 얼릉 가자고 보채대니 내가 얼마나 아쉽고 서운캤나."
"그런데 그 때 뿐 아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 이런 데 오면, 더구나 비싼 표까지 끊고 와서 보는데도 그저 눈으로만 보고 가슴에 남는 거 하나 없이 스쳐가는 사람들 많잖아.""그건 그래. 여기만 해도 그렇네. 아까 사람들 좀 있더니만, 다 가고 없다.""벌써 구경 다 하고 갔나? 어, 그렇네. 지금 몇 시냐? 이거 우리 쫓겨나는 거 아니나?""문 닫을 시간 다 됐어. 들어온 지 두어 시간 되었지 싶은데?"서둘러 3층으로 올라갑니다. 이곳은 '한국인의 아름다움'이란 주제로 전시를 해놓았군요. 민속공예나 민간신앙, 그 시절 '놀거리'들을 보여줍니다. 또 옛사람들이 공부하던 모습과 또 우리나라 활자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놨네요. 그리고 예로부터 무속신앙이 생활 깊게 들어와 있었으니, 그런 문화도 한눈에 볼 수 있었어요.
민속공예품을 보면서 또 놀랍니다. 금속공예, 화각공예, 나전공예, 목공예 등 그 시절 집집이 한 두 가지씩은 다 있었을 듯한 것들이에요. 이런 것들을 보면 새삼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네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손재주가 많았나 봐요. 손가락으로 집히지도 않는 작은 것들을 가지고 공예품을 만들어내고, 투박한 쇠뿔이나 조개껍데기를 가지고 얇게 갈고 펴서 조각을 만들고 문갑이라든지, 바구니 같은 생활용품을 만들어 쓴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만드는 과정까지도 아주 꼼꼼하게 갈무리를 해놔서 참 좋더군요.
온양민속박물관 안에서 거의 세 시간 가까이를 둘러봤을 거예요. 전시장을 모두 구경하고 다시 들머리 복도로 나오니, 전등을 몇 개만 남겨두고 모두 껐더군요. 바깥을 내다보니, 어느새 어두컴컴해집니다. 이곳에는 바깥에도 '야외전시장'이 있어 꼭 둘러보고 가야합니다. 안내하는 직원한테 구경 잘 하고 간다고 인사를 하니, 한 마디 건네십니다.
"두 분, 무척 꼼꼼하게 둘러보시네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30여 년 동안 가꾸어온 박물관 야외전시장온양민속박물관은 지난 1978년 10월에 '구정 김원대' 선생이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모습과 생활풍습들을 한눈에 보여줌으로써 우리 민족의 삶의 뿌리를 더욱 단단하게 새기고자 세웠다고 합니다. 어느덧 서른 세 해를 맞았네요. 그동안 바깥뜰에 심었던 나무들이 자라서 울창한 숲을 만들었고, 그 길 사이로 산책도 하면서 옛 풍습들을 볼 수 있는 것들을 전시해두었어요.
옛 여인네들이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던 기자석과 연자방아, 디딜방아, 집안에 외양간과 부엌, 헛간까지도 다 들어있는 강원도에서 볼 수 있는 너와집과 문관석, 무관석, 고인돌 돌탑 등을 두루 다니며 구경할 수 있습니다. 어느새 해는 넘어가고 있고, 빨간 노을이 곱게 내려앉았네요. 저녁이 되면서 날은 더 추워졌지만 어느 것 하나 놓치고 갈 수가 없겠더군요. 사진기 셔터 속도가 안 나올 만큼 어두워지고 있는데도 구경하는 재미가 퍽이나 쏠쏠합니다.
"입장료가 5천 원인데 하나도 아깝지 않다.""그러게 나도 처음엔 좀 비싼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볼거리도 많고 자세하게 알고 갈 수 있도록 해놨네.""어디 한 군데도 그저 지나칠 데가 없더구만.""어쨌거나 자기 오늘 원 풀었지? 그키나 온양민속박물관 얘기를 하더니, 오늘 드디어 원없이 봤구만.""그래그래. 오늘 구경 한 번 잘했다. 그나저나 얼른 가자. 잠자리를 잡아야지 이제 슬슬 배도 고프다."서둘러 박물관을 빠져나와서 또 한참을 걸어갑니다. 온양시외버스터미널 앞쪽에다가 잠자리를 잡아야 하거든요. 그래야 내일 또 찾아갈 곳에 쉽게 갈 수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오늘이 성탄절 이브 날인데, 여관은 제대로 잡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게다가 이런 날은 요금도 비싸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