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첫날 새벽 6시 10분. 포항수협 송도 수산물 위판장을 찾았다.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니 차갑던 바닷바람도 훈훈하게 느껴졌다. 위판장을 찾은 사람들의 새해 인사소리로 장내가 떠들썩하다.
잠시 후 "땡그랑 땡그랑" 종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경매가 시작됐다.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매인들과 중매인에게 수수료를 주고 수산물을 사려는 중간상인들이 펄떡이는 활어가 담긴 노란 바구니로 모여들었다. 새해 첫날이라서 그런지 구경나온 시민들도 눈에 띈다.
위판장 바닥에는 우럭, 문어, 가자미, 한치, 백고동, 물곰, 농어, 아구 등 맛좋고 싱싱한 생선들이 노란 바구니에 담겨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잡어'라고 불리는 이름 모를 생선도 있었다.
경매사가 갈고리로 물고기를 가리키며 추임새를 넣듯 "자, 농어 잡아! 농어 두 마리! 자, 농어 잡아!"라고 외치는 소리가 송도 새벽 하늘에 울려 퍼진다.
"아줌마, 이거 오천시장가면 팔린다. 빨리 가(갖고) 가라"라고 새해 분위기를 돋우려는 듯 애드리브까지 동원한다. 그러자 160번 중매인은 남이 볼세라 조끼 속으로 손을 가져가 수신호를 한다. 경매사는 "9만 2천 원. 오천 시장 160번"이라며 자기 껏 주듯 가져가라고 한다. 경매사는 선주와 미리 합의해 적절한 값에 낙찰받은 물고기에 덤으로 '잡어'를 얹어 주기도 한다.
경매는 경매사, 경매보조원(속기사)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뤄 진행된다. 모두 포항 수협의 직원들이다. 두 사람의 팀워크가 잘 발휘돼야 경매도 순조롭다. 특히, 경매사의 위치는 무척 중요하다. 그날 시세가 경매사의 손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 중매인이 경매 도중 가격을 잘못 불러 주의를 받았다. 경매사는 "새해라서 봐준다"고 웃으며 넘겼다. 그 중매인도 미안한 듯 멋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한 중매인에게 물어보니 겨울에는 속이 얼어서 수신호를 실수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했다. 반대로 경매사가 중매인의 수신호를 놓치는 때도 있다. 이럴때면 선주가 손해다.
경매사는 선주와도 가깝고 중매인들과도 '형님아우'하며 지내지만, 경매가 시작되면 안면 몰수다. 손덕노 경매사는 "경매에 들어가면 모자의 번호와 손가락만 보인다"고 했다. 노련한 목소리와 몸놀림으로 매끄럽게 가격 결정을 한다. 25년 경력의 베테랑 경매사다웠다.
경매사와 같이 움직이는 경매보조사는 경매가 끝날 때마다 구매일지에 결과를 메모하느라 분주했다. 간발의 차로 낙찰의 기회를 놓친 중매인의 한숨소리가 흘러나온다. 새해 첫날이라서 그런지 이내 웃으며 다음 경매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경매가 끝나갈 무렵 아주 작은 목선 하나가 위판장으로 들어왔다. 저런 배로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배 밑 저장고엔 갓 잡아온 고기가 가득했다. 원용호에서 잡은 고기는 약 15만 원에 낙찰됐다. 낙찰전표를 받은 원용호의 박두원 선장의 입가에 미소가 배어 나왔다.
송도 위판장의 경매는 오전 8시 30분께 끝났다. 위판장의 활어들은 매매인의 손을 거쳐 수산물센터와 지역의 시장으로 팔려나간다. 새해 첫날 송도 수산물 위판장의 첫 위판은 20종의 활어 4t 여가 들어와 3500만 원의 위판고를 보였다.
포항수협 김석한 경매사는 "좋은 활어들이 많이 들어와 올해는 우리 어민들의 한숨이 즐거운 비명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첫 경매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어느새 새해를 알리는 해가 떠올라 하늘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이날 정오 무렵 새해를 자축하듯 대보면의 한 정치망에서 밍크고래가 한마리가 혼획됐다. 이 고래는 4천 400만 원에 낙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