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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야네에서 만난 할머니.
아비야네에서 만난 할머니. ⓒ 김은주

 아비야네에서 만난 할머니. 사진 찍을 때 적극적이었다.
아비야네에서 만난 할머니. 사진 찍을 때 적극적이었다. ⓒ 김은주

아비야네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란 전통 마을입니다. 이란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도 합니다. 해발 4천 미터의 칼카스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인데 이란의 전통가옥형태를 잘 간직한 마을입니다. 아비야네는 카샨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으며, 가는 방법은 택시 대절이 일반적입니다.

우리는 택시 두 대를 대절해서 한 차에 다섯 명씩 탔습니다. 앞에 한 명, 뒤에 네 명이 끼어 앉았습니다. 안 그래도 좁은 택시에 네 명이나 앉으니까 많이 비좁았습니다. 빈틈없이 낀 엉덩이도 아프고 꼼짝달싹할 수 없는 다리도 참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이국적이고 아름다워서 많은 보상이 됐습니다.

눈 덮인 평야를 달리면서 <파고>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파고>는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끝없는 지평선만 보이는 평야를 오직 차 한 대가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풍경 속을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산악지대인 우리나라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었습니다.

눈이 안 덮였다면 황무지였을 땅이 눈이 덮이면서 특별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달려가자 지평선 위로 눈 덮인  산이 삐죽 봉우리를 내밀었는데 사진에서 본 히말라야 영봉처럼 어떤 영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산은 아주 높았습니다. 아비야네를 둘러싸고 있는 산인 칼카스산이냐고 했더니 기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얼마쯤 달리다가 앞자리에 앉아있던 우리 일행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기사는 매우 놀란 모습으로 "폴리스" 하더니 목을 베는 시늉을 했습니다. 이곳을 찍으면 경찰한테 죽을 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탄즈 벌판이었던 것입니다. 이란의 핵 개발지로 우라늄 농축액이 저장돼 있을 지도 모르는 그 마을이었던 것입니다. 뉴스의 현장에 오다니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마침내 아비야네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갑자기 매섭고 차가운 바람이 몰아쳐 화들짝 놀랐습니다. 아비야네는 이란에서 특히 추운 지방에 속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겨울이면 다른 곳으로 가서 겨울을 나기도 한다고 할 정도로 이란에서 가장 추웠던 곳으로 기억됩니다. 동북아시아의 추운 지방에서 온 우리도 추위를 느꼈을 정도니 더운 나라인 이란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상당할 듯 했습니다. 우리가 여행 온 1월은 비수기에 해당하고, 여행자는 우리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마을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골목길에는 눈을 치우는 할머니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겼습니다. 할머니는 우리가 사진 찍기를 원하자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려서 뭔가를 따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꽃무늬 히잡을 두르고 있었고, 남자들도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흙집이 늘어선 골목길에서 꽃무늬 히잡을 두른 노인이 있는 풍경은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듯 착각을 주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착각을 일으킬 만큼 그들의 겉모습은 완벽하게 과거의 삶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겉모습은 그럴지 모르지만 내면은 꼭 그렇게만 볼 게 아니었습니다. 한 할머니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관광객에 돈을 요구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데 가장 유명한 마을에서 그런 할머니를 만난 것입니다. 아마도 살기 어려워서 그런 모양인 것 같았습니다. 농토라고는 보이지 않는 고원 마을에서, 기댈 것이라고는 관광객의 호주머니뿐일 테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씁쓸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을은 정말 예뻤습니다. 내가 그리는 유토피아의 풍경입니다. 흙으로 만든 집, 격자무늬 창문, 그리고 작고 예쁜 화분을 얹은 발코니,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한 삶, 정말 흙처럼 맑아지고 여유로워질 것 같았습니다.

골목을 따라 계속 올라갔습니다. 집들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달랐습니다. 획일적이지 않았습니다, 창문의 모양도 미묘한 차이가 있고, 창마다 크기도 다르고 창살에도 변화가 있었으며 전체적 윤곽도 다 달랐습니다. 흙과 나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집이라는 측면에서 통일성을 보이지만 디테일 면에서는 각각의 개성을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미묘한 차이는 야즈드의 구시가지에서도 경험했던 것입니다.

역사가 오래됐다는 것도 의미 있지만 예술적으로도 가치 있고,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게 아마도 제대로 평가받아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 같습니다. 동화의 주인공이 되기에 정말로 좋은 마을이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골목길에는 사람들 모습이 간간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길 위에서 우린 감자를 먹었습니다. 아침에 부산을 떨면서 삶은 감자인데 이미 차가워졌지만 배가 고픈 다음이라 눈 위에 서서 먹는 감자 맛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감자를 먹고 나서 차갑게 얼은 몸도 녹이고 따뜻한 차도 마실 겸 가까운 찻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역시 비수기라서 넓은 찻집에는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난로에서는 장작이 타면서 나무향이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아늑한 분위기였습니다. 주인은 계피맛이 나는 차를 내왔습니다. 이 차는 예전에 마슐레 사다페네 집에서 마셨던 차인데 이란인이 즐겨 마시는 차 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이란인들처럼 노란 각설탕 하나를 입에 물고 차를 마셨습니다. 뜨거운 계피차와 설탕이 만나 맛있는 차 맛을 완성했습니다. 눈 위에서 차갑게 얼어있던 다리를 카펫 위에서 펴고 따뜻하고 맛있는 차를 마시니까 정말 행복해졌습니다.

 아비야네 골목길. 흙집 사이에 생겨난 골목길이 정겹다.
아비야네 골목길. 흙집 사이에 생겨난 골목길이 정겹다. ⓒ 김은주

 아비야네의 흙집. 창문이 참 예쁘다.
아비야네의 흙집. 창문이 참 예쁘다. ⓒ 김은주

아비야네 구경을 마치고  카샨으로 돌아갈 때 우리 일행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노란 택시와 하얀 택시를 대절해서 왔는데 우리가 타고 온 노란 택시는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 운전을 하고 하얀 택시는 젊은 사람이 운전을 했습니다. 모두 우리가 타고 온 노란 택시에 타기를 희망했습니다.

이렇게 모두들 노란 택시를 고집하는 이유는, 하얀 택시 기사 때문입니다. 이 택시 기사에게서 어찌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그 차에 탔던 사람들은 차에서 내리자 두통약을 먹어야 했고, 올 때 그 택시에 탔던 작은 애도 머리가 아프다고 징징거렸습니다. 택시 기사의 머리 냄새를 안 맡으려고 너무 용을 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심하기는 심했습니다. 하얀 택시 기사가 잠시 앉았다가 간 우리 차 안에 그의 냄새가 남아있었습니다. 정말 지독한 냄새였습니다. 오랫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을 때 나는 머리 냄새와 진한 향수 냄새, 커리 냄새, 양고기의 누린내 등 여러 가지 냄새가 섞인 냄새인데 작은 애처럼 그의 머리 뒤에 앉아서 직접 냄새를 맡았으면 죽을 지경이겠다 싶었습니다.

대체로 이란 사람들에게서는 장미향수 냄새가 났습니다. 장미향수 가게가 우리나라에서 김밥가게처럼 많을 정도로 이란인들은 다른 건 못해도 향수를 뿌리는 것 같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공장소에서 좋은 냄새가 나기 어려운데 이란에서는 향수 냄새가 날 정도로 이란인들은 청결하고 좋은 냄새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나 유별난 사람 하나씩은 있다고, 하얀 택시 기사는 특별한 냄새를 소유한 이란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냄새 때문에 우리는 아바야네 가는 길을 더욱 특별하게 추억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난 아비야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때도 냄새나는 기사 아저씨가 운전하는 택시는 안타게 됐습니다. 차를 타고 카샨으로 돌아가면서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옆 차를 보니까 모두 거의 가스에 질식한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사람은 태평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습니다. 참 무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네 명은 최악의 기분인 것 같았습니다. 웃음을 잃은, 조금은 화가 난 모습으로 모두들 묵묵히 현재를 참아내는 모습이었습니다. 남의 불행에 웃어서는 안 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란 여행은 지난 2009년에 다녀왔습니다.



#아비야네#흙집#카샨#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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