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다. 한파도 다소 누그러졌다. 집에서만 보내기에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집을 나선다. 소박한 곳을 떠올려본다. 한적한 곳이라면 더 낫다. 겨울에 가면 더 운치 있는 곳, 장성 호반으로 간다.
장성호는 백암산과 입암산 계곡을 흘러내린 황룡강의 상류를 막아 만든 호수다. 천년고찰 백양사로 널리 알려진 전남 장성에 있다. 장성읍에서 20여 분 거리다. 백양사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호반을 따라 드라이브 하는 묘미가 색다르다. 겨울여행의 호젓함을 선사한다. 호반에 놓인 수변데크(나무다리)를 따라 걷는다. 한량처럼 여유도 묻어난다. 호젓한 겨울이 더 정겨워진다.
문화예술공원이 보인다. 장성호 관광단지에 있는 공원이다. 이 고장 출신의 임권택 감독 청동 조형물이 먼저 반긴다. 동상 앞으로 잔디광장도 드넓다. 아이들과 함께 뛰놀기 좋다. 눈싸움을 하기에 좋다. 눈사람을 만들기에도 제격이다.
조각공원으로 오른다. 시와 글, 그림, 어록 등을 테마로 조각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김소월과 윤동주, 헤르만 헤세의 운율이 흐르고 있다. 광개토대왕과 최치원, 화가 장승업과 신윤복도 만날 수 있다.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도 엿볼 수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어록도 조각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시대와 장르를 넘어 함께 살고 있다. 모두 역사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분들이다.
이 분들의 작품이 새겨진 조각상이 100여 점 된다. 서구적인 느낌을 주는 조각상에 새겨진 동양적인 글귀와 그림이 펼쳐진다. 색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작품을 감상하며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시간가는 줄 모른다.
조각공원과 장성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도 있다. 한파에 얼어붙은 호수가 온통 하얗게 보인다.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답다. 도로변에서 바라본 호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여기서 백양사도 지척이다. 자동차로 5분 남짓 거리다. 지난 가을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였던 단풍터널이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풍경도 환상적이다. 눈에 덮인 절집도 별천지다. 겨울산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백양사를 돌아보고 나와 신촌마을로 간다. 장성읍 방면으로 가다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7년째 주인 없는 양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마을이다. 1년 전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로 가게를 지었다. 여전히 주인이 없다. 외상장부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들이랑 같이 양심가게를 체험해 본다. 색다른 경험이다.
가까운 곳에 필암서원도 있다. 장성군 황룡면에 있는 필암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다치지 않은, 호남 유일의 사액서원이다. 크게 꾸미지 않은 조경수가 수북하게 쌓인 눈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멋이 절집에 버금간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백비(白碑)도 지척이다. 조선시대 오랜 세월 고위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가난하게 살았던 박수량 선생의 묘비다.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으로 고위공직자들이 마땅히 찾아봐야 할 곳이다. 황룡면 금호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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