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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캣츠>의 한 장면.
뮤지컬 <캣츠>의 한 장면. ⓒ

장장 세 시간이나 이어졌던 뮤지컬 <캣츠>는 그 환상적인 군무만으로도 티켓값을 충분히 상쇄했다. 배우들은 무대 위, 아래, 객석 좌우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튀어나와 관객들을 놀래켰고, 살금살금 걷는 걸음걸이나 털을 핥는 모습은 영락없는 고양이었다.

이따금 무대를 이탈해 우리 중 하나와 춤을 추다 자리를 빼앗고 딴청을 피우기도 했고, 삼지창을 들고 배를 찌르거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괴롭히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쓰레기를 던지고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앙큼한 고양이들을 좀 보라. 우리는 뒤통수를 쿵 하고 얻어맞은 기분이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맸지만, 그 와중에도 웃음이 번졌다. 이쯤 되면 '본다'가 아닌 '같이 논다'고 해야 할까?

<캣츠>는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공연이지만, 그 명성에 비해 서사는 지극히 단순하다. 이야기의 큰 골격은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젤리클 축제에서 젤리클 고양이들이 '새로운 삶'을 얻을 고양이를 선출한다는 것이다. 많이 빈약한 드라마 탓에 <캣츠>는 30년 전 기획 단계 때부터 흥행에 대한 우려가 컸다고 한다. 강력한 기승전결에 익숙한 관객들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을지 불안했던 것이다. 투자자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항간에는 어린이 뮤지컬이라는 루머마저 돌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캣츠>는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힘입어 영국 웨스트엔드 사상 22년 최장 공연의 기록을 세웠고, 미국 브로드웨이를 거치며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프리뷰 때까지만 해도 장기 흥행을 예상했던 이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히 신화적인 흥행 기록이었다. 관객들은 도대체 <캣츠>의 어떤 면에 그토록 매료되었던 것일까?

<캣츠>는 빈약한 서사 대신 환상적인 퍼포먼스와 관객 교감으로 관객들에게 판타지 세계를 선사했다. 인기쟁이 럼 텀 터거, 뚱뚱보 버스토퍼 존스, 그리고 마법사 미스터 미스토펠리스 등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이 저마다 사연을 들고 나와 퍼포먼스를 펼친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다 새로운 무대다.

그래서 우리는 <캣츠>를 보며 럼 텀 터거의 마성 넘치는 노래에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버스토퍼 존스를 보며 배 찢어져라 웃음보를 터뜨릴 수도 있다. 또 미스터 미스토펠리스의 마법쇼에 환호성을 지르다가도 극장 고양이 거스의 젊었을 적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칠 수 있고, 철도역 지킴이 스킴블샹크스의 환상적인 기차 퍼포먼스에 다시금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캣츠>는 그렇게 우리를 온갖 감정의 아수라에 빠뜨린다.

멜로디가 정말 좋아 작곡가 엔드류 로이드 웨버가 내심 흥행을 바랐다던 곡, 그리자벨라의 '메모리'가 끝나면 이 공연도 막바지에 접어든다. 젤리클의 선지자 올드 듀터러너미를 필두로 모든 젤리클 고양이들이 '고양이들에 대한 예의'를 열창한다.

그런데 이 마지막 군무는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좀처럼 우리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던 고양이들이 이 순간만큼은 일제히 우리 하나하나와 직접 눈을 마주치며 춤을 춘다. 그 순간 저들과 우리들 간에 보이지 않는 어떤 끈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처럼 말하고 춤추는 고양이들, 저마다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 지금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이 고양이들! 이들은 불과 몇 분 전까지 나와 몸을 맞대며 장난까지 쳤던 고양이들이다. 판타지는 무대에 국한되지 않고 그렇게 현실이 된다. <캣츠>는 불시에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지난 3개월 간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한 <캣츠>는 2011년 12월 31일 막을 내렸다. 다가오는 1월 13일부터 부산 공연을 시작으로 광주, 대전, 인천 등 지방 순회 공연에 나선다고 한다. 전 세계가 사랑한 공연 <캣츠>. 이번엔 당신 차례다.


#캣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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