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지 동물 중 용(龍)만이 유일하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용을 집어넣은 것일까. 예전에는 용을 실제로 보았다는 생생한 기록들도 많았고 실제보다 더 실제와도 같아 무엇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모호할 정도다. 과연 용은 실제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상상의 동물일까.
충남 천안과 경기 평택이 접하는 경계에 국보 7호 봉선홍경사갈기비가 있다. 이곳은 천안 최북단에 자리 잡고 있는데, 황량하고 스산한 공기가 먼저 맞아 준다. 여기에 고려 현종은 1026년, 아버지 안종의 유지를 받들어 여러 길이 만나는 요충지이지만 갈대가 우거진 늪이 있어 강도와 도적들이 창궐해 실제로 왕래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던 이곳에 불법을 펴고 길가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와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이라는 여관을 지었다. 현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봉선홍경사갈기비를 세웠다.
이 비석의 귀부(龜趺)는 용의 아들 비희(贔屭)로 용두(龍頭)에 거북이 몸통과 뱀의 꼬리를 조합해서 만들어졌다. 얼굴을 서쪽으로 돌린 형상으로 조각한 것이 큰 특징이다. 얼굴의 옆면은 눈동자를 치켜뜨고 노려보는 눈매가 위압적이다. 또한,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어금니를 꽉 다문 채 입술을 다잡는 근육의 표현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런데, 고개 돌린 앞면으로 돌아서 보면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 것 같은 반전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는 마치 십일면 관음보살이 여러가지 권능과 서원을 드러내기 위해 자상(慈相, 자비로이 웃는 모습), 진상(瞋相, 성낸 모습),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짓는 모습), 대폭소상(大暴笑相, 크게 웃는 모습)으로 표현했듯이 진상과 백아상출상을 한 장면에 표현한 것 같아 흥미롭다. 느슨하고 무방비한 경계(境界) 위에 상존하는 허점과 무질서를 미리 대비해 경계(警戒)하고 단속하되 강압이 아니라 중생의 이해를 구하고 온화한 교화를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 같아 마음을 울린다.
요즘 우리는 선진국 진입 산통으로 겪는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인 정체(停滯)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 전역의 경계(境界)에 내밀해 있는 숙제들을 무거운 것을 지기 좋아하는 비희의 온화한 경계(警戒)로 슬기롭게 헤쳐 나아가 비룡승운(飛龍乘雲)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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