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디언식 이름 짓기'가 유행이란다. 그나마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이른바 '인디언'이라 불리는 '미국 원주민'은 약 202종족, 이들이 쓰는 언어만 300여 종에 이르니 어느 원주민 말로 이름을 짓는지는 모르겠다.
'이름 짓기' 유행은 급기야 '아즈텍식·중세시대식·일본식 이름 짓기'로 이어지며 온라인을 후끈 달구고 있다.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엔 '이름 짓기 종결판'이 출현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천부인권의 첫 상징처럼 귀히 여기는 한국. 이 사회에서 느닷없이 불고 있는 '이름 짓기' 열풍엔 어떤 사회적 함의가 들어있을까.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근대국가가 품었을 법한 합리적 이성마저 거세하는 병영국가였다. 민주주의의 원리인 토론과 합의는 독재자에 의해 원천봉쇄됐다. 심지어 독재자와 다른 입장을 가진 자는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한 뒤 감옥에 갇혀야 했다. 이 모든 원천봉쇄와 학살, 고문은 '빨갱이'라는 낙인찍기가 전제되었다.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은 '빨갱이'라고 불리는 순간 모든 것이 하나로 규정되어지는 '가학적인 낙인찍기'사회였다. 이 낙인찍기는 지금까지 이어져 '종북좌파' '외부세력'이라는 신조어가 유력 일간지 헤드라인을 도배질하기도 한다.
'인디언식 이름 짓기' 열풍엔 나름 이유가 있다이른바 '인디언식 이름 짓기' 열풍엔 이러한 근대적 낙인찍기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녹아 있다. 이름 짓기 놀이를 즐기는 이들은 촛불집회와 희망버스를 경험한 이들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염려 때문에 촛불 하나 들었을 뿐인데, 나도 언젠가는 정리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아픔을 겪는 이들을 찾아갔을 뿐인데 '종북좌파' '외부세력'이라는 무시무시한 딱지를 붙였다.
역설적이게도 정체성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면 될 뿐이란 것을 '낙인찍기'를 당하면서 깨우친 것이다. 그래서 '인디언식 이름 짓기'를 하며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내가 불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호적에 등재된 이름 말고 나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지을 수 있다는 경험이 '신기하고 재밌'다.
'탈근대(post modern)'의 요체인 정체성은 설명하면 될 뿐이라는 철학의 기초를 '인디언식 이름 짓기' 놀이를 하며 온 사회가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국가 성립 이후 약 60년 만이다.
이와 같은 '인디언식 이름 짓기'의 긍정성을 한없이 예찬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시리고 아프다. 우리가 '이름 짓기'라는 즐거운 놀이를 통해 사회적 각성을 하는 동안 한 사회적 존재의 아픔과 슬픔은 까마득히 잊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인디언'이라 불리는 미국 원주민 이야기다.
'보호구역' 내에서 사실상 사육당하고 있는 인디언들1830년 5월 26일 미국 원주민에게 잔혹한 시련이 시작된다. 미국 대통령 앤드류 잭슨이 '인디언 이주법'에 서명한 것이다. 미시시피 강 동쪽에 살던 인디언 부족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강제 이주시킨다는 것이 이 법의 골간이다. 1783년 파리 조약으로 미국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이후 급속히 늘어난 앵글로색슨계의 이주자들의 정착을 위해 원주민을 내쫓는 법이었다. 이 법에 의해 약 10만 명에 이르는 원주민들이 비옥하고 정든 고향 땅에서 내쫓겼다.
이 강제이주가 얼마나 잔혹했는지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은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1838년 원주민 체로키 족은 오클라호마에 있는 '인디언 거류지'로 강제 이주 당했다. 이 과정에서 1만5000명 부족 중 약 4000명이 사망했다. 짐승의 거처만도 못한 숙영지에서 병으로 죽거나 사소한 불만을 말하거나 미군에 항의하다가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1851년 미국 의회는 '인디언 전유법'을 통과시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설정하는 야만의 법이다. 이 법에 따라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지정한 약 310개의 '인디언 보호구역' 내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디언 보호구역' 내에서 교육은 무료이지만 미 정부는 결코 이들에게 직업 알선 등 노동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성인이 된 원주민 대부분이 하는 일 없이 '보호구역' 안에서 마약과 음주로 소일하며 사실상 사육 당하고 있다. 2008년 현재 약 150만 명의 미국 원주민이 '보호구역'에서 이처럼 살고 있다.
"당신들은 집을 지어주고 보건소를 만들어줄 테니 주거지역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원치 않는다. 나는 바람이 거칠 것 없이 불어오고 햇빛을 가리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울타리도 없고 모든 것이 자유롭게 숨 쉬는 곳이다. 벽 안에 갇혀서 죽기보다는 거기서 죽고 싶다." - 얌파리카 코만치 족의 열 마리곰,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중에서
200년만에 인디언들에게 사과한 미국 정부고향 땅에서 살겠다며 미국 정부의 강제이주를 거부했던 원주민들에겐 가혹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미국 원주민의 잔혹한 시련사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사건이 바로 '운디드니 대학살'이다.
학살은 1890년 12월 29일, 미군에 의해 운디드니 언덕에서 저질러졌다. 미군 제7기병대 500여 명은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미군은 1명의 수족 용사가 칼을 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차별 사격을 했다.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 200명 이상의 수족이 운디드니 언덕에서 학살당했다.
"이 전쟁은 우리 땅을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거저 뺏으려 쳐들어온 자들, 이 땅에서 수없이 못된 짓을 저지른 큰아버지의 자식들이 일으킨 전쟁이다. …우리가 바란 것은 다만 내 땅에서 평화롭게 살며 우리 부족의 행복과 안정을 지키는 것뿐이었지만 큰아버지는 우리를 죽이는 것에만 눈이 벌게진 군인들로 이 땅을 가득 채웠다." - 브룰레 수우족의 점박이꼬리,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중에서
미국 정부는 지난 2010년 "건국 초기 정부가 원주민을 탄압하고 강제이주 시킨 점에 사과한다"고 공식 사죄했다. 약 200년 만에 국가에 의한 학살과 인권탄압을 인정한 것이다.
'인디언식 이름 짓기' 놀이를 하며 미국 원주민 이름 하나하나에 피와 눈물로 스며있는 슬픔과 아픔의 역사를 함께 돌아봐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참, 원주민 '점박이꼬리'님이 말하는 '큰아버지'는 미국 대통령이다. 원주민들은 대통령을 '큰아버지'로 부르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강제이주와 잔혹한 학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