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철이 형.
우린 만난 적이 없지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형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나보다 스무 해도 넘게 앞서 태어난 당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건, 아직도 형의 젊고 선한 얼굴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일 거예요. 당신의 친구들은 이미 내 아저씨뻘이 됐음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형을 만날 기회는 있었습니다. 학교 중앙도서관을 지나 사범대로 가는 길에 가만히 하늘을 보는 형의 흉상이 서 있습니다. 한가할 때면 바삐 지나다니는 사람들 옆으로 슬쩍 비켜서서 형을 곁눈질하곤 했죠.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죽었을 때 그는 스물세 살이었다.'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가 아니라, 그냥 꽃이었을 시절. 고문타살 의혹을 부인하며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리느냐"고 지껄였던 그때 내무부 장관은 형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나 봅니다. 그가 옳았는지도 몰라요. 말했지만 그때 형은 사람이 아니라 꽃이었으니까.
1987년, 아직은 대학생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시기에 그것도 서울대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은 어디가서 내세워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아마도 형에게 더 큰 책임감으로 다가갔던 걸까요. 책임감은 마침내 자신의 젊음을 기꺼이 내던지는 열정이 되어 형을 거리로 이끌었습니다.
시대를 호흡하는 셀 수 없는 젊은이들이 형과 함께 거리에 있었습니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그곳에서 그들은 경찰들과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벌였죠. 그야말로 목숨을 건 그 술래잡기 끝에 형은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형과 다른 수많은 이들의 핏값으로, 그 가족들과 친구들의 눈물과 고통으로 낡은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배와 또 다른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숨바꼭질을 한 덕분에, 우리는 아무런 걱정 없이 거리로 나설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바랐던 최소한의 정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스물셋 형이 흘린 시뻘건 피 위에서 가능했습니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 권리가 사실은 죽은 이들에게 진 빚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형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하지만 형의 죽음은 내겐 (이렇게 말하는 저를 용서하세요) 조금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통령을 국민이 투표로 뽑는 것을 요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 책상을 치니 사람이 죽더라는 썰렁한 농담 같은 이야기로 누군가의 죽음을 숨기려 했던 그 시대가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가능했던 시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제게는 믿기지 않을 따름입니다.
하늘에서 보는 한국의 모습은 어떤가요? 형이 살던 그때보다 많이 변했나요? 형이 다녔을, 침묵조차도 뜨거웠던 대학가는 예전 같지만은 않습니다. 정의를 외치며 형과 뛰어다녔던 젊은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1987년 6월의 함성 이후 태어난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확실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이겠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자립이라는 말 속에는 대학등록금, 취업난, 면접 준비, 스펙, 경쟁, 그리고 또 경쟁입니다.
한편으로 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형들의 죽음이 무색할 만큼, 세상은 여전히 불의합니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데에 써야 할 권력자들은 그 힘을 자기 자신의 사익을 위해 쓰고, 쥐고 있는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합니다. 대기업은 수많은 노동자들과 하청 중소기업의 기여를 인정하기는커녕 성공의 열매를 독차지하려 합니다. 소수의 가진 이들이 다수를 소외시키고, 그 격차는 점점 커져만 갑니다.
종철이 형.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뛰어드는 용기 대신,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으로 세상의 잘못을 모르쇠한다면, 형은 저에게 화를 내겠죠. 그래도 형이라면 왠지 저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고 싶어요.
당신에게 동지가 있었듯이 나에게도 동지가 있습니다형. 우울한 척했지만, 실은 아주 잘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왜냐고요? 저는 형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으니까요. 세상의 어둠을 보며 자신을 잃을 듯 슬퍼지다가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있는데, 무엇이든 상상하고 도전해볼 수 있는데, 그리고 형에게 수많은 동지가 있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좋은 친구들이 있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겠어요.
2012년은 분명 의미있는 한 해가 될 거예요. 형의 희생으로 열어젖힌 시대의 유산을 뛰어넘어, 안경 너머로 비치는 형의 그 눈빛을 닮은 젊은 세대가 다시 한 번 시대의 주역이 될 겁니다. 얼굴 없는 형과 형의 동지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실천이 모여 군사 독재를 끝장냈지요. 그와 같이 얼굴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재능과 아이디어로, 온라인과 SNS라는 무기로 우리 삶을, 이 시대를 새롭게 꾸려나갈 거예요.
지난 몇 년간 선거에서, 시위 현장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어리게만 취급받았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제 그것은 하나의 흐름이 됐어요. 많은 젊은이들이 (물론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인 다른 분들도 함께) 명동으로, 부산으로, 시청 앞 광장으로, 대학 본부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기성세대가 제시한 행복의 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새롭게 일구어낼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온몸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섰던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 열정만큼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요.
곧 설이네요. 형의 넋도 고향 땅 부산을 밟으시겠죠. 그때마다 형을 가슴에 묻고 또 묻어야 하는 가족들의 아픔을 저는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소리 없이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하는 형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부디 살펴주시기를, 그리고 그들을 살피시는 형의 넋도 평안하시기를 빌어봅니다.
부디, 평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