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시에는 36마리의 '용'이 산다. 삼척시는 2012년 용의 해를 맞아 용과 관련한 지명이 무려 36개나 된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삼척군지명유래지에 21개, 삼척시지명지에 3개, 한글학회지명총람에 12개가 있는 걸 확인했다.
삼척시는 예로부터 고대왕국이 웅거하던 지역으로 지금도 그 역사가 연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우산국(울릉동)을 신라 영토로 끌어들인 이사부가 이 고장 출신이다. 삼척시에 이처럼 용과 관련한 지명이 다수 존재하는 것은 그 같이 오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은 물과 관련이 깊은 동물이다. 용이 승천하기 전에 이무기 형상을 하고 있을 때는 물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삼척시에서 조사한 지명 중에는 특히 '용소'라는 이름과 같은 '소(沼)' 이름이 14개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바위 이름으로 9개, 굴 이름으로 5개로 많았다. 바위는 대부분 용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리고 굴은 용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용'자 이름이 붙었다. 용자가 붙은 굴 역시 물과 관련이 있어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곤 하던 곳이다.
그 중 성내동 용문바위는 용이 용궁으로 돌아갈 때 바위를 뚫고 지나갔다 해서 용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용문바위는 실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바위다. 관동팔경 중에 하나인 죽서루가 있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서 이 바위 구멍을 통과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관광객들이 자주 찾아온다.
삼척시에는 지명뿐만 아니라 용과 관련한 전설도 여러 가지가 전해진다. 삼척시 증산동에 있는 '수로부인공원의 해가사 터'와 '죽서루 경내의 용문바위', 그리고 '근덕면의 초곡동굴'과 '도계읍의 미인폭포'가 용에 얽힌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해가사의 전설은 길을 지나가던 한 노인이 천길 바위 절벽 위의 꽃을 꺾어다 바친 '수로부인'과 관련이 있다. 그 수로부인이 미모가 지나치게(!) 뛰어났던지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신물(神物)이 나타나 납치해 갔다고 한다.
한 번은 먼 길을 가다 임해정이라는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용이 나타나 부인을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자 또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해가사에서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고 지팡이로 강 언덕을 치면 부인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일러준다.
남편이 그 노인의 말대로 했더니, 용이 바다 속에서 부인을 모시고 나와 되돌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 부인의 옷에서 풍기는 향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단다. 용이 인간의 미모를 탐낼 정도면, 그 미모도 이미 인간의 것이라고는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부인을 모시고 살면서 늘 노심초사해야 하는 남편의 운명이 안쓰럽다. 전설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용의 해, 용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나 전설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두는 것도 여행의 재미를 더하는 한 방법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