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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진화살> 포스터
<부러진화살> 포스터 ⓒ 아우라픽쳐스
사법부가 분주하다. 19일 개봉한 정지영 감독의 새 영화 <부러진 화살>을 두고 당시 사건과 관련한 사실관계와 대응방침을 각급법원에 전파하고 있다고 한다. 제2의 '도가니 현상'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도가니>의 경우 범죄자와 이를 단죄하지 못하는 사법부의 모습이 동시에 그려진다면, 영화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 자체가 '법을 지키지 않는 집단'으로 그려져 어쩌면 더 큰 파장이 예상된다.
사실 이러한 논란은 3년 전에 일어났어야 했다. 이번 정 감독의 작품이 '법정실화극'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영화는 영화다. 모든 장면이 사실과 일치한다고 볼 수 없고, 그렇게 봐서도 안 된다. 주인공의 이름도 현실의 '김명호'와 닮은 '김경호'일뿐. 그래서 영화를 영화로 보지 못하고 사실관계를 바로 잡겠다는 사법부의 모습이 우스워지는 것이다. 나서려면 지난 2009년 또 다른 하나의 <부러진 화살>(서형 저, 후마니타스 펴냄)이 발간됐을 때 나서야 했다.

르포작가 서형(필명, 38)씨가 쓴 이 <부러진 화살>은 이른바 김명호 교수 '석궁 사건'의 공판 기록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지켜본 사람들의 목격담이기도 하다. 분명 상상력이 가미된 영화와 다르다. 물론 작가의 해설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책에 나오는 판사와 변호사, 검사의 이름은 모두 실명이며 이들의 말은 지어서 쓴 게 아니라 실제 대화를 그대로(또는 정리해)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보다 서형씨의 <부러진 화살>이 당시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가까이 있다.

정지영 감독은 최근 각종 인터뷰에서 서형씨의 르포 <부러진 화살>이 원작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문성근씨의 권유로 책을 보고 나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고, 또 참고는 했지만 대부분 다시 사건과 관련한 각종 기록들을 보고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고 한다. <부러진 화살>이라는 제목은 서형씨의 양해를 구했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의 원작 개념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영화와 책을 모두 보면 두 작품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독자와 관객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같은 석궁 재판, 처음부터 재밌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 아우라픽쳐스

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 18일,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서형씨와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2시간 가까운 통화에서 서형씨는 책에 대한 아쉬움을 계속적으로 표현했다. 책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서형씨는 "사법부는 정작 책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괜히 키워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며 "영화가 관심을 받고 이슈가 커질 거 같으니까 (사법부가)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형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책과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와 박훈 변호사에게 가진 불편한 감정도 털어 놓았다. 그는 "2009년 책이 완고돼서 보여줬는데 두 사람 다 마음에 안 든다고 난리가 났다"며 "김 교수는 저에게 작가 자질이 없다며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막말을 쏟아냈고 사이가 틀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주인공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책"이라며 "나중에 박 변호사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김 교수는 아직도 아무 말이 없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은 서형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석궁 사건'은 어떤 계기로 취재하게 됐나?
"석궁 사건 자체는 2007년 1월 16일 벌어졌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 후에 취재 주제를 정하는데 주로 실향민을 만나거나, 빈민가를 다니다가 1인 시위하는 사람들을 취재하자고 서울로 올라왔다. 직업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졌다. 어디든 정문까지가 내가 갈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처음에 청와대 앞을 갔다가 그 다음 국회로, 다시 대법원 앞으로 갔다. 그때 거기서 석궁 사건을 알게 됐다.

2007년 8월에 7차 공판을 보러갔다. 재판이 너무 재밌었다. 드라마도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첫 회가 재미없으면 안 보게 되는데 이 재판은 1회가 너무 재밌던 거다. 재판이 재밌으니까 그 다음도 보게 되고 계속 빠져 들었다. 그냥 보기만 한 게 아니라 공판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걸 또 누리꾼들이 재밌어 한다. 자기들은 그렇게 못하는데 대리만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또 올려주고 싶었다."

- 어떤 식으로 취재를 했나?
"법원에 가기 1년 전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취재를 하고 있었다. 기본은 기록이다. 사람이 말한 걸 그대로 기록하는 거다. 내가 추구했던 게 그런 거다. 석궁 사건 공판도 그랬다. 날 것 그대로를 올리게 됐다."

- 책에는 사실이 적혀 있다. 판사들의 이름도 그대로 나오고, 어떻게 보면 영화보다 더 파급력이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책이 나올 때는 정말 아무 말이 없었다. 사법부도 키워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팔려봐야 몇 천권 안 팔릴 거니까 그냥 무시했을 거다. 사법부가 이번에 대응하는 건 이번 영화가 주목받고 이슈가 커질 거 같으니까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도가니> 후폭풍만 해도 대단하지 않았나. 그때 맛보기를 봤으니까 이번에는 가만히 못 있는 거다. 책 나올 때는 별 말도 없더니…"

"<부러진 화살>, 주인공들에게도 환영 못 받고 출판"

 <부러진 화살>의 저자 서형 작가.
<부러진 화살>의 저자 서형 작가. ⓒ 서형

- 사건 당사자인 김명호 교수를 어떻게 보는가? 오랫동안 지켜본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책에는 '김 교수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고 했던데.
"김 교수는 정말 어려운 싸움을 했다고 생각한다. 대단하다. 박훈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 두 명이 운명적으로 만난 거다. 원칙주의와 엘리트주의로 뭉친 고집 센 두 사람이 사법부와 한 판 붙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좋게만 생각하는 건 아니다. 김 교수는 교도소에서 나온 다음 자기를 면회했던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하는 사람이다."

- 책을 본 두 사람의 반응은 어땠나?
"2008년에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자고 연락이 왔고 김 교수의 동의를 구했다. '공지영씨 처럼 써봐라'면서 글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았다. 박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에 원고가 완성돼서 보여줬더니 마음에 안 든다고 난리가 났다. 김 교수가 자기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편집장처럼 굴었다. '이 표현 빼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도 작가적 자존심이 있는데 말이다. 결국 책이 주인공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채 나왔다. 김 교수가 나에게 작가 자질이 부족하다고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막말을 쏟아내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사과를 요구했지만 이 양반들 성격에 미안하다고 할 거 같나? 박 변호사도 2년 만에 미안하다고 했다. 김 교수에게도 사과를 받고 싶다."

- 김 교수가 법정에서 보인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나?
"김 교수는 모든 것을 옳고 그름으로만 본다. 법조계에도 사법부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이 있고 정의를 추구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사람과는 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김 교수는 자기하고 조금만 다르면 누구든 씹고 넘어간다. 김 교수의 1심 변호를 맡았던 이기욱 변호사는 김 교수의 싸움을 인정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 변호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가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면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잘못이라기보다 싸움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말이다. 방법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보통 사람들도 자기만의 싸움 방법들이 있다. 김 교수는 이를 다르다고 인정하지 않고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내 다음 책인 <법과 싸우는 사람들>을 보고도 '법과 싸우는 게 아니라 판사랑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법과 싸워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법부 내에도 바꾸려는 판사들 있다"

 서형 작가의 <부러진 화살>
서형 작가의 <부러진 화살> ⓒ 후마니타스
- 책 이야기로 가보자. 이혁우, 양승태, 이광범, 박홍우, 이회기, 신태길, 이정렬, 김용호 등 많은 판사들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판사를 평가해 본다면?
"신태길 판사다. 영화에서 문성근씨가 연기하는 역할이다. 솔직히 신 판사에 비하면 문성근씨는 너무 지적이다.(웃음) 신 판사는 기록을 은폐하려고 했다. 그 재판이 기록으로 안 남을 거라고 판단한 거다. 그래서 무지막지하게 김 교수의 주장을 무시해 버렸다. 기록이 남겨질 거라 생각했으면 그렇게까지는 못한다. 그것도 그의 운명이다. 내가 기록하고 있다는 걸 파악하지 못했다.

(신 판사는 공판에서 김 교수의 '석명권' 요구를 철저히 무시한다, ※석명권 : 법원이 사건의 진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당사자에게 법률적, 사실적인 사항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입증을 촉구하는 행위)

-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바라는 게 있다면?
"이걸 기록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책을 쓴 지 오래돼서 딱히 무엇을 바라고 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 기록한 사람이 보는 위치에서 이번 사건은 정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박홍우 판사를 비난한다. 명시적으로 보면 박 판사는 폭행을 당한 피해자다. 피고인은 김 교수고. 박 판사의 진술이 엇갈릴 수 있다. 피해자가 가지는 권리도 있다. 횡설수설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박 판사의 악행을 영화화 했다고 생각한다. 절대 아니다. 문제는 재판부가 이행해야 하는 의무를 하지 않은 것에 있다.

김명호 교수는 지금은 슈퍼스타가 됐다. 뭐가 비극적인가? 굉장히 힘을 가진 사람이다. 이 사건은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고 굉장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뭔가를 바꾸려면 대중의 관심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김 교수는 그걸 가졌다. 곧 책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것도 관심을 많이 받을 것이다.

꼭 김 교수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사법부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판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악성민원인으로 포장하곤 한다. 증거를 안 받아주고 마음대로 기각하고 재판을 끝내버리니까 사람들이 판사한테 소송을 건다. 그들 나름의 생존법이 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다."

- 영화 <부러진 화살>로 사법개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취재하면서 만난 판사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내가 이 작업을 할 때 도움을 준 판사들이 있다. 최고의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진정성을 봐준 거다. 책에 인터뷰를 싣는 것까지 허락해준 문형배 판사는 영화 개봉소식을 듣고 '도가니 후폭풍을 봐서 걱정됩니다, 그러나 사법부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라는 문자를 나에게 보내왔다. 김 교수의 1심 주심 판사였던 이회기 판사도 김 교수의 싸움을 인정하며 출감 후에 근황을 물어보는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판사들 가운데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다."


#부러진 화살#석궁사건#김명호#서형#사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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