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1일은 강원도 홍천 장날이었다. 그것도 설날을 이틀 앞둔 대목장이었다. 대목 장터에 정치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시골 장터가 아니다. 더군다나 올해는 19대 총선이 있는 해이니 빠질 리가 없다.

강원도 홍천군·횡성군 지역구는 전 국회의원과 현 국회의원 맞붙는 4번째 대결을 앞두고 있다. 민주통합당 조일현 예비후보는 전 열린우리당 대변인에 최고위원을 지냈고, 국회 건설교통위원장까지 지낸 2선 의원이다. 18대 총선에서 3선에 실패한 후 절치부심한 채 4년을 기다려왔을 터.

설 대목에 여야 두 예비후보 장터 방문

이와 맞서는 한나라당 황영철 후보는 16대 국회의원선거부터 출마를 시작해 18대에 국회 입성에 성공한 초선의원이지만 현 대변인이다. 게다가 양 후보는 용문-홍천 간 단선 철도유치 관련 사업의 진실 공방으로 이미 뜨겁게 맞붙고 있는 상황이다.

황영철 현 국회의원은 용문-홍천 간 단선 철도 사업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업이었으므로 사업계획자체가 폐기되는 게 마땅하다는 의견이고, 조일현 전 국회의원은 2014년 완공을 목적으로 10억 원의 기초설계비 예산을 반영했는데도 이명박 정부에서 사업비를 집행하지 않은 채 폐기했다는 주장이다. 말 그대로 예선전부터 혈투를 벌이고 있다.

홍천에는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다행이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 얼굴도 환했다. 장터 입구에는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와동 할머니는 도라지와 고사리를 싸들고 와서 난전에 펼쳤고, 목청 좋은 생선 가게 아저씨의 "물 좋은 갈치 사라"는 외침은 장터에 울려 퍼졌다.

 황영철 한나라당 대변인이 홍천 설 대목 장터를 찾아 민심을 듣고 있다.
황영철 한나라당 대변인이 홍천 설 대목 장터를 찾아 민심을 듣고 있다. ⓒ 이종득

현역 의원이자 19대 총선 예비후보가 시장 입구로 들어서자 오래전부터 늘 보던 장면이 연출되었다. 후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손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귀찮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내민 손을 잡아줬다. 그리고 나이 드신 할머니가 펼치고 있는 난전 앞에 정치인이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듣는 듯한 장면을 만들었고, TV카메라는 그 좋은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기자는 황영철 후보가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도라지 한 봉지를 산, TV카메라에 찍힌 할머니를 만나보았다.

- 할머니, 저 사람 누군지 아세요?
"알지."

- 누군데요?
"글쎄 누구더라. 기억이 안 나네."

- 정치하는 사람이잖아요?
"군순가?"

-아닌데요.
"그럼 누구야?"

-국회의원 몰라요?
"국회의원이야?"

- 네. 지난 번 선거에서 투표했어요?
"했지."

- 그럼 요즘 국회의원 잘한다고 생각하세요?
"잘하긴 뭘 잘해. 사료 값이 올라가서 죽겠는데. 나같은 할머니 먹고 살게 해야 잘하는 거지."

- 아까 국회의원이 무슨 말 했어요?
"몰라. 기억 안나."

-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일흔일곱."

- 이번에도 투표 하셔야죠.
"시러, 안 해"

 황영철 한나라당 대변인이 장터를 찾아 상인과 이야기 하고 있다.
황영철 한나라당 대변인이 장터를 찾아 상인과 이야기 하고 있다. ⓒ 이종득

현역 의원인 황영철 예비후보는 여전히 바쁘게 좁은 시장 통을 누볐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반가운 사람들이다. 지역 출신이니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 중에 낯이 익은 사람도 많을 터. 어디 그뿐인가. 집권여당의 당 대변인으로 TV에 얼굴이 자주 나오니, 마음 넉넉한 시골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반가워했다.

황영철 후보는 TV카메라 앞에서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했다. 배경이 중요하니 자리를 잘 잡아야 했다. 황영철 의원은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시장 순례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60대 젊은(?) 할머니가, 다른 주민과 악수하며 이야기 나누는 국회의원 뒤에서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런 때만 다니지 말고, 평소에 얼굴 좀 내밀면서 정치를 잘 해야지. 맨날 싸움이나 하면서 자기 찍어달라면 누가 찍고 싶냐고."

홍천 장터는 벌써 총선 신경선 '후끈'

젊은 할머니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현역 의원은 여전히 당당하게 장터를 누비며 손을 내밀더니 장터를 나왔다. 다가가서 "인터뷰 하자"고 했다. 그는 "시간 없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황 의원은 "여기에 다방이 있었나?" 하고는 들어갔다. 보좌관이 "전화 한다"고 말했다.

12시께가 되자 이번에는 민주통합당 조일현 예비후보가 어깨띠를 두르고 장터에 나타났다. 처음부터 사람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조 예비후보를 보고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과일 상자를 구루마에 실고 가던 상인이 다가와 격려의 말까지 전해주고 갔다.

 민주통합당 조일현 에비후보가 설 대목장이 선 홍천 장터에서 민심을 듣고 있다.
민주통합당 조일현 에비후보가 설 대목장이 선 홍천 장터에서 민심을 듣고 있다. ⓒ 이종득

조 예비후보는 장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역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상인들 손을 덥석덥석 잡았다. 상인들이 장갑을 벗으려고 하자 "괜찮다 그냥 손 한 번 잡자"고 말했다.

조일현 예비후보가 생선가게로 다가가자 목청 좋은 아저씨는 "화이팅 합시다!"라고 외쳤다. 그러더니 "힘내시라"고 덧붙였다. 조 예비후보 얼굴이 환해졌다. 조 후보가 뻥튀기 가게에 다가가자 아버지 장사를 도와주려고 나와 있던 중학생이"드세요"라며 뻥튀기 하나를 내밀었다.

 민주통합당 조일현 예비후보를 보자 장터에서 막거리를 마시던 50대 남자들이 건배를 제안했다.
민주통합당 조일현 예비후보를 보자 장터에서 막거리를 마시던 50대 남자들이 건배를 제안했다. ⓒ 이종득

조일현 예비후보는 잠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나 주는 거야?"라고 말했다. 중학생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조일현 예비후보 일행은 뻥튀기 한 봉지를 샀다. 그러고는 다시 장터 순례가 이어갔다. 그런데 장터에 빠질 수 없는 선술집에서 50대 초반의 남자들이 조일현 예비후보를 발견하더니 일어서며 잡아당겼다. 50대 남자들은 "화이팅 하자"며 건배 제안을 했다. 지난 선거에서 낙마시킨 민심이 달라진 것일까?

대목 장터 방문을 마친 조일현 예비후보 얼굴이 환해졌다. 일행들도 고무된 얼굴이었다.


#4.11총선#황영철대변인#한나랑당대변인#조일현 예비후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